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흰 우유와 소보로

2022년에 꺼내 먹는 2021년의 글 <읽는 먹방>

by 덩이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불렀던 먼 옛날이야기다.

학교에서 우유와 빵 급식을 했다. 지금처럼 무상이 아니라 원하는 학생들만 유상으로 운영했던 걸로 기억한다. 2교시를 마치고 당번들이 그날의 급식 빵과 우유를 받아오면 우리들은 달려가서 자신의 몫을 챙긴다. 그냥 가져가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신중하게 우유팩 바닥을 보고 골라갔다. 우유팩 바닥에 있던 숫자가 더 큰가 대결했던가. 그 시간이면 늘 칠판 앞이 북적였다.

급식 빵은 우리 지역의 중소업체에서 만드는 것을 제공받았다. 포장 비닐이 조잡했고 빵의 질이 고르지 않았다. 나는 급식을 먹을 때 역한 우유 비린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숨을 참고 우유를 한 번에 다 마신 뒤에야 빵을 먹는 스타일이었다. 그중 곰보빵으로 불렀던 소보로빵이 그나마 가장 좋았다. 소보로빵이 급식인 날은 고소하고 달콤한 소보로 부분이 되도록 두툼하게 붙어있는 것으로 고르려고 눈이 바빴다.

어느 날,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짝꿍이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신의 빵과 우유를 받아달라고 했다. 우유를 두 개 집어올 때만 해도 평범한 하루였다. 그날의 빵은 소보로였고 하필 남아있는 빵 중에 소보로가 먹음직하게 붙어있는 것은 딱 하나. 남은 것은 소보로 가루만 조금 붙어있는 것들 뿐이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짝꿍이 책상 위 자신의 빵을 한 번 보더니 묻는다.

-니거는?

-......

그 순간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졌다. 예상을 한 듯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 둔 큼직한 소보로가 붙은 내 빵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큰 걸 쟤한테 양보할 걸 그랬다고, 착한 아이였던 내게 걸맞지 않은 행동이었다고 후회했다. 친하지도 않은 그 애한테 내 속을 들킨 게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 그 소보로빵을 꺼내 먹었는지, 그 뒤로 그 애와 어떻게 지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시절의 급식시간을 떠올리면 코끝이 찡긋거리며 울렁거리는 느낌을 오랫동안 받았다. 청결하게 관리가 되지 않은 우유 상자에서 늘 우유 썩은 냄새가 났고, 카스텔라를 먹을 땐 달걀 껍데기를 씹기 일쑤였다. 커서도 한동안은 종이팩에 입을 대고 흰 우유를 마시면 어디선가 이상한 비린내가 나는 듯했고 오랫동안 카스텔라를 싫어했다.

우유 냄새에 대한 트라우마는 빨대와 커피우유로 해결이 되었다. 흰 우유에 빨대를 꽂아 먹으니 종이팩이 입에 닿지 않아 좋았다. 흰 우유 대신 칼슘 보충을 핑계로 먹던 커피우유는 오랫동안 나의 아침 겸 점심이었다. 대기업에서 나온 비싼 카스텔라는 긴장하지 않고 먹어도 달걀 껍데기가 절대 씹히지 않았다. 이젠 우유도, 카스텔라도 내게 안전한 식품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다. 다른 비슷한 경험으로 바지락이 있는데 바지락 씹는 일은 아직도 두렵다. 언제 어디서든 먹을 때마다 한 번씩은 와그작 모래알이 걸린다. 바지락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포기했다.

우유 썩은 냄새보다 카스텔라 속의 달걀 껍데기보다 더 강렬하게 남은 그날의 소보로빵 사건 이후, 오랫동안 내 몫을 챙기는 걸 부끄럽게 느끼며 살았다. 그날의 어린 나를 다시 만난다면 내 몫의 소보로빵을 당당하게 뜯어먹어도 된다고 얘기해 주며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이 글의 제목은 백석 시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차용하였습니다.

우적우적

2022년 8월 세 번째 주말

아이의 초등학교 첫여름방학이 곧 끝난다. 다시 우리의 생활리듬을 되찾을 수 있겠구나.

이전 14화입덧의 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