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24년 2월 넷째 주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

by 안녕 테비

벌써 10번째 일기라니 시간이 빠르다. 바람은 차가워도 봄기운이 느껴지는지 마음도 한껏 들뜬다. 오늘은 또 어떤 일기를 남길지 사진첩을 들춰본다. 이번 주 가장 큰 이슈는 ‘김창완’ 아저씨다. 내 일상은 몇 가지 단어로 함축할 수 있다. 라디오, 그림, 도서관, 책. 출퇴근길에 듣는 라디오는 도서관 책모임 글, 블로그 단상 등에 종종 등장한다. 아침 눈 뜨면 라디오 어플부터 켜는 나는 ‘김영철의 파워 FM’으로 시작해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로 출근을 함께한다. 12시까지 틈이 날 때마다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데 ‘박하선의 씨네타운’까지 고요하게 들을 수 있음 더없이 훌륭한 오전이다. 김영철의 목소리로 잠을 깨우고 활기를 얻는다면,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회사로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다.


언제부터 라디오를 들었는지, 아니 아저씨 라디오를 언제부터 들었는지. 기억에 따르면 ‘이문세’ vs ‘김창완‘을 놓고 겨루던 때도 있었다. 왜 두 사람이 동시간대인지. 이문세 아저씨한테로 기울었다. 그러다 아저씨가 떠나고 김창완 아저씨한테로 정착했다. 아이를 낳고 동요를 틀며 아이와 출근하던 시기를 지나 라디오를 틀며 우리 둘이 출근과 등원했다. 아이는 그때 당시 목요일 코너 <짱구는 못 말려>(지금은 수요일)를 좋아했다. 사연자들의 아이들을 짱구와 짱아로 불렀는데 그 단어가 웃기는지 아이도 꺄르륵 거리며 언제 짱구, 짱아 하느냐고 물었다. 김창완 아저씨를 ‘짱구 짱아 아저씨’라고 불렀고.


10년은 족히 들었다. 19년 탄 첫 차와도 함께 한 시간이 반이 넘는다. usb 포트가 없었고 cd 플레이어도 고장 난 후부터 채널 고정 라디오를 들어서 그랬기도 했지만, 굳이 바꿀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 시간 동안 나는 아저씨 팬이 되어갔다. 아니, 아저씨 표현대로 ‘아침창 가족’이 되어갔다. 작년(23년)에 김창완 밴드 전국 투어로 내가 사는 곳에 오셨다. 당연히 표를 끊어 콘서트 보러 갔다. 40대 아줌마도 드물 정도로 50대 이상이 많았고 심지어 혼자 갔다. 이 모든 열정이 모두 라디오로부터 나왔을 만큼 좋았다. 거기다 지난가을 서울 인사동페어에 나가게 되었다. 민화 작품으로 나가게 된 페어였고 몇몇 연예인도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중 김창완 아저씨가 있을 줄은 처음에 몰랐지만, 함께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조건 시간 빼서 하루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센스 있는(?) 경험 많은(?) 선생님은 보통 오프닝 하는 날 대부분 올 테니 우리도 오프닝에 맞춰 가자고 했다. 작품도 걸어야 했기 때문에 오프닝에 맞춰 가야 했지만 모두 다 전날 갈지 여부는 직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전시 전 날,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았다. 한 손에 봉지를 들고 그림 전시장에 오셨다. 작업자들에게 음료수를 건네는 모습인 듯 보였다.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팸플릿을 보니 첫날 아저씨 사인회가 있단다. 우리도 그림 진열을 마쳤다. 사인회를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로 갔다. 나온 지 몇 년 된 아저씨 책까지 샀으니 모든 준비는 끝났다. 전시 첫날, 아침부터 우리는 부스를 지키고 섰다. 점심시간 즈음이었던가? 아저씨가 보였다. 사람이 없는 부스 그림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아저씨가 앞으로 점점 다가온다. 이 때다. 난 이때를 기다렸다. 아저씨 콘서트 다녀오신 분들이 말했다.

