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8
먹을 것 혹은 맛을 표현하는 말들을 좋아한다.
먹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고 대식가는 더더욱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먹을 것에 조금도 관심 없게 생긴 저체중의 중년일 테니, 그저 그런 정도의 애정과 관심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먹는 즐거움, 그 즐거움의 가치를 존중한다. “알약 한 알만 먹으면 배가 불러서 밥을 먹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입 안에서 씹히는 음식들의 식감, 다양한 맛, 조리법에 따라 달라지는 재료의 느낌 등을 좋아해서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출간한 에세이집에서도 가장 먼저 쓴 글이 먹을 것에 관한 것이었다. “오크라”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과 느낌을 적었으니.
맛에 대한 다양한 형용사가 참 좋다.
달콤하고 씁쓸하고 말캉하고 쫀득하고 짭짤하고 시큼하고 바삭하고…
심지어 “달콤씁쓸하다” 혹은 “시큼짭짤하다”처럼 따로 있으면 다른 뜻의 단어가 합쳐지면서 또 미묘하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으니 더 흥미롭다.
삶이 맛과 비슷해, 뭐 이런 비유를 할 것도 아니다.
그냥 내 눈 앞의 음식과 그 맛을 이야기할 때면, 그 작은 무엇이 특별해진다. 그렇게 맛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내 잔잔하고 별 거 없는 소소한 일상이 가치 있는 행위로 변하는 기분이다. 그저 모양과 냄새, 맛을 내 취향의 단어로 풀어가며 설명하는 것 뿐인데 “이거 봐요, 여기서 느끼는 여러 가지만으로도 꽤 괜찮잖아요.”라고 누군가 다독여주는 느낌.
보통의 날들은 바쁘게 끼니를 때우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적당히 만들어 먹지만, 때로는 재료 하나를 다듬어 가면서도 맛을 상상하고 먹는 걸 그려보는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세상에는 신기한 재료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어찌나 많은지.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