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전진만 할 수 없을 때, 쉬어가도 괜찮아!
첫 미국 학교에서의 교사생활 1년 6개월 만에 사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49살 난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나를 잘 봐준 학교를 만나, 이곳에서 교직을 시작했다. 1년 반을 매일 기도하면 부족한 자신을 채찍하고 격려하며 열심히 가르쳤다. 다음날 가르칠 내용을 준비하기 위해 2-3시간 이상을 준비했다, 수업 안을 짜고, 아침에 1시간 넘게 운전을 하며 머릿속으로 그날 가르칠 내용을 연습했다. 주말에도 학교 일을 하느라 제대로 놀지도 쉬지도 못 하고 살았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가 가장 큰 힘이었고 보람이었다. 나를 믿고 지원해 준 슈퍼바이저인 ESL 디렉터 덕분에 1년 6개월을 잘 버티어 왔다. 첫해 내 근무성적은 모두 우수였다. 내가 가르친 이후로 학생들의 영어능력과 학업성적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과분한 평가와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알았다. 몇 주를 곰곰이 생각하다 결심했다. 12월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두고 슈퍼바이저인 초등 교장에게 사임한다고 말했다. 내가 처음 채용되었을 때는 ESL 디렉터였는데 그 사이에 초등 교장으로 승진하였다. 새 교사 뽑을 때까지 계속 근무하고 인수인계가 원활하게 잘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했다. 필요하면, 가을학기 끝나는 1월 말까지 근무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내 사정을 잘 이해했다. 그녀는 슬프지만 보낼 수밖에 없다고 이후에 추천서 필요하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교육의 기회균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학교이니만큼 교사들도 착하고 교사 사이의 유대와 결속력도 좋았다.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더구나 사회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학구여서 아이들 가르치는 보람도 컸다. 나를 처음 교직으로 발을 딛게 해 준 곳이다. 어떻게 보면 이 학교, 특히 내 슈퍼바이저가 아주 고마운 존재다. 미국 교사 경력이 전혀 없는, 그것도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나에게 교직의 기회를 주었다. 더구나 처음에는 교사 자격증을 면제해 주어 교사로 시작할 수 있었다. 교사자격증은 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첫 해에 시험을 다 통과해서 받았다.
이 학교가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긴 하지만, 업무강도가 매우 높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국의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하루 7시간 근무다. 이 학교는 하루에 8시간을 근무한다. 수업 외에도 점심시간, 버스 등하교, 놀이시간 등 학생들을 돌보는 업무가 많았다. 이런 lunch, bus, recess duty 업무가 많다 보니 노동의 강도를 가중시켰다. 통근 시간이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는 보스턴. 겨울에는 2시간 30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매일 두 시간 반 이상을 운전해야 하는 통근길은 추간판 협착증을 앓았던 나에게는 건강에 무리가 되었다.
매일 6시간의 수업을 해야 하는 힘든 스케줄을 감당해야 했다. 수업 시간 사이에 쉬는 시간이 없었다. 화장실을 참아가며 다음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과로와 높은 업무강도 때문인지 방광염이 걸려 여러 번 고생했다. 이 차터스쿨은 교사를 정말 초단위로 일을 시킨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업무의 분담과 이에 대한 감독이 철저하다. 일분, 일초의 시간 낭비도 없도록 일을 잘 시키고 효율적으로 교사들을 관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학교에 근무하며 다른 교사들로부터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봉급체계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나는 학교가 제안한 연봉을 협상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이 연봉에는 한국에서의 교직경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미국의 대학원 과정에서 이수한 학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나는 첫 직장을 구했다는 기쁨에 심취해 나를 너무 평가절하 해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연봉 조건은 학교를 그만두는 데는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나중에 학교를 옮기면서, 내 연봉이 적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늦게 알게 되었다.
나와 친하게 지냈던 아이티 출신의 언어치료교사는 이 학교에서 남녀 교사 간의 연봉이 불공정하게 책정된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학기 중간에 이 학교에 채용되었다. 남자 언어치료교사가 갑자기 그만 두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의 컴퓨터를 인계받아 쓰고 있던 그녀는 컴퓨터에서 그 남자 언어치료 교사의 연봉 계약서를 발견했다. 그는 그녀보다 수천 불 많은 연봉으로 계약했다. 그와 그녀는 같은 대학원 출신이고 경력도 동일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남자와 여자라는 점이다. 그녀는 미국 사회에, 특히 교직에도 여전히 남녀차별이 존재함을 말했다. 그녀는 한 학기를 마치고 몇 달 만에 이 학교를 떠났다.
이런 과도한 수업 시수, 수업 외의 (런치, 버스, 리세스 등) 업무에 대한 부담, 연봉체계의 문제, 연봉 인상 동결 등이 문제가 있음에도 이러한 교사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요구는 관리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차터스쿨의 특성상 교원노조가 존재하지 않았다.
강도 높은 업무, 과로, 장시간의 통근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다. 추간판 협착증과 위장병으로 다시 찾아왔다. 이대로 계속 근무하다가는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의 건강과 행복, 웰빙을 위해 이젠 그만 쉬어야 할 때다. 사직을 결심했다. 슈퍼바이저가 나를 위해 조촐한 송별회를 마련해 주었다. 많은 교사들 앞에서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ESL 학생들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으며 나의 헌신은 오래 기억될 것이라라는 송별사를 했다. 1년 반 만에 그만두기는 하지만 그래도 작으나마 뭔가를 기여하고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덜 무거웠다.
기회는 앞으로도 다시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내가 행복하게 가르칠 수 있는 곳에서 계속 도전하고 노력할 것이다. 인생에는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가 있는 것 같다. 인생은 무조건 직진을 한다고 다 능사는 아닌 듯하다. 요즘 자기 계발서들이 많이 나와 있다. 돈을 더 벌고 자신의 능력을 높여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는데 지나치게 열중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결국, 삶이란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 아닐까. 삶의 길에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나의 건강을 지킬 수 없다면 그것은 나의 길이 아닐 것이다. 삶이란 나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나의 낙관적인 태도 덕분일까? 사직 의사를 표하고 며칠 뒤에 집에서 25분 거리의 공립학교에서 ESL 교사를 구한다는 채용공고를 보았다. 더구나, 주 4일 근무도 가능한 조건이었다. 건강도 돌보며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이 학교에 지원했고 여러 번의 면접을 통해 교사로 선발됐다. 불가피한 사직이 더 나은 근무 환경에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셈이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다 보면 나에게도 달콤한 초콜릿을 집을 내일이 온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