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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마우스 Oct 13. 2018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치매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가정방문 이야기


 요즘 나는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실습을 나가고 있다. 이전 폐쇄 병동 실습을 나갈 때 보다 환자들은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환의 증상이 크게 발현되지 않아 어느 정도의 일상생활은 가능한 상태였다.

실습 중 치매와 우울증 그리고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한 할머니의 가정방문 간호를 가게 되었다.

나를 본 할머니의 첫 마디는

"아유~예뻐 어쩜 이렇게 이쁠까! 지금이 제일 예쁠 때라 그런가 너무너무 예쁘네~ 좋겠어~"

혼자 사셔서 사람이 늘 그리웠다는 할머니는 누구보다 살갑게 나를 맞이해주셨다.

첫 만남의 10여분은 우울증과 치매를 앓고 있다는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첫 10분이 지난 후 나에게 할머니는

"내가 문을 열어줬던가? 몇살이라 그랬지?"

"센터에서 왔다고?, 그럼 또 언제 온다고 했지?"

처음 한 질문을 반복하기 시작하셨고 긴 이야기를 해주시고도 그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잊으시고 2시간 동안의 가정방문동안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세번,네번 반복하시는 모습을 보였다.


할머니는 사실 파킨슨병을 오래동안 앓고 계셨고, 치매 초기에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큰 우울감을 느껴 우울증까지 진행된 사례에 해당했다.

할머니가 나에게 반복적으로 해주신 긴 이야기의 내용은 대부분 현재보다는 과거에 머물러계셨다.

20살에 시집와서 큰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고향인 부산에서 여주사람인 남편을 만나 서울에서의 신혼 생활 이야기를 두번,세번 반복하셨고 사이 사이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 오늘이 몇일인지를 물어보곤 하셨다.


아마도 할머니의 기억 속에는 20살 꽃 같이 고우셨을 때 결혼하여 큰 아들을 낳았을 때까지의 시간이 세월이 흘러 가장 행복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계신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번 언제나 처음 이야기 하는 것으로 알고 말씀하시고 나도 늘 처음 듣는것 처럼 반응하니 할머니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 즐거워하셨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치매와 암으로 요양병원에서 생활하시는 나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그토록 정정하시고 예절을 중시하시던 할아버지가 겨우 가족만 알아보시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는 모습을 봤을 때 아주 큰 고목이 태풍을 맞아 쓰러진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치매는 최근 노인질환 중 급속도록 증가하는 질환 중 하나이고, 그 부담을 국가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대학생활 중 봉사활동과 실습등을 통해 볼 때 치매는 치매를 앓고 있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보호자와 가족들까지 정말 정말 힘들어하는 질병 중 하나였다.

그토록 고생하셔서 자식들을 잘 키워두고도 자식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모습을 볼 때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일 것이다.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마지막을 맞이했을 때의 기분은 감히 생각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지만, 내일이 다가온다는 건 여전히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생각했을 때 조금씩 늙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은 조금씩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내일이 오는 것은 당연한 듯 대부분의 사람들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하루가, 어제보다 오늘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라는걸 가끔은 떠올려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더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줄 수 있으면 어떨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 속의 지우개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치매 가족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힘을 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곁에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 늘 마음 속에 담아 두지만 쉽지 않던 "사랑한다"는 말 한번 해줄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리시안셔스-꽃말:변치 않는 사랑



*이미지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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