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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Oct 24. 2021

그녀들을 위한 평양의 밤

보통문거리 고기 상점 숯불구이 식당으로


해방산 호텔에 짐을 풀고 일정 조율도 완료했다.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갑자기 시장기가 확 밀려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저녁을 먹으러 갔다. 북에 와서 첫 끼니다. 음식에 대한 기대가 컸다.


안내원이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한 가지 더 요구했다. 평양시민들이 많이 가는 숯불구이 식당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씩씩한 안내원 답한다. “물론입니다. 리 선생님!”


안내원이 차 문을 열어준다. 부담스러운 배려와 친절이다. 안내원은 기쁨이라고 한다. 나는 평화자동차에 올랐다. 평화자동차. 내가 배정받은 북한 차의 브랜드다. 외부에서 부품을 들여와 북에서 조립한 자동차다. 우리의 평화의 염원을 담은 평화자동차는 평양에서의 첫 만찬을 향해 달린다. 보통문거리 숯불구이 식당으로 간다.  평양 숯불구이. 맛은 어떨까? 식당의  분위기는 어떨까?  평양에서의 첫 만찬을 앞두고 살짝 흥분마저 된다. 종일 나를 휘몰았던 긴장감은 이미 다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평양 맛집을 찾아가는 미식가의 태세다.  “현지 맛집 탐방, 그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


아직 일몰 전이어서 평양의 저녁은 밝다. 평양시민들의 퇴근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여기저기 빠른 발걸음에서 귀가를 재촉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전거를 탄 인민복을 입은 남성들이 눈에  많이 띈다. 교통정리를 하는 교통보안원도 보인다. 퇴근길은 평양이나 서울이나 보스턴이나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직장인들의 귀갓길은 더 바빠 보인다.


15분 정도 차로 달리자, 보통문이 보였다.  남대문보다는 작다. 아담한 보통문이 고즈넉이 평양 시내를 지키고 있다. 보통문(普通門)은 북한 지정 국보 제2호로, 평양시 중구역 보통문동에 있다. 고구려 시대에 세워진 성문으로 보통강변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문거리 고기 상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고기 상점 안 2층 숯불갈비식당으로 간다. “까스 맥주, 숯불갈비”라고 쓰인 간판도 보인다. 까스 맥주라? 무엇일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왔다. 식당 입구에서 여성 봉사원이 우리를 맞이한다.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식당에 들어서자, 숯불로 고기 굽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10여 개의 테이블이 거의 차 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먹고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봉사원이 안내해 주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버드나무 늘어진 평양 거리 퇴근길 전차를 타는 풍경 & 북한 국보 제2호 보통문




보통문거리 고기상점 외관 &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보통문거리 고기상점 & 보통문거리 고기상점 숯불구이 식당 입간판



평양에서의 첫 만찬


봉사원이 차를 따라 주었다. 향긋한 내음이 난다. 쌉싸름한 맛이 혀끝에 닿는다. 처음 맛보는 차다. 무슨 차냐고 물었다. 쑥차라고 한다. ‘아, 이 은은한 내음이 쑥 향이었구나.’  따끈한 쑥차가 더욱 식욕을 자극한다.


봉사원이 차림표를 가져다준다. 고기의 종류가 다양하다. 소고기, 돼지고기, 낙지... 북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라고 칭한다.  오리고기, 타조고기, 참새고기… “호주에 사는 타조가 어떻게 북한에 있지? 수입인가? 제재로 수입이 안 될 텐데..” 여러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타조고기가 있네요. 오, 특이해요. 호주에서 사는 타조가 평양에 있네요. 게다가, 참새고기까지. 참 고기 종류가 다양해요.” 궁금함을 못 참고 안내원에게 물었다.


“호주가 어디 입네까?” 안내원이 호주를 못 알아듣는 듯했다.

“네, 오스트레일리아요. 시드니가 수도인 오세아니아에 있는 나라요.”


안내원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타조고기는 북한에서 사육하여 생산하는 것이라고 했다. 2000년부터 평양 근교에 타조농장을 만들어 타조를 북의 환경에 맞게 적응시켜 사육하고 있으며 관련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타조는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는데, 타조를 길러 그 고기를 먹다니… 이것 또한 새로운 발견이다. 참새 역시도 야생의 참새를 적응시켜 사육해 고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것 또한 사고의 전환이다. 환경에 맞게 적응시키고 사육해 다양한 고기를 생산하고 이를 즐긴다. 흥미롭다.


