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실험자도 세포 실험을 합니다
동물 실험 초보로 겨우 3년 되어가지만, 나는 올해로 20년 차 연구원이다. 동물 실험 전에는 세포 실험을 또 그전에는 DNA 실험이 주 연구였다. 모든 유기물이 그렇듯이 DNA도 무에서 유로 갑자기 생겨날 수 없다. 화학적 결합으로 만들 수 있지만, 필요에 의해서 보조적인 장치로 쓴다. 내가 시행했던 DNA 실험도 어딘가로부터 얻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DNA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 정보다. 그러니까 사람에게도 얻을 수 있고 동물이나 식물에서도 얻을 수 있다. 나는 수술 후 나오는 조직(검체)에서 DNA를 뽑아 목적에 맞는 실험을 했다.
DNA 실험만 하다가 이직하면서 세포 실험을 배웠고, 세포를 다루게 되었다. 세포는 키운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세포를 키우면, 세포를 키워서 등으로. 세포는 인큐베이터라는 장치(37도)에서 자란다. 생장(성장)을 위해 필요한 요소가 무엇이 있을까. 중, 고등학교 과학 시간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요소는 햇볕, 물이다. 세포는 양분이 필요하다. 세포 배양액에 여러 양분이 포함되어 있다. 들어봤음직한 페트리디쉬 같이 세포가 자랄 수 있는 공간에 배양액과 세포를 넣어두면 일정 기간 지나 세포가 분열한다. 이때 하나의 세포가 두 개의 세포가 되고 DNA도 복제가 된다. 중,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들어봤을 대충의 이야기다.
세포가 자라는 과정에 호흡하고 에너지를 소비한다. 배양액에 양분이 사용된다는 의미다. 세포가 자라는 공간에 담긴 양분의 색깔도 점차 변한다. 산화된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세포를 관리해야 하는 연구자가 할 일은 일정 시간 경과 하면 배양액을 교체하거나 세포가 자라 좁아진 공간을 교체해 준다. 이때, 자라날 세포를 가늠해 적정량으로 새 공간으로 세포를 깔아준다. 세포 주기를 생각하면서 실험해야 한다.
세포 실험자는 명절 연휴나 휴가 때도 세포를 신경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포가 죽을 수도 있고, 상태가 나빠져 모양이 변할 수도 있다. 같이 실험하는 동료가 있다면 부탁하거나, 키우고 있는 세포를 정리하며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그렇다, 이 일정은 내 이야기다. 동물 실험에서 동물 관리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지만, 세포 실험은 동물 관리보다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이번 설은 연휴가 금, 토, 일, 월 4일이었고, 내가 관리하는 세포는 이틀(삼일)에 한번 꼭(!) 배양액을 교체해줘야 한다. 월, 수, 금이 배양액 교체 날짜다. 그러니 이번 연휴 중 금, 월은 세포를 보러 가야 했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굶어도 세포는 굶기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비슷한 시간에 배양액을 교체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연휴라 게으르기 때문에 오늘은 청소년 학원 픽업 시간에 맞춰 오후에 갔다. 세포가 잘 있는지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배양액을 교체했다. 이럴 때면 세포도 생명이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마음은 처음 세포 실험을 배울 때 간절했다.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 후 얼마되지 않아 몇몇과 저녁을 같이 먹은 적이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사정을 가장 잘 안다. 다들 실험 이야기나 실험실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였다. 세포를 다룬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세포를 인큐베이터에 넣을 때마다, 잘 자라 달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 했다. 세포를 파기해야 할 때도 있다. 디쉬를 폐기물 상자에 넣을 때면, 죽겠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마치 식물이 죽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실험이 잘 안 돼서 몇 번이나 반복할 때면 제발 잘 자라 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까지 한다. 20년 차 연구원이지만, 매 실험마다 초보의 마음으로 제발을 입에 달고 산다. 이번 세포는 목요일에 실험실 실험이 종료된다. 그때까지 오늘도 ‘제발’을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