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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Feb 12. 2024

벌써 100-92

비단처럼 고운 햇살이 머리맡으로 부서지는 날이다. 바구니 들고 들판으로 나가고 싶어 진다.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는 냉이를 캐서 냉이 김밥을 먹었다며 SNS로 자랑질한다. 김밥도, 냉이도 좋아하는데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먹는 친구가 부러을 뿐이다.


시장에 나가본다.

시중에 나와 있는 냉이는 씻어서 나온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냉이에 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다. 농산물 유통이라는 것이 생산자로부터 소비자까지 바로 오는 것이라면 모를까!

흙이 많아서 한 번 씻겨 나온 농산물이 제대로 된 유통단계를 착실하게 거쳐서 내 앞에 있을 때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혼자 괜스레 트집을 잡으며 외면한다.


냉이는 직접 캐서 먹기를 원한다. 냉이는 가을에 싹이 나서 겨울을 견디고 이른 봄에도 만날 수 있다. 완연한 봄이라고 느껴질 때쯤이면 냉이는 이미 꽃을 피워버린다. 노지 냉이는 땅이 녹았다 싶을 때 들에 나가면 있는 봄나물이다. 미침, 친구가 냉이 많은 곳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차를 타고 조금 멀리 가야 한다. 바람도 쐴 겸 소풍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로 한다. 엄청 많이 캐서 여기저기 나누어 주고, 김밥, 무침, 된장찌개, 장아찌까지 할 생각에 출발 전부터 신난다.

마음만큼 큰 시장바구니를 챙긴다. 가볍고 단단한 천 가방을 챙긴다. 호미는 친구에게 여유분이 있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며 냉이 캐러 떠난다. 허허벌판에 주차한다. 차에서 내리자, 고향의 향기가 먼저 달려온다. 어디서부터 시작는지 모르지만 참을만하다. 친구의 지인이 알려준 곳이라고 한다. 이른 봄의 햇살은 보드랍다. 가끔 부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었지만 좋은 날씨다.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논과 밭을 샅샅이 훑는다.  이 잡듯이 뒤적이고 다닌다. 그럼에도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냉이다. 추위에 강한 풀만 무성하다. 어느 지방에는 봄나물로 먹는다고 얘기는 들었어도 먹어 본 적이 없다. 망초도 보드라운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고 한다. 소먹이로 캤던 '소가 먹는 풀'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냥 지나치게 된다. 오직 냉이만 고집하며 돌아다닌다. 혹시나 쑥 찾아본다. 이제 싹을 틔우고 있는 아기다. 조금 더 햇살을 먹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 것 같다. 어쩌다 만난 냉이는 크지 않지만 귀한 존재가 된다. 어린듯하지만 캐서 보면 뿌리가 실하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흙 색깔과 비슷하고 납작 엎드린 냉이를 찾느라 시간도 잊는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냉이. 지나치게 큰 바구니가 부끄러워진다. 배고프고 힘들면 햇살 바른 자리에 앉는다. 따뜻한 차와 간식을 먹는 시간이 풀 내음처럼 향기롭다. 마음만큼은 가득 채워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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