타조고기나 참새고기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나. 식성이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고기에 대한 시도가 두려웠다. 도전적이지 못한 나 때문에, 결국 우리는 소고기, 돼지고기, 낙지 불고기와 반찬으로 김치를 주문했다. 빼놓을 수 없는 가스 맥주와 더불어. 북에서는 생맥주를 가스맥주라고 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배움의 연속이다. 그런데, 생맥주와 가스 맥주? 어떤 이름이 더 나을까? 그냥 잠깐 생각해 보았다.


남쪽의 식당 문화와 다른 점을 하나 발견했다.  보통 남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김치와 반찬은 기본 상차림으로 무료로 준다. 여기서는 김치와 반찬을 따로 주문하고 돈을 낸다.  식당에서 무료로 주는 반찬은 남한에서 발달한 특유한 문화인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식당 문화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해졌다. 남과 북이 헤어져 살아온 지 70년, 여전히 많은 삶의 부분들이 동질적이지만 식당 반찬 문화처럼 달리 발달해 온 생활의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문화 인류학적 관점에서 연구 가치가 있어 보인다. 문외한인 교사의 소견이다.


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여성 안내원이  뜨거운 숯불 화덕을 힘겹게 옮긴다. 다른 음식들도 나른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 더운 여름 날씨에 여러 테이블에서 뿜어내는 숯불의 열기로 식당 안은 더웠다. 에어컨은 작동되고 있었다. 그녀의 콧등과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다. 음식을 가져 줄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딸 나이뻘의 젊은 여성이 식당 안에서 무거운 숯불 화덕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엄마의 마음으로 안쓰럽게 바라본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두 남성과  나는 술잔을 부딪쳤다.  “남과 북의 하나 됨을 위하여”  모두 까스맥주로 목을 축였다.  평양 까스맥주. 차갑고 쌉싸름하고 톡 쏘는 맥주가  7월 마지막 날 초저녁 평양의 더위를 씻어준다. 와우, 확실히 맛있다. 보스턴에서 마셨던 수제 생맥주와 조금은 비슷한 느낌이다. 평양 생맥주 매력적이다.


두 남성이 열심히 구운 고기를 먹을 차례다. 소고기부터 시작했다. 부드럽게 베인 양념 맛을 비집고 육즙이 터져 나온다. 바로 이 맛이다.  감칠맛이 혀끝에 착착 달라붙는다.  역시, 내 기대를 만족시킨다. 적당히 씹히는 이  식감. 너무 질기지도 너무 연하기도 않은 느낌이 딱 좋다.  소고기 특유의 누린내도 나지 않고 담백하다. 이 건강한 맛! 풀 먹인 소고기가 분명하다.


“이거 풀 먹인 소고기 맞지요?”라고 내가 물었다.


안내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니 소가 풀을 먹지 뭘 먹습네까!” 대답한다.


“미국에서는 소에게 옥수수를 주로 먹여요. 생산단가가 옥수수가 풀보다 몇 배나 싸기 때문이죠. 풀 먹인 소가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하고 콜레스테롤도 적어 영양 면에서 월등하죠. 맛도 더 좋고요. 풀 먹인 소가 훨씬 비싸요.” 내가 설명했다.


식당 봉사원은 송암 소고기라고 평양 근교 송암지역 농장에서 기른 소라고 했다. 소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오징어 숯불구이 모두 입안에서 착착 감기며 살살 녹는다. 양념갈비와 불고기인데, 양념의 간이 강하지 않고 파나 마늘의 향도 은은하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강한 향신료나 자극적인 조미료의 사용을 절제하는 것 같다. 양념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 의도가 보인다.


김치도 고춧가루가 아주 적게 들어가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았다. 짜지도 않고 적당히 익어 발효된 김치 내음이 향긋하다. 마늘, 생강, 파와 같은 향신채도 아주 적게  쓰는 것 같았다.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다. 위가 약한 나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김치는 거의 내가 다 먹었다.


