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나조차, 나의 일부이기에
"언젠가는 잘 될 거다."
그래. 잘못될 것도 없으니까. 맞는 말이다.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너무 간단하다. 너무 가볍고, 너무 빨리 끝난다. 말한 사람은 그 말을 끝으로 모든 책임을 내려놓고, 듣는 사람은 그 말을 꼭 붙잡은 채 다시 혼자 싸워야 한다.
나처럼, 이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거나, 혹은 나 자신이 어딘가 본질적으로 모자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붙잡혀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왜 그런 사람들을 위한 말은 드문 걸까. 아마도, 나 자신을 부정해보거나 세상을 부정하고 싶은 그런 감정이나 느낌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아닐지 조심스럽게 유추해본다.
소위 말하는 '성공궤도'에 한번 올라탄 사람들의 삶은 비교적 탄탄대로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고충이 있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기에 함부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내가 지금 말하는 건 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에 대한 것들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늘 궁금했다. 나는 왜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애매하게 느껴지는 걸까? 이 막연한 궁금증은 30여년을 살아오는 동안 단순한 질문을 넘어, 결핍을 지나, 나 자신의 정체성을 갉아먹는 컴플렉스가 되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살아왔고, 그 무지함은 내가 내린 모든 선택에 대해 끝없는 의심과 자책을 만들어냈다. 때로는 타인의 확신 있는 태도만으로도 위축되었고, 나와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 앞에서 이유 없는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내 삶을 살면서 단 한번도 내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선택들은 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적극적이지도 못했고 능동적이지도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이 스스로에게 멋져보일리가 없었다.
막상 발을 떼려 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불분명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주변 친구들은 취업 준비에 바쁘고 전공과 관련된 기사 자격증을 따려고 매일같이 도서관을 갔다. 마땅히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던 나 역시 친구들 따라 기사 자격증을 준비하기 위한 교재를 사고 도서관을 갔지만 몸만 갔을 뿐이었다.
하고 싶은 게 없었고, 잘하는 게 뭔지도 몰랐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기에, 남들이 하는 걸 따라가며 최소한의 모양새를 갖추려 애썼다.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그래서 더욱 애매하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때의 나는 단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불안과 막막함이 얽혀서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멈춰 있었다. 마음은 분명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 싶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틈에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이 얽혀 복잡하게 울리는 내면의 한가운데서, 그게 정말 목소리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작고 흐릿한 무언가가 들려왔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마치 안개 속에서 손끝으로 내 얼굴을 더듬듯이, 조심스럽게 나를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모르겠을 뿐이었다. 하루 빨리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이 낯설고 답답한 자리에서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았고 이걸 해결해야만 내가 느끼는 모든 문제점들이 해결될 거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어쩌겠나.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을. 드라마틱한 해결은 없었고 변화도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이를 먹어왔다.
도망쳐봤자 계속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내 감정과 생각들을, 나는 수없이 지켜봤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사람을 만나도, 책을 읽고 강연을 들어도 결국 끝에는 다시 같은 질문과 불안으로 되돌아왔다. 나름 바쁘게 지내면서 잊혀진 컴플렉스는 문득 고요해진 밤이면 '또 이 생각이야?' 하는 자조와 함께 밀려왔다. 그 감정이 너무 무겁고 혼란스러워서,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다. 괜히 털어놨다가 더 혼란스러워질까봐 입을 닫았고, 스스로조차도 내 이 복잡한 감정을 말로 정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애써 살아왔지만 내가 그려왔던 모습과는 너무 멀었고, 앞으로의 미래도 뻔히 그려지는 게 더 답답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만 계속 커져갔다. 어떻게든, 나를 납득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고뇌하다 문득 떠올렸다. 이런 모습도 나잖아.
"그냥 받아들이면 안되나?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모르면 안되는건가?"
이 질문이 내 안에서 천천히 울렸다.
그리고 마침내, 서른여덟이 되어 이 컴플렉스를 나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써보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언제나, 확신이 생겨야만 뭔가를 할 수 있었다. 확신이 없었기에,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써야 했고 사회의 가치와 잣대를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시작해보기로 했다. 서툴고 불분명하더라도, 이렇게 시작하는 게 지금 내게는 가장 정직한 선택인 동시에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선택 같다.
아직도 막막하고,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낯선 방향 속에서 무언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