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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Oct 19. 2021

미쿡교사가 되었다!

미쿡교사로의 첫 출근


2014년 8월 18일은 내 인생에 또 다른 장을 연 날이다. 그날, 49살 나이에 미국에서 제2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미국 공립학교 영어교사로 첫 출근을 했다.


나의 직장은 보스턴에 있는 공립 차터스쿨이다. 미국의 대부분의 학교는 8월 말이나 9월 초에 새 학년이 시작된다. 이 학교도 열흘 후인 8월 28일에 개학을 앞두고 있다. 새 학기 시작 전에, 8일간의 신임교사 오리엔테이션이 있다. 첫 출근은 바로 이 신임교사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는 것이다.


월요일 첫 출근을 앞두고 나의 가슴은 설렘과 기대로 부풀었다. 이제 새로운 직업의 세계에 발을 내딛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이 긴장감이 나를 두려움으로 몰아넣게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나는 계속 잘 해낼 수 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긍정의 격려는 긍정의 미래를 가져오는 힘이 있다.


긴장을 해서인지, 알람이 울리기 바로 직전 아침 5시 29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마침 아이와 남편이 여행 중이다. 집에 혼자 있어서 아침 준비가 한결 간편했다. 엄마들은 잘 알겠지만, 아이가 있으면, 일을 가더라도 챙겨주고 나가야 한다. 덕분에 첫 출근의 아침이 덜 분주했다. 점심에 먹을 김밥도 말고 물과 차도 쌌다. 동료 신임교사와 나눠 먹을 쿠키까지 준비했다.


늦여름의 선선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첫 출근길에 나섰다. 대부분의 보스턴 지역의 학교가 여름방학 중이서 길도 한산했다. 보스턴의 바다가 내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아담한 학교에 도착했다. 이 학교가 이제 나의 열정과 땀을 쏟을 곳이다. 오늘 오리엔테이션은 중요한 출발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용기와 열정이었다. 주차를 하고 학교 건물을 향해 걸으면서, 오늘도 용기를 내어 열정으로 밀어 부칠 것을 다짐했다. 두 주먹을 쥐고 발걸음에 힘을 주어 뚜벅뚜벅 걸었다.


미쿡교사 오리엔테이션


연수 프로그램은 학교의 미션에 대한 강의로 시작되었다. 차터스쿨은 일종의 자율형 공립학교다.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운영되지만 일반 공립학교와는 달리 교육 당국의 지시나 감독에 매이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많은 차터스쿨이 대안학교의 목적을 가지고 설립되었기에 전인교육과 창의적 교육방식을 추구한다. 주로 취약계층이 많은 도심 inner city 학구에 위치해 있다. 미국의 경우, 도심은 인구밀집지역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저소득층이나 이민자 등 소외계층들이 많이 살고 있다. 차터스쿨은 사립학교에 못지않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교육환경이 불리한 학생들의 자아실현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차터스쿨도 차터스쿨의 설립 목적이 가장 부합하는 학교 미션을 제시하였다. 열악한 보스턴 도심 공립학교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해 세워진 학교다. 학생들 대부분이 저소득층 가정과 흑인이나 라티노 가정의 자녀들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노력하는 학생들이 성공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고 있다.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나를 인터뷰했던 교장이  학교의 설립 정신과 연혁을 설명했다. 그녀는 오늘도 강렬한 눈빛과 힘찬 어조로 참여한 신임교사에게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열정과 헌신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우리 학교는 매사추세츠주 최초의 차터스쿨 중 하나로 차터스쿨의 모범이 되어 왔습니다…. 주정부에서 실시하는 학력평가인 MCAS의 성적이 최상위인 공립학교 중 하나입니다. 보스턴 도심 학교는 학생들 상당수가 저소득층 가정이나 취약계층 가정 아동들이고, 학교 환경이나 교육여건이 열악하며 학업성취도가 낮은 편임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우리  차터스쿨은 자립형 대안 공립학교의 특성을 잘 살려 수준 눞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에 학생들의 사회정서 발달과 학업의 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여러분과 같이 우수한 교사들의 헌신적인 교육활동의 결과입니다...”


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 선구적인 차터스쿨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배어 나왔다.