세 가지 고기와 김치, 그리고 까스맥주에 이어 마지막으로 탄수화물류의 요리를 주문할 차례다. 나는 강냉이 국수를, 안내원과 기사는 섭죽을 주문했다. 강냉이 국수는 온면이었다.  국수가 큰 대접에 나오고 고명과 양념장이 따로 곁들여진다. 손님이 먹기 직전에 고명을 국수 위에 올리고 양념장을 넣는다. 고기와 해물 육수가 어우러진 국물 맛이 깔끔하다. 옥수수 내음이 구수하다. 약간은 까끌까끌한 식감인데도 술술 넘어간다.  고기로 조금은 느끼한 입맛을 단번에 시원하게 씻어준다.


두 남성은 열심히 섭죽을 먹고 있다. 죽에서 향긋한 바닷냄새가 난다. 섭이 무엇인지 물었다. 안내원과 기사가 설명을 한다. “아, 홍합이군요.” “홍합”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생소한 단어였다. 섭은 알지만, 홍합은 모른다. 70년간 헤어져 살아온 결과인가.  남과 북의 언어의 차이에 관한 연구도 의미 있고 흥미로울 것 같다. 일분일초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그녀들을 위한 밤


우리 테이블 옆에 40대 중년 여성들이 생맥주를 마신다. 숯불구이 고기를 먹는다. 모두 국수 종류 한 가지씩 주문하는 듯하다. 나의 시선은 계속 그녀들의 테이블로 향하고 있었다.  그 옆 테이블도 조금 더 젊어 보이는 40대 초반 여성들의 차지다. 그들도 생맥주를 마신다.


생맥주를 치켜든다. 가득 채워진 생맥주가 경쾌하게 부딪힌다. 시원한 평양 까스맥주는 마치 그녀들을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활짝 웃는 얼굴들. 들뜬 듯한 여성 특유의 고음의 목소리가 오간다. 여성들의 수다가 즐겁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흥겨움이 무르익는다.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다. 안내원에게 물었다. 회식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은 직장동료끼리 온 건지 아니면 그냥 친구들인지 이웃들인지, 여성들이 회합하면서 술을 마시는 문화가 일반적인지,  혹시, 술을 마시면서 흡연을 하는 여성들도 볼 수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두 테이블의 여성들은 언뜻 대화 내용으로 봐서는 직업동맹 같은 단위에서 동료들끼리 온 것 같다고 한다. 직장에서 동료들끼리 식당에서 회합하면서 맥주도 마시고 하는 일이 종종 있다. 늘 얼굴 보면서 지내는 관계이니 회합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서로 얘기도 하고 고민이 있으면 들어주기도 한다. 안내원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인상적이었다.


“어데요. 식당과 같은 장소에서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다 말입니다. 나는 못 봤습네다. ”


실은 그들 자리에 합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북에서의 첫날이었다. 긴장감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다. 합석을 요청하는 것이  적절한지 어떤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나의 부주의나 무례한 행동으로 북녘 동포들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엇보다 앞섰다. 이제 평양에 도착한 지 몇 시간 안 되었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울  밖에 없었다.


그녀들을 위한 밤. 활기가 넘친다. 재미난 이야기가 이어지는 듯하다.  계속 웃음소리 터진다. 맛있는 음식, 가스 맥주 그리고 정다운 사람들… 즐거운 회식이다.  그녀들의 밤은 무르익어 간다. 그녀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회합을 파하는가 보다. 모두 검은색 비닐봉지에 뭔가를 들고나간다. 저 안에 뭐가 있을까?


그녀들이 우리 테이블 앞을 지날 때, 용기를 내어 물어봤다.  “그 비닐봉지에 무엇을 들고 가세요?” “아 구럭지 말입네까? 구럭지에 집 식구들 주려고 국수를 싸갑네다.” 북에서는 비닐봉지를 구럭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여성 동무들끼리 회합을 하는 경우, 보통 남편들이 알아서 저녁을 해결한다고 한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괜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맛있는 것을 싸간다. 맛난 음식을 먹고, 가족들이 눈에 밟혀 음식을 챙겨가는 그 마음은 북이나 남이나 다르지 않다. 그렇게 그녀들은 냉면과 국수가 든 구럭지를 들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그녀들과 합석하지 못한 게 못 내 아쉽다. 좀 더 용기를 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내년에 가면 꼭 북녀들과 합석해 가스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리라. 더 나아가 언젠가는 남과 북, 해외에 사는 여성 동포들이 함께 하는 밤을 갖으리라. 평양 가스 맥주와 함께!



