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직경력 6년 차에 네 번째 학교에서의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교육시설, 교사 1명 당 학생수, 교사들의 복지 등 모든 면에서 내가 근무했던 이전의 학구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중산층 타운의 학구라는 것이 실감 났다. 신임교사 오리엔테이션이 열린 학교 건물은 최신 설비와 시설로 갖추어져 있었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건물은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 최첨단 시청각 교육 기자재를 갖춘, 기능과 미적 감각 모두가 훌륭한 건물이었다.
이 학교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포함하는 K-8 학교다. 교사와 보조교사 95명이 780명의 학생을 가르친다. 교사와 학생의 비율이 1: 8이다. 학생들 개개인의 특성과 요구에 기반한 개별화된 교육이 가능한 조건이다. 학생들의 재능과 특성은 다양하다. 학교에는 다양한 필요와 요구를 지닌 학생들이 다닌다. 미국 교육의 특성 중 하나는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교육이 더 신경 쓰고 노력을 기울여할 대상은 우수하고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다. 학교는 학습의 과정에서 장애를 느끼고 학력 성취가 낮은 학생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이 학교에서의 약자에 대한 배려는 매튜 효과 Matthew Effects를 방지하려는 노력으로 구체화되었다. 매튜 효과는 마태복음 25장 29절에 나오는 비유에서 유래한다.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넘치게 되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잃을 것이다.” 즉,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한 자가 된다”는 의미다. 이런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사회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현장에서도 존재한다.
아동의 읽기 능력과 발달에 대한 많은 연구에서 매튜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어휘와 읽기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점점 더 독해에 어려움을 겪고, 언어는 도구과목으로써 기능하기 때문에 사회, 과학, 수학 등의 다른 교과목에서도 학업성취도가 점점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어휘와 독해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어휘와 독해 능력이 더욱 빠르게 발전한다. 부진아동과 우수아동의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학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인 매튜 효과다.
교육현장에서의 매튜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교실에서 교사의 수업을 잘 따라오고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학생들은 자기 페이스에 맞게 학습하고 성장한다.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은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다. ADHD 주의력결핍장애, 난독증 Dyslexia, 메모리 문제로 인한 학습장애, 실행기능장애 executive function disorder 등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어렵게 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를 파악해 적절한 개입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학습과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전문영역의 교사들이 학생들을 돕는다.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지원하는 교사가 정규 교과 교사의 수에 버금갈 정도다.
학생이 학습 속도가 느리고 성과가 낮은 경우, 학습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구한다. 언어발달의 문제가 있는 경우 언어치료사의 수업을 받는다. 읽기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은 읽기 전문교사의 지원을 받는다. 각 분야별로 특수교사가 있어 아동의 발달 장애와 학습 장애에 맞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의 필요와 특성을 적극 배려하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 약자를 배려하는 시스템이기에 학업성취가 낮아도, 학습장애가 있어도,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학교현장이 약자 중에는 ESL 학생들도 있다. ESL 교사인 나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학생들이 영어교과와 정규 교육과정을 잘 따라가고 우수한 학업 성취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보통 30명이 학생들을 맡아 3~7명 정도의 소그룹 지도를 한다. 이런 소그룹 지도로 학생 개개인의 필요와 특성에 맞는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수업을 디자인할 수 있다. 교육재정의 압박으로 교사가 부족하고 교실이 부족한 전 학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런 필요한 보살핌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여건은 이 학구의 교육재정이 이를 뒤받침 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가 위치한 타운은 매사추세츠주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유한 타운이다. 2021년 통계에 의하면 미국 전체 10760의 학구 중 80번째 우수한 학구로 평가받았다. 상위 0.7 %에 속하는 학구다.
미국은 철저한 지방자치제도에 근거한다. 그 도시에서 걷히는 세금은 그 도시 주민의 복지와 공공 서비스를 위해 쓰인다. 부유한 도시의 교육재정은 견실하기에 그대로 교육 시설과 여건에 반영된다. 부유한 도시의 아이들은 좋은 시설,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 교사의 연봉도 학구별로 차이가 난다. 재정이 든든한 학구에서 실력 있는 교사를 유치하기에 유리하다. 부유한 학구의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다.
이 학교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아주 높다. 특히, 전 근무지인 저소득층 흑인 커뮤니티 학교에 비해 월등하다. 주에서 매년 실시하는 학력평가에서 이 학교 학생의 75%가 읽기 능력에서 능숙 Proficient의 성취도를 보였다. 전 학교는 학생의 21%가 읽기 능력에서 능숙의 성취도를 보였다. 계급과 인종별로 모여 사는 미국의 특성상, 학구는 사회계급적 인종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학생들의 학업성취에서도 계급적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중산층 가정의 학생들이다. 부모님들의 직업은 대부분 전문직종이다. 주변에 대학과 병원이 많아서인지 대학교수와 의사도 많다. 부모들의 교육과 학교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 교실마다 발룬티어 하는 부모님들이 넘쳐나고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기부금도 풍성하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삶의 여유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방과 후에 악기 연주, 스포츠 활동, 발레, 연극, 미술 등의 다양한 예체능 활동에 참여한다. 수업이 2시 30분에 끝나면,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바쁘다. 아이들은 자신의 관심과 재능을 살린 여러 가지 활동에 갈 준비를 한다. 엄마나 아빠들은 방과 후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아이들은 실어 나르기 바쁘다.
부모님들이 선택하고 제공하는 조직적인 활동이다. 재미와 여가를 위한 활동이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축구, 아이스하키, 발레, 재즈, 합창 등의 활동을 통해 팀워크,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스킬 등을 기른다. 학교나 기관에서 가치 있게 여기는 능력과 기술을 습득한다. 주류 사회에 진출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상하는 언어 스킬과 능력을 배운다. 미국 중산층의 가치와 문화가 기준이 되는 주류 사회에서 이미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여러 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 갖는 장점이다.
모든 조건이 잘 갖추어진 아이들. 좋은 교육환경에서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는 아이들. 배우고 성장하고 가운데 삶이 즐겁다. 이들에게는 밝은 미래가 보인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학력의 부모들은 자녀의 성취와 성공을 위해 경제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문화적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그들은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고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이 아이들은 밝은 미래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부모의 관심과 지원 속에 물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그들에게 아메리칸드림은 현실이다.
3년 전 함께 했던 흑인 커뮤니티 학교의 아이들에게는 없는 것들이다. 미국의 가난한 학구와 중산층 학구의 격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 현실을 지난 몇 년간 교사로서 체험했다. 그 현실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메꾸기 위해 우리는,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