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빛들, 최유안> 책 읽다가
지금 두 권 책을 읽고 있다. 둘 다 내 직업과 연결시켜 말할 거리가 있어 고민하던 중에 최유안 작가 <먼 빛들>을 읽으며 좀 더 감정이입된다. 미국에서 생활하던 은경이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다. 은경의 전공은 국제 통상으로 법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첫날 행정실에 들러 자신을 소개했더니 연락이 안 되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흔한 카톡 하나 없냐는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교수회의에서도 마찬가지다. 갓 들어온 교수가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 혼란스럽기밖에 더 하겠냐며 은근히 적당히 알아서 빠지라는 시선.
교수회의에서 눈치 보고 빠져나와 은경은 자신의 연구실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1시다. 복도를 빠져나가는데 신음소리가 들린다. 학과장과 행정실 직원으로 알았던 예은이다. 예은은 행정실 직원이 아닌 대학원생이었다. 교수회의에서 한 교수가 언제까지 학교에 있을 거냐고, 더 넓은 사회로 나가라는 말을 던지는 장면에서 조교쯤 되나 했는데 대학원생으로 조교일도 여러 교수의 일, 근로학생으로까지 일하고 있었다.
복도에서 은경과 예은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쳐도 은경은 아는 척할 이유가 없지만 둘 사이가 궁금했다. 예은은 단도직입적으로 은경의 방으로 와서 눈 마주쳤는데 왜 그냥 갔느냐고 따져 묻는다. 둘의 대화가 집중되는 장면이다. 은경은 예은이 그 밤에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설령 거기 있더라도 그냥 뭘 하고 있나 보다 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요. 교수님, 그게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대학원생이 새벽까지 집에 못 가고 있다는 게?”
은경의 귀에 자꾸만 그날 복도에 흐르던 여자의, 아니 황예은의 교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공부에 집중하다 보면 늦어지기도 하니까요. 그런 건 줄 알았어요.”
은경의 말에 황예은이 고개를 가로로 세게 저었다.
“그게 아니에요.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거라고요.”
황예은은 은경을 똑바로 바라봤다. 크고 애틋하고 금방이라도 울먹거릴 것 같은 눈망울이었다.
“저도 매일 밤 학교에 남아 있는 게 지긋지긋해요. 지도교수님 특성과 습관에 따라 뒤치다꺼리를 다 하면서 생활한다고요. 연구단에 행사라도 있으면 스트레스도 심하게 받고요. 그날도 그래서 새벽까지 제가 있는 모습을 보셨고요. “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여기로 온 교수님이 아니면 한국의 대학원 문화를 깊이 생각하고 함께 고민해 줄 사람이 없어요. 다들 제 살기 바쁘거든요. 저희 학생들, 다들 웃고 있어도, 마음속에는 시꺼멓게 타고 남은 제가 들어 있을걸요.”
황예은의 눈망울이나 말투, 대화가 오가는 분위기가 은경으로 하여금 황예은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왔다는 게 아니라, 대학원생 황예은의 생황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돈을 제대로 버는 것도 아니고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 대학원의 애매한 시절을 견디는 것은 당연한 용기와 약간의 자기애와 비애, 자꾸만 따라붙는 낭패감과 끊임없이 싸우는 일이었다.
잊고 있던 은경 자신의 대학원 시절도 떠올랐다.
