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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미쿡 아줌마의 당돌한 여행기-평양에 다녀왔어요1

모란봉 가는 길

by 보보

안내원과 나는 비탈진 콘크리트 길을 천천히 오르고 있다. 뜨거운 한여름 불볕더위 탓인지, 안내원은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뿜어낸다. 얼굴에 주르르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우리는 지금 모란봉에 오르는 중이다. 평양 도심에 우뚝 솟은 봉우리 모란봉. 그 모양이 마치 활짝 핀 모란꽃과 같다고 해서 모란봉으로 불린다. 모란봉의 높이는 96m이다. 아주 높지 않은 봉우리다. 모란봉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모란봉 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조경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콘크리트나 돌계단으로 되어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가볍게 오르는 모란봉 길이다. 길을 따라 군데군데 <청량음료>라는 간판을 단 매점도 보인다. 작은 정자도 예쁘게 꾸며져 있다. 여러 가지 편의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잘 꾸며진 듯하다.


몇 미터 앞에 양산을 받쳐 든 70대 노인들이 쉬엄쉬엄 걸어간다. 휴게소인듯한 건물로 들어간다. 더운 날씨 탓인지 모란봉 오르는 길에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워낙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 정도의 경사는 식은 죽 먹기다. 씩씩하게 걷고 있는 나를 향해 안내원이 말한다.

“리 선생님, 지치도 않고 아주 잘 걸으십네다. 아고, 나는 좀 쉬었다 가야겠습네다. 좀 쉬시자요.”


잠시 그늘에 앉아서 쉬며 근처를 둘러보았다. 일군의 여학생들이 나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중학생 정도 되었을까. 여리고 앳된 소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호기심이 발동해 그들에게 다가간다. 머리를 맞대고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서구권에서 들어온 바로 그 카드놀이다.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채 70년 휴전 상태로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북측이다. 내게는 북측이 미국의 문화나 물건은 의식적으로 배척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서양문화 내지 미국 문화의 일부로 볼 수 있는 카드놀이를 북한의 여중생들이 하고 있는 모습이 내게는 또 다른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 여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학생들, 안녕하세요? 나는 재미동포예요. 지금 뭐 해요? 와, 지금 카드놀이하는 거네요?”

“ 네, 우리 주패놀이합니다.”

머리핀을 얌전하게 꽂은 한 여학생이 수줍은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여학생들 모두 흰색 셔츠에 검정치마 그리고 붉은 스카프를 어깨에 두르고 있다. 소년 단복이다.

북에서는 서양식 카드놀이를 주패놀이라고 하나 보다. 여학생의 대답에서 새롭게 알았다.

여학생들은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자 하던 주패놀이를 멈추고 수줍어 어쩔 줄 모른다. 내 이름을 말하고 이름을 묻자,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해 알아듣기 어려웠다. 재미있던 하던 카드놀이도 멈춘다. 외부인의 존재가 불편한가 보다.


북에서 만났던 동포들은 대부분 스스럼없이 대해주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는데, 오늘 모란봉에서 만난 이 여학생들은 아주 얌전하다. 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고 남은 일정도 많고 해서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만 갈게요. 방해해서 미안해요. 학생들 계속 재미있게 놀아요. ”


북에서 만난 우리 동포들은 모두 각양각색이다. 저마다의 개성과 성격에 따라 나의 질문과 이야기에 대한 대답과 반응이 다 다르다. 그래도, 대체로 붙임성이 좋고 씩씩하다. 대답도 잘해 주고 오히려 나에게 이것저것 많이 묻기도 한다. 만주 벌판에서 말 달리던 고구려인의 정기를 받아서인가. 나와 대화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많은 평양시민들은 활달하고 명랑했다. 살갑고 활발하게 얘기를 잘하는 북녘 동포들도 있지만, 더러는 말을 걸면 수줍어서 대답을 잘 안 하는 동포들도 있다. 오늘 모란봉에서 만난 여학생들은 후자의 경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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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모란봉 을밀대



불쑥 다가가서 말을 건 나를 무례하게 여기지 않아 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거지를 조심하느라고 노력한다. 북녘 동포들을 보면 마치 70년 만에 상봉하는 이산가족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두 손 꼭 잡고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때로는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으리라. 수줍어 어쩔 줄을 몰라하던 여학생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멀리서 온 이 재미동포 아줌마는 그저 미안할 뿐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20190803_130649.jpg 모란봉 공원에 세워진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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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 정자 안: 가족과 나들이 나온 평양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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