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렸을 때 혼자 끄적였던 글을 읽으면
잊고 있던 그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훌륭한 문장과 표현이 아니어도
충분히
그때의 풍경과 냄새와 느낌이 모두 피부에 생생히 닿아온다.
아이들이 그랬구나, 내가 그랬구나
새삼스러움에
그때 더 많이 써둘 걸, 남아 있는 글이 적음이 아쉽다.
어느덧 내 품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자기만의 세상을 짓고 있는 아이들.
예전 같은 꼬물거림이 없어 그 느낌을 흉내내 담을 수가 없다.
2018.6.10
아이 키우는 재미가 이런 건가 싶은 날들이 이어진다.
뭐 물론 늘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인생사가 다 그렇듯이 내가 낳은 아이지만 365일 24시간 아이가 예쁜 것만은 아니다. 아이가 애미 속을 긁고 화딱지 나게 하는 새카만 순간은 이쁜 걸 다 덮어버리기도 하니까.
일전에 조리 이모님이 “엄마가 체력이 좋아야 애도 더 이쁘다” 하셨는데, 정말 공감된다. 내가 몸이 피곤할 때면 아이의 울음을 더 참기 힘들다. 보통 땐 ‘그래, 허허’ 하며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떼쓰기도 잠이 모자라거나 몸이 아플 때면 내 온몸에 바늘처럼 콕콕 박혀서 일초도 견디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야말로 저 밑에서부터 끌어올려진 “복식고함”을 지르게 된다. “그만 해!”. 아직 어리니까, 떼쓰는 게 어쩌면 당연한 나이일지라도 늘 참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괜시리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되는 때가 있는데, 곧 후회하고 아이를 끌어안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늘 반복되는 참 요상한 일이다. 그래도 이런 일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미안해” 한 마디를 꼭 전하려 노력한다. 비록 내가 성인군자가 아니니 그럴 수도 있다쳐도, 자꾸만 무뎌지면서 혼 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아지지 않도록. 또 나중에 아이가 더 커서 야단을 칠 일이 있을 때, 그 마음 뒤에는 혼을 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미안함, 사랑이 있음을 기억해줬으면 싶어서.
2018.6.28
매일매일 새 엄마
아이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첫째 다르고 둘째 다르고
매일매일 새로운 아이의 새로운 엄마
2019.4.12
밤.
두 아이가 잠든 후의 집은 공기가 달라진다.
아직 걷지 못하는 둘째는 물론이고, 언제 어디서 사고칠지 모르는 첫째 녀석을 끊임없이 살펴야 하는
팽팽하게 조여오던 긴장감이 느슨해져서일까.
잠들고 난 아이의 방 문을 나설 때면 부드러운듯 느른한 공기가 코끝으로 훅 끼쳐온다.
한 명씩 차례로 씻기고 재우고 나서야 찾아오는 자유의 시간은 그야말로 달콤하다.
저녁 8시 무렵이면 거실 불도 어둑어둑하게 바꾸는 우리 집은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안방만 홀로 환할 뿐이다.
그렇게 홀로 환한 방에 앉아 잠을 기다리다
아이들의 냄새가 그리워 다시 각자의 방에 찾아들어가 킁킁거린다.
2019.5.4
둘째 아이 정수리에서 달큰한 코코넛 냄새가 난다. 낮잠 자다 깨서 칭얼거리는 녀석을 끌어안고 뒹굴거리니 달큼한 냄새가 묻어난다. 요즘 아이가 즐겨먹는 김과자엔 코코넛이 쏙쏙 박혀 있는데 그걸 많이 먹어 그런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