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사랑

2022년에 꺼내 먹는 2021년의 글 <읽는 먹방>

by 덩이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대충 때우고 진한 냉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보냈다. 어린이집 다녀온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나니 허기가 몰려온다. 신랑이 냉동실에서 꺼내 놓았을 양념고기를 볶아서 바로 저녁을 해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들어가려는데, 놀이터 앞에 순대 차가 와 있다. 어? 고민도 하지 않고 끌리듯 앞에 가서 선다.

-사장님, 찹쌀 순대 하나 포장해 주세요.

예전에 시장 근처에 살 때는 순대가 메인이고 어묵과 중국산 옥수수를 같이 파는 할머니의 순대를 사 먹었다. 내장도 싱싱하고 순대도 맛있었다. 올 초에 이사 온 이 동네에는 정갈하게 포장해서 파는 분식집 외에 순대만 파는 집이 없다. 그래서 가끔 오는 순대 트럭이 참 반갑다. 오로지 순대만 판다. 찹쌀순대는 사천 원, 전통순대는 오천 원이다. 내 취향은 당면이 들어간 찹쌀순대다. 얇지 않게 도톰하고 크게 잘라 달라고 요청드린다.

-사장님, 순대 조금 더 크게 잘라주셔도 됩니다.

아이도 배고팠는지 순대 맛있겠다, 빨리 가서 먹고 싶다 한다.

-얼른 가서 아빠랑 같이 먹자.

아까 아이랑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 코로나 예방접종 주사를 맞고 온 남편이 잠깐 들렀었다. 먼저 들어가서 냉동실에 얼어있는 돼지고기 양념해 놓은 것을 꺼내 놓고 밥을 안쳐 놓겠다고 했다. 저녁 먹기 전 애피타이저로 다 같이 순대를 먹으면 되겠다.

까만 비닐봉지를 덜렁거리며 집에 들어가니 남편이 우릴 보고 눈이 똥그래진다.

-그게 뭐야?

-순대.

-아...... 내가 순대 사 왔는데.

-엉?

오늘 나처럼 빈약한 식사를 한 신랑이 놀이터에 들렀다 집에 가는 길에 순대 트럭을 만났고, 배가 고파서 순대를 샀고, 이 인분 중 일 인분을 먼저 먹었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해 볼 걸.

-이따 또 먹으면 되지.

제 때 제 역할을 못하게 된 순대 일 인분이 아까워진다. 뜨끈할 때 바로 먹어야 제 맛인데. 신랑이 사 온 오천 원짜리 전통순대는 잠시 두고 내가 사 온 찹쌀순대를 뜯어 아이와 먹는다. 쩝쩝. 역시 찹쌀순대가 맛있네...... 그런데 언제부터 신랑이 이런 걸 알아서 사 왔지?

언니랑 여동생이랑 자취를 할 때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전화를 했다.

-뭐 사갈까?

그리고 대답은 늘 비슷했다.

-그냥 아무거나, 쫄깃한 거.

그럼 그날 각자의 기분과 선택에 따라 먹을거리를 사서 집에 들어간다. 닭발이나 곱창을 포장해 가기도 하고 마트에서 떡볶이 재료를 사거나 과자와 젤리를 한 보따리 사서 들어가기도 했다. 그게 우리 자매들의 사랑의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나중에 자취집에 남동생이 합류하고도 계속되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나는 늘 하던 대로 전화를 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뭐 사갈까 물어보고, 신랑이 없다고 해도 뭔가를 사들고 들어갔다. 반대로 신랑은 우리 집 문 앞에서 붕어빵을 판다 해도 퇴근길에 사들고 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신혼 초엔 서운한 생각도 들었지만 나중에 알았다. 신랑은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랬던 신랑이 요즘은 술을 한 잔 걸치면 뭔가를 사 온다. 빵을 한가득 들고 오거나 따끈한 붕어빵을 품에 안고 오기도 하고 뜬금없이 햄버거를 사 오기도 했다. 아이 얼굴만 한 옥수수 술빵을 세 덩이 안고 온 적도 있다.

나는 이제 뭐 사갈까 묻지 않는다. 빈손으로 집에 들어가는 날 신랑이 뭐 안 사 왔어? 묻는 일도 생긴다. 십 년 가까이 같이 살다 보니 서로의 스타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나 보다.

셋이 먹으려고 사온 찹쌀순대를 둘이 먹고 나니 배가 든든하다. 혼자 순대를 다 먹은 신랑한테 배불러서 저녁 먹을 수 있겠냐며 물었다.

-오빠 배부르지 않아? 금방 저녁인데 우리 순대를 너무 과하게 먹었어.

-에이, 그렇게 약한 소리 할 거야? 순대 그거 먹고?

결혼한 이후 야금야금 살이 찌더니 아이 낳고는 살이 더 불었다. 살이 빠질 생각을 안 한다. 내가 뺄 생각이 없는 게 더 정확하겠구나. 나도 그렇고 신랑도 그렇다. ‘우리 이러니 살이 찌지’ 그러면서 또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 준비를 시작한다.

전기압력 밥솥은 칙칙 돌아가며 저녁밥을 만들고 있고 냉동실에서 꺼낸 고기는 거의 다 해동되어 볶기만 하면 된다. 신랑이 사 온 모둠순대는 밀폐용기에 넣고 냉동실에 보관했다. 나중에 꺼내 먹으면서 순대로 엇갈린 오늘 일이 떠오르겠지.

이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이 나쁘지 않다.

달다

2022년 8월

며칠 전의 일이다.

술을 잔뜩 마신 남편이 피자 한 판을 들고 집에 들어왔다. 저녁을 잔뜩 먹고 난 뒤라 크게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성의를 봐서 피자 상자를 연다. 원형이어야 할 피자가 타원형으로 상자 한쪽에 찌그러져있다.

피자 맛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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