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블로그
LP를 들으러 동네 음악도서관으로 갔다.
몇년 전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음악도서관이 생겼다. 오후 3시 반 넘어서 출발해서 오후 4시를 조금 넘어 도착했다. 도서관 앞에는 공원이 있었다. 의자가 널찍널찍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고 가운데 넓은 공터가 있었다. 무언가 해야겠다는 강박이 생기지 않는 비어 있는 정원이었다. 조금 아름다웠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편안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이달 사서의 추천’ 코너가 있다. 이달의 책과 음악을 추천해주는 코너로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추천하는 LP와 턴테이블과 책이 테이블에 플레이팅되어 있었고
왜 이것을 추천하는지 이유가 적힌 종이도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공공도서관의 섬세한 플레이팅에 속으로 감탄했다.
이런 건 결국 공공기관 특유의 보여주기 식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1층 서재에서 ‘재즈 가이드’와 ‘만화 형식의 역사’ 책을 집어 들고 3층에 올라갔다.
3층에는 음악감상실로 CD와 LP 심지어 온라인 스트리밍으로도 음악을 감상 할 수 있다.
이전에 와본 적이 있어 턴테이블 사용 방법은 알지만 문제는 무슨 음악을 듣는지였다.
얼른 가방을 자리에 두고 LP가 모여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그래, 가요는 많이 들으니까, 재즈를 듣자
일본의 유명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시절
8년 정도 재즈바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이나 에세이에는 음악이 자주 등장한다.
한국에 출간된 그의 작품 전부를 읽지는
못했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읽은 책들에는
음악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다.
작가는 여러모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이 깊지는 않더라도 알고있는 게 괜찮겠다. 하물며 잘 못 마시는 술과 악보도 읽을 줄 모르는 나에게는 더더욱…. 그러는 사이 10분이 지났다.
사서분이 다가와서 친절히 말해주었다.
”5시 30분에 정리하시면 돼요“
“네”
나는 급한 마음에 무작정 선반 위에 있는
데이비드 마일즈 에센셜 LP 집을 - 원래는 빌 에반스를 들어볼 예정이었는데 - 골랐다. 두꺼운 앨범처럼 되어있었고 각 장마다 그의 흑백사진과 LP가 꽂혀있었다. 그 중 첫 번째 LP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핀이 천천히 회전하는 엘피 위에 내려앉았다.
연결된 헤드셋에서는 살짝 튀기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음악이 나왔다.
1층에서 가져온’재즈 가이드‘를 읽으며 감상한다.
뉴올리언스가 재즈에서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과 금주법, 그리고 익히 들어본 스윙이라는 단어가 힘이 약해지고 비밥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는 것까지 읽었다.
’그래서 카우보이 비밥인가?‘ 흥이 나고 격정적이고 몸을 흔드는 신나는 분위기가 아니라
소규모 연주자로 구성되어 감상을 위해 즐기는 느낌으로…. 비밥이라는 단어가 생길 시기에는 전쟁 직후여서 빅밴드를 고용할 여력이 안 됐다는 설명도 읽었다.
세기말, 버블경제의 마지막 작품으로 불리는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은 분위기, 인물의 수를 생각해 봤을 때도 참 적절하다.
비밥이라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이지만 어감이 좋다.
카우보이 스윙보다는 비밥이지
헤드셋에서 튀기는 소리가 들린다. LP를 들을 때 항상 들리는 소리로 어떤 마찰음이지 않을까.
싫지 않다. 나는 이 음악을 들으려고 왔다. 걸으며 들으려고 한 게 아니고 들으려고 걸어왔다. 튀기는 소리는 ‘재생’이라는 단어의 묘사를 풍부하게 한다. LP를 고르고 양손 끝으로 꺼내어 올리고 재생 버튼을 누른다. LP가 돌아가며 잠시 뒤 음악이 나온다.
”10분 뒤에 정리하실게요“
“네”
마지막으로 국내 가요로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를 들었다. 휴대폰으로도 잘 듣는 가수였는데,
심지어 노래방에도 없는 그녀의 음반이 여기 있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전부 듣지는 못하고
좋아하는 수록곡 1곡을 들었다.
‘잘 듣고 있어요’
시간이 끝났고 자리를 정리하고 괜찮은 책들이 많아 조금 읽다 나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나머지 수록곡들도 다 듣고싶고 이곳은 종종 오게 되겠구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방금까지 들은 LP 음악 속에서
결국 데이비드 마일드가 누구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트럼펫을 연주한다는 것은 알지만
무엇이 정확히 트럼펫 소리인지에 대해서도
방금까지 재즈에 대한 책을 읽었지만 그것은 재즈의 역사이지 재즈를 읽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