전공은 다르지만 예은을 통해 자신을 반추했을 법한 은경의 저 문장 ‘자신의 대학원 시절도 떠올랐다.’에 내 대학원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어땠나. 얼마 전 티비를 보다가 비슷한 생각 했다. 나는 두 군데 대학원 면접을 봤다. 한 곳은 치대, 다른 한 곳은 의대. 치대 대학원이 떨어졌으니 의대 면접을 봤겠지. 아직도 그 교수가 했던 질문이 생각난다. 대학원에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
무슨 말을 했어야 했나. 나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동물 실험이 기본인 곳이라 동물 관리에 대해 얼핏 들었다. 지금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본다면 이직하고 싶은 곳의 정보를 미리 조금이라도 보고 갔을 테지만, 그 당시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학원 강사로 1년 있었다가 대학원으로 진학할 생각에 무작정 이력서부터 냈다. 그게 실수일까. 어떻게 할 거냐는 말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것인지 내 태도에 대해 묻는 것인지 헷갈렸다.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열심히 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닥쳐봐야 아는 일이지. 내가 적응한다고 마음먹는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열심 말고 없는데. 교수는 그 말이 탐탁지 않았겠지. 뜨뜨미지근한 반응에 여기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어차피 동물 실험은 정말 하고 싶은 분야도 아닌데.
두고두고 이 말이 남는다. 열심 말고 뭘 어떻게 표현해야 했을까. 내가 한다는 열심은 황예은이 하는 연구 외에 잡다한 교수 심부름까지 포함되었을까. 지금은 이런 관행이 많이 없어졌고, 다음 면접 본 곳의 교수는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성격이라 교수 자체보다 실험실 팀원의 사이에 집중했다. 그 덕에 대학원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동료운 좋게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잡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잡무도 잡무지만 사회적으로 구조적인 부조리가 심했다. 인건비, 수당 관리에서 특히 심한 시절이었다. 나는 대학원 실험실에서 졸업한 후 연구원 신분으로 10년 정도 일했다. 다음 직장으로 이직하게 된 이유는 연구비가 줄어드니 인건비도 모자라니까 교수가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했다. 스스로 다른 곳을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교수가 이직할 곳을 추천해 줬다. 공동연구 하고 있는 교수의 다른 실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두 번째 실험실은 인근에서 악명이 높은 방이라 망설였지만, 이어서 일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그곳을 가기로 했다. 교수도 거듭 언급하기도 했고.
대학원 시절에 4대 보험 시스템이 없었다. 연구비가 줄어들 때쯤 4대 보험이 만들어졌는데 이것도 연구비에서 측정해야 했다. 교수는 퇴직금을 연구비에서 따로 마련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10년 일한 곳에서 퇴직금 한 푼 못 받고 다음 실험실로 이직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결혼했다. 일을 그만두고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이 퇴직금에 대해 물었다. 가슴이 쿵쾅 거렸다. 퇴직금 없다고 말해야 하는 내가 너무 초라했고, 겁이 났다. 남편 성격에 가만있을까 싶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부끄럽다. 노동청에 신고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사이좋던 교수와 제자 사이가 끊어졌을까. 끊어지더라도 신고했어야 했을까. 남편에게 상황을 말했더니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화. 다음은 어이없음이다. 나라도 그랬겠지. 어쩌면 나는 남편을 더 비난했을지 모른다.
<나의 아저씨> 드라마에 백수 아들들 보고 고두심이 말했다. ‘고학력 무능력자들.‘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직도 나는 고학력 무능력자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실험 외에 사회에 대해 경제에 대해 뭘 잘 아는지. 대학원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이자 후배는 아직 있다. 이제 교수는 정년을 바라보고 있고 연구비도 종료되었다. 교수는 이제 더 이상 실험하지 않겠다고 하며 나와 마찬가지로 친구가 이직할 실험실을 알아봐 주셨다. 친구는 20년 된 묵은 짐을 정리한다고 요즘 바쁘다. 그 짐을 정리하며 그 시절 묵은 마음도 정리되길 바란다. 좋은 게 좋았던 시절은 이제 갔으니 다른 곳에서는 지금처럼 지내지 말고 연차, 월차 잘 쓰길 바란다. 나도 나와 보니 내가 얼마나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나 싶다.
두 번째 직장에서 내 사수에게 같은 직종 남자 친구 사귈 마음은 없느냐고 물어봤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생각도 보는 것도 마이크로 단위로 하는 것 같아서 싫어요.’라고 했다.
딱 그렇게 나도 살았지 뭐. 고학력 무능력자에 마이크로 단위밖에 볼 줄 모르는 식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