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시간들 위에서, 말할 수 있는 나로 돌아오기까지
나는 틀리지 않았다. 세상도 틀리지 않았다. 그저 달랐을 뿐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너무 오랜 시간을 떠돌았다. 수많은 밤을 혼자 고민했고, 끝없는 질문과 대답 없는 공허 속에서 헤매며 내가 틀렸다고 믿었다. 납득할 수 없는 기준들, 따라가고 싶지 않은 흐름들 속에서 나는 조용히 어긋나 있었다.
사람들은 늘 정해진 길을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안정된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사는 것이 인생의 정석이라고.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성공한 사람들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그러지 못한 자들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로 분류되었다.
나는 그 틀 바깥에서 서성였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그 길이 싫었다. 처음엔 왜 싫은지도 몰랐다. 막연한 거부감이 늘 마음속을 짓눌렀다.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이 깊어져 갔고, 내 안에서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나는 계속 질문을 던지며 방황했다. 정해진 답이 있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질문 자체가 틀렸던 게 아닐까 두려워하며 침묵했고, 동시에 그 침묵이 더 큰 소음처럼 내 안을 울렸다.
공부는 그 방황의 시작이었다. 재미도 없었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도 없었다. 어른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것은 잔소리뿐이었다. "어른들 말씀 잘 들어야지." "나중에 커보면 안다." 따위의 말들. 누구도 진심으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왜 공부가 내 삶에 중요한지,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지. 그 공백은 시간이 갈수록 더 뚜렷해졌고, 결국 공부 자체에 대한 불신과 무력함으로 이어졌다.
어머니는 내 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사교육을 받았고, 나름 좋은 성적도 유지했다. 그렇게 나는 나름 유명한 편에 속하는 수도권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에서는 실패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틀 안에서의 이야기일 뿐, 나 자신은 그 어떤 성공도 성취했다는 감각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그 틀에 억지로 맞춰진 채 스스로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내 안에는 늘 공허함이 있었다. 목표 없이 움직인 삶은 결국 정지 상태에 다다랐다. 조용히 멈춰 있는 듯 보였지만, 내면에서는 계속 삐걱거리고 있었다.
대학 생활은 더욱 괴로웠다. 애초에 공부에 뜻이 없었던 나는, 전공 수업 하나하나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수업을 듣는 이유도, 과제를 하는 이유도 스스로 납득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은 각자의 목표를 향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나는 늘 멈춰 있는 느낌이었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일 뿐. 하기 싫다고 말하고 다른 무언가를 선택할 용기가 없었을 뿐. 더 좋은 대안을 알아볼 안목과 그러기로 결심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어떤 수업은 듣는 내내 고문 같았고, 어떤 팀플은 말 한마디 보태지 못한 채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나는 스스로를 점점 더 회피했고, 그렇게 익숙한 무기력 속으로 천천히 잠겨갔다.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는커녕, 하루하루를 견디는 데 급급했고,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갔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바리스타로 몇 년을 보내기도 했다. 친구의 권유로 학원 강사를 하게 되었지만, 커피에도 가르치는 일에도 진심이 아니었다. 그냥 그때그때 삶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선택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무뎌졌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핑계를 만들어야 했다. "당장은 어쩔 수 없어." "언젠가 좋아질 수도 있어." 같은 말들이 내 안에서 자동 재생되었고, 그럴듯한 합리화를 반복하며 나를 설득했다.
그 과정은 조용한 마모였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들은 점점 무게를 잃었고, 언젠가 꺼내 쓰려고 접어뒀던 생각들은 더 이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체념에 가까운 순응과 타협이 습관이 되어갔고, 그 익숙함은 내 안의 무언가를 조금씩 마르게 만들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어쩌면 나는 매일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침묵하지 않으려 쓴 글마저도 언젠가는 지워버리고,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점점 더 미루고 있었다.
그런 삶을 살아오고 보니 지금의 나는 서른여덟이다. 결혼했고, 두 돌을 앞둔 딸이 있다. 다른 사람 눈에는 평범하고 무난한 삶일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내 자신에게 질문한다. 이 삶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정말로 이게 나의 의지로 도착한 자린가? 아니면 흐름에 떠밀려 어쩌다 발을 붙이게 된 곳인가?
오랫동안 나는 이 질문에 실패라는 답을 내렸다. 목표 없이, 자신감 없이, 열정 없이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때때로 숨을 막았고, 남들이 당연하게 성취해가는 것들이 나에겐 늘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상태로 남겨두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보류하고 싶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삶이, 이 마음이, 나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끌어올리지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써보기로 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것 없는 미생이지만, 그 미완성의 나를 억지로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이다. 잘 보이려는 문장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표현도 덜어내고, 다만 진짜 내 마음을 담은 글을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쓰는 글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 말고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린다면, 그게 바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고, 그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힘들지만 결국 잘 될 거야." 같은 그런 쉬운 말 대신,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남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