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1
차 한 대를 보냈다. 사실상 우리 가족의 첫 차이다. 남편이 결혼 전 시어머니가 타시던 낡은 차를 물려받아 타다가 우리 부부가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장만한 차이다. 유학 직후라 모아둔 돈은 없는 형편에 비슷한 예산의 차 중 제일 비싼 차여서 망설였는데 시승 후 더 욕심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첫째가 태어난 지 2개월 정도 되었을 때라 안전하고 튼튼한 차에 태우고 싶었고, 그렇게 우리 큰 아이와 나이가 같은 차로 함께 했다. 요즘 세상에 만 8년 가까이 탔으니 제법 오래 탄 셈이다. 뭐 가끔은 십 년 이십 년 탄 차라며 뉴스 기사에 나오는 이야기도 있지만, 요근래 한국 사람들은 차를 바꿔 타는 햇수가 점점 짧아진다고 하니 주위에선 오래 탄다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차는 애칭도 붙여 주어 “보붕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보붕이보붕이“하며 타지 않을 때도, 주차장에 있는 차를 보며 ”안녕“ 인사를 하곤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여기저기 함께 다닌 차라 정이 많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둘이니 카시트를 뒤로보기로 설치한 것도 두 번, 신생아 카시트, 토들러 카시트, 거기에 첫째가 크면서 주니어 카시트까지 다양하게도 설치했다. 뒷자리는 늘 그렇게 카시트가 장착돼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잘 태우지 못한 영역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큼에 따라 비좁아져서, 특히 겨울에 온 가족이 그 차를 타고 이동하려면 두꺼운 겉옷까지 한데 모여 꾹꾹 눌러 쑤셔박기도 해야 했다.
그러다 이른바 패밀리카를 장만하게 되니 그 차는 나 혼자 출퇴근용으로만 많이 타게 됐는데, 굳이 차를 여럿 둬야 하는 생각에 결국은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아쉽다. 다른 정든 물건은 꼭꼭 싸매 창고 구석에라도 놔두고 이따금씩 꺼내 볼 수 있는데, 차는 우리가 대저택에 사는 것도 아니고—게다가 세금도 내야 한다—잘 사용하지 않는데 그냥 둘 물건이 아니니까.
아직 말도 못하는 시절, 꼬물거리는 손가락으로 떼어준 꽃모양 스티커도 붙어 있고, 뒷좌석 창에는 어느 날 미술관 방문 후 기념으로 사온 하회탈 스티커도 붙어 있다. 뒷좌석 카시트에서 불편하다고 울던 녀석들, 특히나 내가 혼자 운전 중에 울다울다 분유와 이유식 먹은 걸 다 토해서 진땀을 빼게 했던 둘째 어릴 적의 모습도 생생하다. 용감하게 아이들 두 녀석 태우고 고속(화)도로를 오가야 하는 친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비상등 켜고 다른 차들이 합류하는 길목 끝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아이를 달래다 결국 어딘지도 모르는 채 첫 번째로 나가는 길로 빠져 통행없는 곳에 정차하고 뒤좌석 카시트 둘 사이에 껴서 작은 애를 달래주었다. 이미 내 정신은 혼미하지만 누굴 부를 수도 없어서 한참 찌그러져 앉은 채 아이가 진정된 걸 확인한 후 서둘러 집에 돌아갔다. 여담이지만 그때 아이가 아직 어릴 때 혼자 운전하는 엄마를 찾아 울면 대리 운전을 불러야겠구나 생각하고 번호도 알아놨다.
그런 일만 있었겠는가. 8년 동안 별별 일 다 있었던 차인데. 팔 부러지고 눈썹 위 찢어진 첫째 태우고 응급실을 오갈 때도 함께 했고, 차를 타고 부산, 거제, 양양, 고성 등등 참 여기저기 다녔는데. 재미있는, 어이없는, 아찔했던, 평온했던 많은 순간들을 함께 했던 차. 이제 또 누군가의, 어느 가족의 좋은 차가 되기를 바라야지.
어제 아이들에게 차에 인사하라고 하니 두 팔 벌려 차를 안아주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마음이라곤 없는 철 덩어리지만 아이들에겐 함께 한 시간이 길고 좋았던 친구로 기억될 것이다.
아쉽다. 시원한 마음 없이 그저 아쉽다. 안녕 보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