보통문거리 식당에서 마주한 평양시민들


북에서의 첫날, 식당에서 마주한 평양시민들의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조차 경이로움으로 바라는 보는 나는 왜일까?  70년 세월을 갈라져 살며 서로에 대해 너무 몰라서인가? 아니면, 학교에서 혹은 언론을 통해 부지불식 간에 받은 반공반북 교육의 영향인가? 스스로 의문을 던진다.


첫날 평양에 내리자마자 모든 것이 다 신기한 경험이다. 신비의 세계에 왔다. 현대적인 평양 시가의 모습. 그 속에서 일상을 사는 평양시민들. 보통문거리 고기 상점 식당에서 또 다른 생동하는 북의 삶을 보고 있다. 가족끼리, 직장동료끼리, 친구끼리 온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즐겁게 얘기한다. 술잔을 부딪치고 건배를 한다. 여기저기 웃음소리도 들린다. 왁자지껄 여기저기 사람들의 대화가 들린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즐거움과 흥이 식당을 가득 메운다. 그 흥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톡 쏘는 평양 가스 맥주를 나누며, 나와 안내원, 기사의 대화도 무르익는다. 다시 식당 안을 둘러본다. 중년의 남성들만 앉아있는 테이블도 보인다. 소주병이 여러 개 보였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테이블도 보인다. 술잔을 기울이는 테이블이 여럿이다.  안내원에게 물었다.


“식당에서 술을 많이 마시네요? 2차로 술집에  안 가나요?”  


“2차라니요? 2차라고 하니 잘 못 알아듣는 듯했다.


그래서 부연 설명을 했다. “남쪽에서는 회합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을 회식이라고 하는데, 회식하고 나서 뒤풀이로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이를 2차라고 해요.”


“우리는 보통 식당에서 저녁 먹으며 술을 마십네다.”   식사를 하면서 또는 마치고 식당에서 술자리를 갖는다. 자기가 알기로는 평양에는 술집이 없다고 했다. 평양에는 술집이 없다? 이것도 흥미롭다.


여성 봉사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숯불 화덕을 옮긴다.  “저런 힘든 일은 남성이 더 적합할 것 같아요. 남성 봉사원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가 두 남성에게 말했다.  안내원이 답한다.  “어떻게 남자가 식당에서 봉사를 합네까? 이건 여성의 일입네다.”  


유교적인 문화의 뿌리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건가?  그러나, 안내원 한 사람의 생각이 북한 전체 남성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래도, 북녘 남성의 일부는 이런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듯하다. 북의 남성에 대한 발견이다.


 

가스 맥주와 류경 소주를 비우고 우리는 성대한 만찬을 마쳤다. 고기와 반찬, 주류까지 꽤 많이 먹고 마셨다. 아주 만족한 저녁이다. 봉사원이 계산대로 안내한다. 얼마인지 물었다.


“열여섯 달러 5전입네다.” 봉사원이 답했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네? 설마요. 얼마인지 다시 알려주시겠어요?”


“열여섯 달러 5전입네다.”


“어머, 저는 160달러인데, 잘못 말씀하신 줄 알았어요.”


 17달러를 건넸다. 잔돈은 안 줘도 된다고 했는데도 한사코 마다하고 동전 대신 껌을 몇 개 준다. 북에서는 외화 동전을 사용하지 않아 거스름돈을 중국 위안화나 북한 화폐로 받거나 껌이나 사탕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이 성찬의 가격이 16달러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음식의 재료는 매우 신선했고 음식 자체의 풍미도 뛰어난 고급 요리였다. 게다가 가스 맥주에 류경 소주까지. 훌륭한 음식의 질에 한 번 감탄하고 착한 가격에 다시 감탄한다. 현지의 다양한 음식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점이 바로 북녘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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