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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Oct 24. 2021

45살 아줌마, 하버드에 도전하다

45살, 공부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지금부터 11년 전이다. 40대 중반의 길목에서 인생의 또 다른 장을 열었다. 내 나이 45살. 하버드에 간 것이다. 2년 후, 하버드에서 응용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것도 4.0 만점에 3.97의 성적으로.  내 생애 학교에 다니며 받았던 최고의 평점이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끝내 목표한 학업을 이루어 냈다. 한창 공부하며 성취할 청년의 나이가 아니라 불혹의 나이에 이룬 성취다. 나에게는 박사학위 이상으로 소중한 석사학위다. 학교나 학위 자체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40대 중반에도 새롭게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성취의 경험은 나이를 잊고 끊임없이 도전하게 하는 힘이 된다. 나는 오늘도 나이는 진정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삶으로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50대 중반을 살고 있는 지금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항상 스스로에게 되뇐다. 물론, 나이 듦에 대한 생물학적 변화를 몸으로 느낀다. 가슴속에 솟구쳤던 열정과 몸에서 발산되던 에너지가 한창때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렇게 되뇌는 이유는 이런 변화를 핑계 삼아 여전히 부족한 나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까 봐서다.  나의 부족함과 취약함을 잘 알기에 그래서 성장을 멈출 수 없기에 스스로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인 셈이다. 10년 전, 40대 중반의 나에게도 이런 주문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남편과 정착하기 위해 미국에 온 지 몇 해가 지났다. 내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기르면서 새로운 나라에 적응해야 했다. 타국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려니, 어려움이 많았다. 육아와 집안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벅찼다. 이민 초기 몇 년을 엄마로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어느새 내 나이도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업주부로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40대 이민자 아줌마에게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단의 때가 찾아왔다. 38살에 시작해 다 마치지 못 한 공부를 다시 하고 싶었다.



2003년, 38살의 나이에 미국에 왔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 한 주립대학교에서 응용언어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나의 이민은 공부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문화, 언어에 적응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적극적으로 토론과 발표에 참여해 열정적인 몇 주를 보냈다. 중간고사에서 30여 명의 원어민 학생들을 제치고 최고의 점수를 받기도 했다. 미국에 온 지 몇 주 안 되어 여전히 교수의 강의를 100% 이해할 수 없는 나였지만 노력 하나만으로 교재와 교수의 강의를 외우다시피 해 시험 준비를 했다. 교수는 최고 점수를 받은 나의 서술형 답안지를 학생들에게 모범 답안지로 보여주기도 했다. 이제 막 한국에서 온,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의 노력과 성취에 그들은 박수를 보냈다.


30대의 끝자락에서 넘치는 열정과 패기로 시작한 미국 대학원 생활은 매일 보람과 성장, 성취의 연속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이었다. 주어진 모든 시간이 나의 것이다. 나의 시간을 온전히 학업에만 쏟으며 공부에 몰입했다. 첫 수업부터 자신 있는 자기표현과 수업 참여로 교수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었다.



한국에서 쌓은 경험과 나의 세계관을 나누었다. 나의 학생운동과 교사운동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회적, 역사적 체험에 대한 나의 이야기에  학생들과 교수들은 귀를 기울였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온  사람의 사회적 경험과 인식은 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사고로 다가오는 듯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단순히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의, 민주주의, 평화를 위한 투쟁과 땀과 피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우리의 노력과 헌신에 존경과 경외심을 표했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적, 사회적 경험의 폭과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그들의 가치에 부합했다. 이때 인연을 맺은 교수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한다. 그 이후 계속된 나의 학업과 취업 지원 과정에 언제나 강력한 추천서를 써 주며 나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다.


첫 학기의 힘찬 출발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계속하는데 어려움이 뒤따랐다. 임신, 출산, 육아의 어려움으로 공부는 미룰 수밖에 없었다. 첫 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심한 입덧이 시작되었다. 계속되는 구역질과 구토로 학교를 다니기는커녕 일상생활도 불가했다. 음식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못 했다. 두 달 정도의 입덧으로 몸무게는 9kg 정도가 줄었다. 결국, 수강연장  incomplete을 신청을 했다. 입덧이 멎자, 다시 등록을 하고 못 마친 과목의 과제와 시험을 완료했다. 출산 예정일 2주 전까지 만삭의 몸으로 기말 페이퍼를 썼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2004년 7월 23일. 내 생애 최고의 날이다. 아이가  태어났다. 나이 39에 얻은 첫 아이이자 외동 아들이다. 아이 탄생의 기쁨과 함께 맞이한 육아의 어려움은 내 삶의 계획은 바꾸어 놓았다.  9월 학기를 시작했지만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밤낮없이 하루 종일 울어대는 아기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육아를 하며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불가했다. 그렇게 공부를 접어야 했다.


바로 지금이 꿈을 펼칠 때다!


5년을 엄마로서, 주부로서 열심히 살았다.  어린아이를 둔 전업주부는 늘 분주하다. 육아와 집안일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며 늘 바빴다. 이 시기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육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운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액티비티에 데리고 다니고 같이 놀아주었다. 도서관을 같이 다니며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책을 빌려와 밤마다 책을 읽어주었다. 수족관, 과학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며 아이가 다양한 교육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이의 양육에 몰두하며 성장하는 모습에 기쁨을 느꼈다.


전업주부로 바쁘게 살면서도 늘 마음 한쪽에는 마무리 못한 공부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삶의 무게가 버거워서, 더욱 가중될 삶에 무게가 두려워서 내게 주어진 가장 가벼운 짐만 지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늘 꿈을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었다. 언젠가 접었던 자기실현의 꿈을 다시 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아이가 프리스쿨 preschool (유아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3일은 하루에 2시간 정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접어둔 꿈을 다시 펼칠 때가  온 것이다.


출산과 육아, 가사로 중단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처음에는 주저하고 망설였다. 5년을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주부 건망증에 깜빡깜빡 잊기가 일수였다.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섰다.  40대 중반은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닐까?  내 나이에 과연 학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학업을 병행하면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뒷걸음치려고 하는 나를 다시 다잡았다.


바로 지금이야! 더 이상 미룰 수도 기다릴 수도 없어. 내 생애 제일 젊은 날이 바로 오늘이야. 그래, 시작하자! 가슴속에 오랫동안 접어두었던 꿈과 계획을 이제 펼쳐야 한다.


결심이 섰다. 꿈을 펼칠 때는 바로 지금이야!  그렇게 시작했다. 20대의 나는 어쩌면 40대 중반의 나이가 인생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막상 50대 중반을 살고 있는 나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 시작을 막는 것은 내 마음속의 주저함이다. 그냥 시작하면 된다.


몇 년 전, 30대의 끝자락에서 경험한 성취와 기쁨은 나에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다. 30대 후반의 패기와 열정은 40대 중반의 나의 가슴에 다시 살아난 것이다. 용기를 잃을 때, 과거의 성공과 성취의 경험은 나에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내가 해 냈던 일들을 떠 올렸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버티어냈던 경험을 회상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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