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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Oct 24. 2021

평양의 마트에서 쇼핑하다

보통강 상점, 평양 마트에 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같은 건물에 있는 보통강 상점으로 쇼핑을 하러 갔다. 우리의 마트와 같은 곳이다. 상점 안을 들어서자마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식료품, 생필품, 냉동 육류, 냉동 어류 등 여러 가지  물건이 종류별로 쫙 진열되어 있었다. 물건의 가짓수가 많고 다양하다. 내가 알고 있던 북의 모습과는 정말 판이하였다. 서울이나 보스턴의 중소형 슈퍼마켓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카트가 어디 있는지를 봉사원에게 물었다. “아, 밀차 말입네까? 이쪽으로 오시라요.” 봉사원이 밀차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준다. 


나도 밀차를 밀고 필요한 물건을 몇 가지 담았다. 강서 약수, 대동강맥주, 류경 소주, 과자, 락화생(땅콩)이다. 호텔에서 혼자 2차를 할 생각으로 술과 안줏거리를 담았다. 그리고 식당에서 첫 모금에 나를 매료시킨 강서 약수도 담았다.  식당에서 약수를 주문했는데, 천연 탄산수 강서 약수를 가져다주었다. 그 천연의 톡 쏘는 시원함이 혀끝에 닿았을 때, 나는 생수의 새로운 세계를 체험했다. 와! 진짜 시원하다! 가슴이 뻥 뚫린다! 바로 이 느낌이었다.  정말 마시고 나면 소화가 쑥쑥 잘 되었다. 소화 장애로 소식을 해 왔던 내가 오늘 밤에는 소갈비, 돼지 불고기, 오징어 구이를 3분인 이나 먹었다. 강서 약수 덕분이다. 


냉동고기 판매대에서 쇼핑 온 모녀를 보았다. 이 모녀와 대화하고 싶었다. 


“무엇을 고르세요?”

“ 아, 네 소 등갈비를 고릅네다.  딸아이가 운동을 해서리, 잘 먹여야 힘을 쓰지 않겠습네까!” 

엄마가 팔을 올려 “으쌰으쌰” 힘을 쓰는 시늉까지 해 주었다. 등갈비를 사다가 고아서 딸도 주고 온 가족이 같이 먹을 거라고 했다. 아이와 같이 쇼핑 온 젊은 부부도 보인다. 서울의 마트에서 장을 보는 가족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가족끼리 마트 장보기는 북이나 남이나 다 사람 사는 모습인가 보다. 


밀차(카트)에 담은 물건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계산도 전산으로 처리된다. 봉사원이 물건을 스캔해 바코드를 찍었다. 현대화되고 자동화된 시스템을 갖춘 평양의 마트를 상상하지 못했다. 최첨단 시설의 마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계산서를 보았다. 가격이 어떠했을까?  이번에는 생필품 가격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평양 마트에서의 장보기는 여러 가지로 재미있다. 다양한 북한 상품을 구경하고 이것저것 골라 담는 것도 재미가 솔솔 하지만 나중에 계산서를 보고 물건의 가격을 확인하는 것 역시 큰 재미다. 강서 약수(24개) 한국돈 2,000원, 대동강맥주 1병 800원, 류경 소주 1,700원, 과자(옥수수 칩) 1 봉지 200원, 락화생(땅콩) 1 봉지 250원 정도이다. 


구럭지에 가득 담긴 간식거리와 약수, 맥주를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냉장고에서 시원해진 대동강 맥주를 벗 삼아 하루의 피로를 씻었다. 옥수수 칩과 땅콩도 바삭바삭 신선하고 고소하다. 품질이 좋다. 품질 대비 가격이 아주 저렴한 편이다. 특이한 점은 영수증에 세금 항목이 없다. 안내원에게 나중에 물으니 북에는 세금이 없다고 했다. 


        보통문거리 고기상점 장 보러 나온 가족 & 보통문거리 고기상점에서 김치를 고르는 평양시민들



                        평양 보통문거리 마트의 다양한 유제품 & 평양 마트 발 효신 젖 단물(요구르트)



또 다른 평양 대형마트의 색다른 체험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다음 방문지인 광복지구 상업중심으로 달린다. 평양에서 핫한 대형마트 중 하나다. 차창 밖 거리의 풍경이 들어온다. “미래를 사랑하자”라는 구호의 이층 버스가 달린다. 상업광고에 익숙해진 나의 눈은 조금은 정서적인 표현의 구호가 새롭게 느껴진다.


