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제를 생각합니다
동물사에서 실험이 종료된 렛을 희생시키는 날이었다. 실험한 렛에서 원하는 조직(우리는 피부 부위다)을 회수하기 위해 수술한 부위를 다시 절개해 열었다. 이 실험은 전공의 과정 선생의 논문 실험이다. 직접 참여해 실험을 한다. 실험자와 한 팀이 되어 각자 역할을 나누어 맡았다. 마취, 제모, 수술, 샘플 기입과 보관 등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 몫이 아니다.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하는 것은 의사들에게만 해당하는 영역이 아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현장에서 손발 맞춰하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실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즈음. 실험자가
“수술 부위를 다시 꿰매야 할까요? 했다.
아!
“사람이 아니고 동물이라 괜찮아요.”
혼자 분위기가 엄숙해진다. 위령제가 떠오른다.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들이나 수술 중 사망하는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빈자리를 메우고 다시 봉합하는 장면을 TV에서 본 기억이 있다. 실험자에게 물었다.
“장기 이식이나 해부학 실습으로 기증해 주신 분들을 위해 이 학교는 위령제를 지내나요?”
나는 이 학교로 이직한 지 3년 차다. 대학원부터 10년 가까이 있었던 실험실 소속이 해부학교실이었다. 학부 때부터 선배이자 해부학교실 조교였던 그는 매 해 위령제를 위한 준비를 가을즈음 했다. 생각보다 큰 규모다. 현수막도 있고, 제사상을 위한 음식도 준비하고 교수 학생들에게 미리 고지해 참석을 알려야 한다. 장지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네, 하죠.”
“여기도 해부학교실에서 준비하나요? 그전에 있었던 곳이 해부학교실이라 준비하는 모습을 본 적 있거든요. ”
“우리도 해부학교실에서 진행합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동물도 위령제를 지냈어요, 예전에는. 지금은 동물실험이 워낙 많기도 하고 다들 일정이 바빠서 그런지 예전만큼 꼼꼼하게 잘 지키는 곳이 점 점 사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말이에요. 전 학교에서는 동물사 책임 교수를 중심으로 준비했어요. 아니면 진행이 잘 되지 않으니까요. 여기는 잘 모르겠네요.”
의사인 실험자는 동물 실험 사정까지 잘 알지 못한다. 엄연히 영역이 다르니까. 자신을 기증한 셈인 동물에게도 위령제로 고마움을 대신하는 모습은 사람에게 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동물 실험 윤리 교육을 들을 때 나오는 3가지 규칙 외에 이것까지 더하면 우리는 죽음과 희생, 그리고 고마움이라는 마음까지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대화와 함께 해부학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는 실험을 마무리하고 정리할 때다. 원칙적으로 실험할 때 사담을 나누는 것은 금지다.
“예전에 해부학교실에 있을 때에요. 학생들 공부방에 있는 전화기가 해부학교실 사무실 전화번호였거든요. 가끔 그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요. 사후 시신 기증 하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고요. 그러면 우리는 조교 선생님이나 담당자 전화번호를 알려줘요. 그렇게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는 대부분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거든요. 담당자 전화번호를 가르쳐 드리려고 잠시만요 하고 말하면 가끔 어르신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아요.
내가 가족이 없어요. 가족이 없으니 죽으면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도 없지. 그러니까 내 장례를 내가 준비하는 거예요. 땅에 묻혀도 누구 하나 와 줄 사람 없는데 그럴 수도 없지만 관리는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시신을 기증하면 장례까지 치러준다고 하데. 그래서 전화한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묵묵히 듣다가 그러시냐고, 어르신처럼 직접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걸려오는 전화가 많으니 안심하시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전화를 끊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무겁기도 하고 서늘하기도 하죠.”
동물의 죽음 앞에서 사람의 죽음까지 생각하는 묵직한 대화를 나눈 하루였다.
다음 날, 실험하고 돌아와 사무실 책상에 앉았다. 같이 일하는 연구원이,
“선생님, 방금 할아버지 두 분이 오셔서 시신 기증을 물어보셨어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모르고 담당자도 누군지 몰라서 행정실 가서 물어보라고 했어요. 행정실 위치를 모른다고 하시고, 물어보니 2층으로 올라가라고 해서 왔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행정실 전화해 보니 선생님 선배에게 연락이 가서 지금 선배와 할아버지들이 만나고 계세요.”
연이어
“저 이런 상황 처음이라 놀랐어요. 원래 이래요?”
”네, 해부학교실에 있을 때 종종 전화를 받았는데 이렇게 오시는 걸 마주하는 건 저도 처음이네요. 선배가 그래서 뛰어다녔구나. 볼펜 없다고 막 뛰어가던데.”
지금 있는 층에 해부학교실이 있다. 전 직장 해부학교실 조교였던 선배는 또 무슨 장난인지 이곳에 와서 조교와 실험을 같이 하고 있다. 해부학교실 조교라고 해서 이 상담 담당자는 아니다. 행정실 소속에 다른 연구원이 담당자인데 휴무여서 선배가 그날의 상담자가 되었다. 안 그래도 복도에서 바쁘게 뛰어가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상담이 들어왔구나.
맞은편 회의실에서 선배가 두 분의 할아버지 상담을 도와 드린 모양이다. 서류와 증명사진까지 모두 준비해 오셨다.
내 시간을 스스로 정리한다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나도 나중에 이들처럼 내가 지내온 시간을 하나씩 정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