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g 쌀을 샀다. 부엌 바닥에 앉아 플라스틱 병에 쌀을 담다가 ‘마지막이다’ 방심한 순간 우수수 쏟았다. 바닥에 떨어진 쌀을 손바닥으로 찍어 눌러 담다가 엄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를 임신한 내내 생쌀을 그렇게 먹었다는 이야기.
익히지도, 씻지도 않은 딱딱한 생쌀이라니. 임산부에게 좋은 간식이 분명 아니었을 텐데도 엄마는 뽀얀 쌀에 저절로 손이 갔다고 했다. 이제 그만 먹어야지 마음먹고 다락에 쌀 포대를 숨겨 놓았다가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지면 한 대접 퍼 와서 또 오독오독 씹어먹었단다. 생쌀을 먹어 본 기억을 떠올려보면 쌀알은 씹을수록 고소하고 단맛이 올라오긴 했다. 그래도 앉은자리에서 생쌀을 몇 공기씩 먹는다는 건 입덧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특이한 식성이다.
엄마는 생쌀뿐만이 아니라 언니의 분유도 엄청 먹었다고 한다. 하얀 쌀과 하얀 가루만 보면 입에 넣고 싶은 충동이 들어 나중엔 밀가루도 먹어볼 정도였다고. 밀가루를 입에 넣어본 뒤에야 생으로 먹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다니 웃기면서도 애처로운 입덧이다.
그 시절의 엄마가 좋아한 건 뽀얀 맛이다.
텁텁하면서 구수하고, 단조롭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맛.
당시 아빠의 입장에선 한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다거나 새벽에 호떡이 먹고 싶다거나 하는 입덧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을까 아니면 그런 걸 사다 줄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을까. 이건 알 길이 없다.
입덧을 절대 안 할 것만 같았던 나도 입덧이 있었다. 과음한 다음날처럼 메슥거리고 하루 종일 멀미하는 느낌을 잠재운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대만 카스텔라 사진. 임신했을 당시 그 카스텔라 가게가 대유행의 직전이었다. 커다랗고 노오랗고 폭신하고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녹을 것 같은 카스텔라 사진을 보면 출렁거리던 뱃속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먹고 싶지는 않았고 커다란 카스텔라 사진이면 충분했다. 느글거리는 느낌이 올라올 때면 다운받아 놓은 대만 카스텔라 만드는 사진을 보면서 속을 달랬다.
오히려 출산 후에 구운 식빵과 구운 가래떡을 아무것도 바르거나 찍지 않고 먹어댔다. 마치 입덧처럼 그런 것들만 유독 당겼다. 구수하고 잔잔한 맛. 어딘가 엄마의 뽀얀 맛과 조금 닮아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그 옛날의 엄마는 생쌀을 오독오독.
노산이었던 나는 구운 식빵과 구운 가래떡을 우물우물.
입덧은 친정엄마를 닮는다고 하던데. 엄마는 나를 낳고 생쌀을 딱 끊으셨다는데 나는 아기를 낳고 몇 주간을 구운 탄수화물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엄마로부터 온 입덧 유전자가 결국은 나중에 발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걸어 엄마한테 물었다.
-나 가졌을 때 왜 그렇게 생쌀을 드셨어?
-몰라, 왜 그렇게 그게 땡겼는지......생쌀을 그렇게 씹어먹어서 이가 안 좋아졌나? 근데 너 낳고 나니 먹고 싶은 생각이 딱 사라지더라. 희한하지.
-진짜 신기해. 나 아까 쌀 담다가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엄마한테 다시 물어보고 싶더라구.
-참, 담에 오면 쌀 가져가. 해남서 쌀을 많이 보내주셔서 김치 냉장고에 넣어놨어. 찹쌀도 가져가구.
엄마와의 통화는 자주 이런 식으로 마무리된다.
-김치 해놨으니 가져가, 지난번에 볶아 준 멸치는 다 먹었니?, 김서방 겉절이 좋아하니 다음에 올 때 해줄게, 도토리묵 가루 사놨으니 다음에 쑤어줄게, 요즘은 뭐 해 먹니, 상추가 요새 맛있더라.
요즘 뭐해먹는지, 손주랑 사위는 잘 먹는지, 김치는 안 떨어졌는지 궁금해하는 엄마와의 통화가 문득 귀찮아지려고 할 때가 있다. 엄마에게서 태어나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사이라는 것만 믿고 자꾸 소홀해지려고 할 때마다, 먼 훗날 그리워할 수도 있는 순간이 될 수 있다 생각하면 아득해지고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조금은 예의를 차리며, 조금은 긴장감을 가지고 예전보다 훨씬 더 성숙한 마음을 갖고 엄마를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엄마의 말을 지적하지 말기, 긍정적으로 맞장구쳐드리기, 해주신다는 음식 다 받기, 해주신 음식 남기지 말고 다 먹기, 맛있었다고 꼭 전화하기.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 전엔 왜 안 했을까. 왜 못했을까.
남들한테는 좋은 사람 소리 들으려고 애쓰면서 엄마한테는 왜 그렇게 애쓰지 않았을까.
엄마라서 그랬나 보다. 우리 엄마라서.
마흔이 훌쩍 넘은 나는 엄마를 점점 닮아가고 있다. 엄마의 입덧도 닮았고 성격도 점점 닮아가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엄마에게서 태어나서 참 다행이다.
후루룩
2022년 8월 오늘
주말 오전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셨다.
주말인데 밥은 잘 챙겨먹었는지 딸이 먼저 궁금해야 할 질문을 하신다. 지난번에 갔을 때 손주들이 맛있게 먹던 모습이 좋아서 복숭아 한 상자씩 보내주신단다. 복숭아는 여기서도 사 먹을 수 있지만 엄마가 보내주시고 싶다면 이제 말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