신임교사 교육 프로그램이 매우 체계적이고 내용도 알찼다. 각 과목별, 분과별 디렉터들과 선배교사들의 강의가 이어졌다. 학교의 설립 취지에 맞는 교육과 학생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무엇을 연구하고 고민해야지를 묻고 발표하는 내용이었다.  강의는 마치 교실 수업처럼 진행되었다. 신임교사 15명이 전체 토론을 하고 토론 후 각자 모든 참여자가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다. 두 명씩 짝지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전체에게 상대의 말을 대신 전하는 방식의 프레젠테이션도 했다. 또한,  2-3명씩 그룹으로 학교 설립 이념을 포스터로 만들어 발표하는 활동도 있었다. 전인교육을 추구하는 학교인 만큼 오리엔테이션의 분위기도 온화하고 웃음이 넘쳤다. 마치, 대학생 때 친구, 선후배와 엠티를 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다른 교사들 다 나보다 대략 20살은 어려 보였다.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한 신참교사가 2명이고 대부분은 경력이 2-3년 정도 된 교사들이었다. 젊음의 패기가 넘치는 20대의 청년들과 섞여 토론하고 활동을 하다 보니 나도 어느새 그들과 동화되었다. 20대로 돌아간 기분에 나도 젊고 발랄해진 느낌이었다. 함께 할 나의 동료들이다. 다들 착해 보였다. 그들의 첫인상이 좋았다. 상냥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내게 좋은 첫인상을 남겨준 나의 동료들에게 나도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첫인상. 내가 미국에서  대학원을 4년 다니면서 얻은 첫인상에 대한 교훈이 있다. ’첫 판에 잘해야 끝까지 잘할 수 있다. 첫인상이 일 년 아니 수년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자신감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감이 실력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믿는다. 열정적으로 자신감 있게 참여하는 모습을 이 미국 사회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초반에 길을 잘 닦는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참여했다. 또한, 이 사회는 질문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질문이 있다는 것은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의미이고 더 나아가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라고 본다. 이 사회에서 질문은 창의성의 시작이다. 강의 내용과 관련한 질문도 여러 번 했다. 또한, 강의자의 질문에 손 들고 대답도 했다.


오리엔테이션 내내 토론에도 적극 참여했다. 첫날에는 조금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손을 들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에게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는 일이다. 발표의 기회를 여러 번 갖자, 나의 가슴도 적응이 되는지 더 이상 콩 당거리지 않았다. 거리낌 없이 나의 생각을 표현했다. 나는 내 얘기에 빠지면 나도 모르게 온 몸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다. 이럴 때면 힘과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이 날의 나의 모습은 딱 그랬다. 온몸으로 열정에 차 말했다. 이 학교에서 나의 열정을 태우리라! 딱 이 심정으로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했다.


ESL 디렉터와 업무연관이 있는 다른 두 명 신입교사와 함께 미팅을 가졌다. 초자 교사인 내게는 많은 정보를 얻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기회였다. ESL 디렉터는 ESL 학생을 포함 모든 학생들의 읽기 능력을 진단할 수 있는 평가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과 시연을 했다. 이 내용을 숙지하고 연습해 내일은 내가 시연을 해야 한다. 나에게 첫 과제가 주어졌다. 첫날부터 과업이 생겼다. 역시, 나의 삶은 스릴이 넘친다. 오늘 밤 할 숙제가 생겼다.   


디렉터의 프레젠테이션가 끝나고, 팀워크를 위한 활동이 이어졌다. 디렉터를 포함해서 네 명이 두 명씩 짝을 지었다. 짝과 자신에 대한 얘기 공유하고 나서 다시 네 명이 모여 자기가 들은 짝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의 질문지가 주워지고 브레인스토밍 할 시간을 몇 분 가진 다음 두 명씩 대화가 시작되었다.


1. 나를 처음 만나면 나에 대해서 사람들이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점

2. 다른 사람들은 쉽게 발견 못 하지만, 반드시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나의 숨은 성격

3. 어린 시절 이후로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나의 성격이나 성향, 특성

4. 어린 시절 과는 달리 변한 나의 성격, 성향, 특성


나는 디렉터와 짝이 되었다. 그녀의 성장과정과 가족, 교사로서의 도전과 보람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나의 성장과정과 한국에서의 경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둘 다 외견상 보기에는 매우 외향적일 것 같지만 내면은 수줍음이 많다는 것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마음이 따뜻한 그녀.


그녀의 따뜻함과 됨됨이를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녀는 가슴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고 가슴으로 모든 이들을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고운 심성이 대화 내내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깊은 인간적 교감을 나누었다.


마음속에 그녀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했다. 나를 교사로 첫발을 딛게 해 준이가 바로 디렉터다. 나의 능력을 알아보고 인정해주고 나를 선택한 그녀가 고마웠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라니! 첫날 교사 오리엔테이션에서 경험한 디렉터는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다. 서로 공감하는 게 않아 나와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앞으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다.


고마움이 충만한 하루였다.


매일 과제를 하느라고 12시 넘어서 잤다. 매일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만만치 않은 과제를 하며, 내가 곧 뛰어들 미국 교사의 세계에서 맞닥뜨릴 도전이 어떨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렇게 힘든 8일간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내일 나의 학생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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