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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Feb 04. 2024

봄동을 100-84

#책과 강연#백백글쓰기#봄동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부대끼는 겨울이라는 계절에 싱그러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마트에 갔더니 파릇파릇한 봄동이 싱그럽게 앉아서 손짓한다.  냉큼 집어서 집으로 가져갈 결심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한다.


삼겹살을 구워서 쌈 싸 먹으면 느끼함은 잡아주고 바싹 구운 고기의 구수함과 봄동의 고소함이 극대화해 주면 보나 마나 과식을 불러 줄 것이다.

봄동의 이파리는 한 입 크기다.  마른 밀가루를 묻히고 반죽에 묻혀서 기름에 두른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부치면 후각과 미각이 맛을 불러올 테지.

겉절이를 하면 아삭함에 상큼함을 더해주면 봄동의 고소한 제맛의 3중주가 봄을 불러올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먹을 생각만으로도 추위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녁 준비를 서두른다.  일단은, 한 잎 한 잎 뜯어서 찬물에 담가 놓는다. 흐르는 물에 한 잎씩 씻는다. 3번을 꼼꼼히 씻는다. 차가운 물이라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대부분의 채소는 3번 정도 씻으면 싱그럽고 반짝반짝 빛난다.  바라보는 마음도 싱그럽고 맑아짐을 느낀다.


봄동 줄기가 지저분한 것 같아서 물을 받아서 식초 몇 방울을 떨어 트린 다. 식초를 희석한 물에 담갔다가 헹구면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봄동이 식초물에 소독이 되는 동안 주변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봄동을 건져내다가 기절초풍할 현상이 눈에 들어온다. 불순물은 물론이고 벌레 알 같은 작은 알갱이들이 둥둥 떠있다. 흐르는 물에 손가락 끝이 시려옴을 견디며 열심히 씻었건만, 나의 성의를 무시한 듯이 너무도 잔인하게 많이 나와있다.

포기할 수 없다.  흐르는 물에도 다시 씻고 물을 받아서 헹구어서 불순물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를 살핀다. 불순물이 뜨는지 안 뜨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씻고 또 씻고, 씻기를 반복한다. 하나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벌레 알이 이렇게 많다면 노지에서 농약을 치지 않은 유기농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지나치게 많은 농약을 쳐야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농부의 딸이다. 농약의 도움 없이 수확할 수 있는 채소나 과일이 거의 없음을 알고 있다.  보기에는 깨끗해도 무조건 3번을 씻고 식초물에 헹구는 것도 농약 잔류에 대해 못 미더운 행동의 결과다. 보기엔 말끔하기에 깨끗할 것이라고 믿고 먹어 온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사 온 봄동은 농약을 살포하지 않았기에 벌레가 살았고 수만 개의 알을 까고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농약으로부터 해방은 된듯하지만 벌레 알로부터는 안심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흐르는 물에 수십 번을, 담긴 물에 여러 번을 흔들어서 확인을 하고 식초물까지 몇 번을 담갔다 헹구었다. 말끔하게 씻김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이 마음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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