“아침창 가족이에요.”라고 했다고. 그거다! 아저씨가 지나가려는 순간,

“아침창 가족이에요.”라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아저씨가 우리 부스에 들어오셨다. 준비한 책을 펴서 사인을 받았다. 사인회 전에, 우리 부스에서 직접. 얼마나 심장이 떨리고 영광스러웠는지. 사인회 때 부스에 다시 찾아갔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가면서까지 참여한 부스였기에 지인들이 거의 올 수 없었고, 그럴만한 전시물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런 내 전시를 보려고 오신 동료가 있다. 동료의 덕질은 누구 못지않다. 동료에게 아저씨가 왔다고 일러뒀더니 나만큼 신나 하셨다. 아저씨 드릴 간식을 부랴부랴 준비하고 아저씨 부스로 가서 싸인이며 이것저것 말도 붙이고. 역시, 덕질은 저래해야 하는데. 동네 아저씨 만난 마냥 별의별 이야기까지 나누고 돌아왔다. 이만하면 성덕이라고 스스로 칭찬했다.

다시 출근길 라디오를 듣는 일상이 되었다. 예감이 들었을까. 1월 말쯤 아저씨도 언젠가 아침창을 떠나는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날이 오면 나도, 아침창 가족들도 어떻게 아저씨와 이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지난주 월요일 아저씨가 직접 쓴 오프닝을 읽으시는데

‘어쩌면 오늘 자전거를 타며 바라본 새벽달이 아침창 하면서 보는 마지막 새벽달일지도 모르겠다 하며 달려왔습니다.’(대충 이런 내용)라고 하는데 순간 귀를 의심했다. 문장을 내가 올바르게 이해했는지 의심했다. 다들 나처럼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다. 문자들이 쏟아졌고, 어떤 이는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며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나도 아저씨한테 문자를 보냈다. 출근길이라 문자 보낼 생각하지 않는데, 신호 걸릴 때마다 조금씩 작성한 문자를 보내고 회사로 들어갔다. 이 사연은 토요일에 소개되었다.



라디오는 희한하다. 몰입한 드라마가 종영이 되어도 이만큼 공허하지 않다. 몇 부작인지 알고 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용의 흐름상 결말을 향해 같이 가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예능은 드라마만큼도 아쉽지 않다.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회차가 길수록 반복되는 코너에 재미가 무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장수 예능 프로그램이어도 종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그래. 오래 했지.‘ 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라디오는 다르다. 연애하던 대상에게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고 통보받듯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디제이가 떠난다. 그럴 때마다 청취자 기만인가 하는 생각에 배신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흔히 하는 말로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말로 다독인다.


아침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니다. 그런데 10년 이상 들은 목소리에 정이 얼마나 쌓였는데 별 것 아닌 마음으로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까. 월요일 이별 소식에 일주일 동안 우리는 아저씨와의 추억을 문자로 소환하고 또 소환했다. 금요일 오후 4시에는 ‘황제성의 황제파워’ 오프닝에도 아저씨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오프닝 뒤로 바로 이어지는 아저씨 노래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토요일 내 사연이 소개되었을 때는 카메라를 켜 비디오모드로 녹음도 했다.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일주일이 지났다. 아저씨가 말한 한 달에서 한 주가 흘렀다. 약 3주가 남았다. 예고된 이별이어도 익숙해질까. 남은 기간 동안 우리는 각자 어떤 방식이로 이별을 작별로 바꿀까. 책 모임 단톡방에 링크가 올라왔다. 내가 좋아할 소식이란다. 김창완 아저씨 새 책 서평단 뽑는 링크다. 아! 아저씨, 아침창 떠나는데 책 서평 참여하면서 마음을 다독여야겠다고 했다.


사연을 보내고, 지난봄 콘서트를 회상하고, 지난가을 함께한 전시를 떠올리며 아저씨가 쓰신 새 책 서평이 되길 바라면서 일기로 기록한다. 어느 곳에서든 항상 건강한 모습이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함께.


2024년 2월 19일 김창완 아저씨가 쓰신 아침창 오프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