거리 여기저기 재미있는 간판이 걸려있다. “과일 남새(채소) 상점” 북에서는 채소를 남새라고 한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상점을 거리의 곳곳에서 자주 보았다. “꽃 금붕어 상점” 아, 북에서는 꽃과 금붕어를 같이 파는구나. 오래전 초등학교 다닐 무렵, 70년대 초중반, 남에서도 금붕어와 꽃을 같이 팔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왠지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상점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7시에 문을 닫는 듯하다. 거리의 공중 위생실(화장실)도 보인다. 추어탕, 메기탕, 랭면, 가스맥주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소박한 순우리말의 간판이 정겹다. 세종대왕이 보고 기뻐하실 듯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발견은 남이나 북이나 즐기는 음식은 비슷하다는 점이다. 추어탕과 메기탕 간판을 거리에서 자주 보았다. 추어탕과 메기탕. 남이나 북이나 대중에게 사랑받는 민족의 음식이다. 70년 떨어져 살아도 우리의 입맛은 말해준다. 우린 뼛속까지 한 형제 하는 것을. 그런데, 북에서는 추어탕, 메기탕, 냉면을 파는 식당에서 생맥주도 판다. 술이 센 우리 북녘 동포들. 주식을 먹으며 반주로 생맥주 곁들이나 보다. 우리 북녘 동포들이 무엇을 먹고 마시며 즐기는지 나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이제 차근차근 배우고 알아나갈 것이다.



거리의 간판을 보며 남과 북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북녘 동포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시장이 가장 평범한 일상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겨, 마트나 몰, 백화점 등을 방문지에 포함했다. 그중 하나가 광복지구 상업중심(마트)이다. “광복지구 상업중심”이라고 쓴 건물 앞에 도착했다. 광복 지구의 대형 마트다.


문을 열고 마트에 들어섰다. 쇼핑하러 온 시민들이 입구에 서 있다. 적당히 붐빈다. 상품을 진열한 매대가 쭉 이어져 있다. 입구에서부터 사진을 찍으려고 작정을 하고 카메라를 눌러댔다.


“아, 여기서는 사진 못 찍습네다. 사진기 주시라요” 마트 입구의 봉사원이 나에게 말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달라고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사진 촬영을 제지받은 적이 없다. 군시설이나 군인이 아닌 이상, 사진 촬영이 문제 된 적은 고려항공 비행기 안과 이곳 마트다. 나를 안내하는 안내원 선생을 불러 도움을 청했다. 그가 여성 봉사원과 얘기한다. 재미동포로 멀리서 왔는데 좀 이해 달라고 사정하는 눈치다. 그 여성 봉사원은 완고하다. 외부인 사진 촬영이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 동무, 참 빡빡하구먼. 그렇게 사정했는데도 사진 촬영 안 된다고 합네다. 리 선생님, 카메라 내게 주시라요. 내가 눈치껏 찍어드리겠습네다.” 안내원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그는 내가 왜 북을 방문하는지 잘 이해하기에 최대한 내 편에서 내 편의를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참으로 고마운 그의 호의다. 적극적이고 친절한 안내원 덕분에 몇 장의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나는 광복지구 마트를 방문할 때까지 여전히 왜 고려항공 비행기에서, 광복지구 마트에서 사진 촬영을 금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북녘 여행이 끝날 무렵에야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결정권이 있는 개인 판단의 차이라고 할까. 실은, 딱히 이유는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보통문거리 상점이나 대성 백화점, 다른 상점에서는 다 사진 촬영이 허용되었다. 장소에 따라서 어떤 봉사원이냐에 따라서 사진 촬영 허용 여부가 달라지는 것 같다. 내 안내원조차도 광복지구 마트에서, 고려항공 기내에서 왜 사진 촬영을 금했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


북한 여행을 마칠 무렵에야 광복 상업중심 마트에서 봉사원이 사진 촬영을 막았는지 짐작이 갔다. 이유는 그녀의 마음이었다. 마트나 상점이나 식당이나 각각의 단위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각자 고유한 권한 있다. 그 일터의 영역 안에서는 그 담당자가 판단하고 결정한다. 외부의 누가 뭐라고 해도 그 권한을 침해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과 문화임을 감지했다.  마트의 입구에서 입구를 관리하는 봉사원은 비록 말단이라 할지라도 마트 입구에 관한 한 자기의 고유 권한이 확실한 듯 보였다. 마트의 봉사원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게 사진 촬영을 단호히 금지했던 고려항공 기내의 여승무원 역시 여승무원으로서의 자기의 고유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다른 공공시설에서도 말단에서 시민을 접하는 봉사원에게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당당하고 단호한 그런 느낌이다. 그녀들은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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