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를 증명한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최초의 선언

by 김민준

지금 내겐 돈이 한 푼도 없다.


대략 3년간의 교습소 운영의 끝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야금야금 까먹은 보증금과 얼마 안 되는 시설 보증금이 전부다. 그것마저도 계약이 완전히 마무리되어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다. 게다가 밀린 관리비와 중개수수료까지 제하면 정말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다. 교습소 운영 종료일은 이미 학부모들에게 공지가 끝났고, 더 이상 운영 수익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 말은, 당장 이번 달 생활비부터 막막하다는 뜻이다. 지출은 계속되는데, 수입은 정지된 상태. 이 간극 속에서 현실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은행 잔고를 열어보는 것이 두렵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고역처럼 느껴진다. 눈을 뜨면 숨이 턱 막히고, 다시 눈을 감고 싶어진다. 생각이라는 게 과연 도움이 되는 건가 싶은 지경이다. 이 상황 앞에선 감정도 생각도 모두 멈춘다. 그냥 멍하니 하루를 견디고 있는 것 같다. 하는 것은 없는데 먹기만 하는 게 영락없는 식충이라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으로 하루를 보내니, 눈을 떴는데 다시 밤이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그 안도마저 한순간일 뿐인 나날들이다. 그 하루하루가 나를 갉아먹는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수학을 가르치는 것뿐이니, 다시 예전에 했던 과외를 알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어째선지 예전만큼 학생들이 잘 구해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시험기간이었다. 시험이 코앞인데 누가 새로운 학원을 알아보고, 선생님을 알아보겠는가. 결국 여러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통해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한 대기상태를 만드는 것. 그 상태로 하루 빨리 시험이 끝나기를, 과외 문의가 많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 기다리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니.


어쩌면, 지금 나의 대처는 완벽한 자기위로일지도 모른다. 정말 돈이 없다면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든, 오토바이로 음식배달을 하든, 무엇을 하든 몸이 부서져도 당장 돈을 벌어서 생계를 해결하는 게 현실적인 선택일 것이다. 이대로 과외할 학생들을 모집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것들과 결이 다르고 생경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선택지들을 배척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현실은 냉혹하다.


이런 몇 가지 방법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현실 앞에서, 무기력함과 우울감, 그리고 자괴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밤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했고 다음날 일정이 있으니 잠을 청하고자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무심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유튜브 영상들을 보다가, 우연히 내가 알던 유튜버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러웠다. 단지 책을 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그 용기가 부러웠다. 정리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감정과 생각들을 꺼내어 사람들 앞에 내보일 수 있다는 것. 그 진솔함이, 그 담백한 용기가 나를 자극했다. 나도 그렇게, 내 마음을 꺼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래전부터 들끓고 있었지만, 꺼내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던 말들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써보자."


내 삶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 이룬 것도 없고 자랑할만한 커리어도 없다. 번듯한 직함도 없고, 남들 눈에 멋져 보일 이력 하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삶을 있는 그대로 써보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봐줄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지도 모른다. 별다른 빛 한번 받아보지 못한 채 그저 그런 글로 치부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나'를 쓰려고 하는 이 행위는 오로지 '나'만이 기준이다. 그동안의 선택들은 모두 외부의 시선과 사회의 잣대에 의한 것들이었기에, 그 사실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누군가가 어떻게 볼지는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행위인 것이다.


문장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수없이 고치고 지우고, 어떤 단어, 어떤 표현을 쓸지 고민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나는 분명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주 사소한 단어 하나에 멈춰 서서 고민하고,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표현 하나를 붙잡고 계속 고쳐 나가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신기할 노릇이다. 아무런 보상도, 결과도 보장되지 않는 글쓰기다. 막막한 현실을 돌파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데도, 도리어 이 현실감 떨어지는 행위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 글은 무엇을 얻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행위일 뿐이다. 문장을 고치고, 단어를 고르고, 다시 지우고 쓰는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어떤 흐름 안에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그 감각이, 지금의 나를 놓지 않게 해준다.


그래서 결국, 나는 계속해서 '나'를 써내려가기로 다짐했다. 철없어 보이든, 무책임해 보이든 상관없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외부의 시선과 사회의 기준에 의해 움직여왔다. 그 잣대에 맞춰 살다 보니, 나라는 사람은 늘 주변에 머물렀고, 중심에서 나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삶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어서라도, 이 행위는 결코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나'로 존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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