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대학습당 앞 심야의 데이트족
평화자동차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평양에서의 첫 밤을 만끽하고 싶었다. 안내원과 기사에게 걸으면서 평양의 밤 풍경을 보고 싶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나의 밤 산보 요청에 두 사람 다 흔쾌히 “좋습네다” 로 대답한다. 차에서 내려, 안내원과 함께 이미 어두워져 캄캄한 평양의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9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지만 거리 여기저기에 행인들이 보였다. 도심 공원 주변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인민대학습당이 보인다. 인민학습당은 1982년에 평양 중구역에 세워진 국립도서관이다. 처음에는 이 자리에 정부청사를 세우려고 했지만,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도서관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40,000 km2의 한국 전통의 합각지붕으로 된 12층 건물이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 양식을 살린 건물이 매우 특색 있다고 생각했다. 불이 환하게 들어온 외관은 밤에 더 아름다움을 뽐낸다. 건물 앞 조각상 분수에서 물줄기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온다. 첫날 이런 운치 있는 야경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 못 했다. 솔직히, 평양에서 밤에 나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 못 했다. 특별한 순간이다. 생각지도 기대하지도 못 했던 일들이 첫날 계속 일어나고 있다. 예측과 예상을 뛰어넘는 경험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분수대 앞을 지나간다. 분수대 앞 벤치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다. 연인인듯한 분위기다. “좋을 때입니다. 연인 같은데 데이트하나 보네요.” 데이트라는 말은 알아듣는 눈치다. “네, 그런가 봅니다. 청춘남녀가 연애하는 건 자연스러운 것 아닙네까!.” “ 네. 그러고말고요. 북에서는 연인들이 주로 어디서 연애를 하나요?” 호기심이 발동해서 물었다.
“연애하는데 뭐 장소가 중요합니까? 마음이 통하면 어디서나 연애한다 말입네다.” 안내원이 사뭇 심각하게 대답한다.
그의 심각한 표정에 한편 재미있기도 했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한 안내원의 말이 떠올라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하긴 그렇죠. 1년 6개월의 열애 끝에 결혼하신 안내원 동무시니 더 잘 아시겠죠. 하하.” 안내원이 쑥스러운 듯 대답도 못 하고 앞만 보고 걷는다. 남이나 북이나 연애담으로 사람을 놀리는 것은 재미가 솔솔 하다.
평양의 야경 - 주체사상 탑
평양의 야경 - 인민대학습당
보통문거리 숯불구이식당에서 가스맥주와 류경소주를 마시며, 우리는 처음 만나 결혼하기까지 서로의 연애담을 공개하였다. 안내원과 기사의 절절한 연애담은 나중에 “북남 북녀” 북의 남성과 여성 이야기 편에서 다루겠다.
인민대학습당의 휘황찬란한 조명과 조각상 분수 앞에서 청춘남녀가 자아내는 로맨틱한 분위기는 내가 처음 맞은 평양의 여름밤을 압도하고 있다. 평양 밤거리에서 데이트하는 젊은이들을 마주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다정한 연인은 손을 마주 잡고 분수를 바라보며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까만 밤하늘 아래, 휘황찬란한 조명이 이 연인들을 환하게 비춘다. 두 젊은이의 흰색 셔츠가 환한 불빛을 반사한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성과 흰색 셔츠를 입은 여성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평양교원대, 김일성대학, 김책공대를 둘러보면서, 이 복장이 대학생 교복임을 알았다. 남녀 대학생들의 여름밤 데이트. 젊은 연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 풋풋한 사랑이 싱그럽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가장 찬란하고 빛나던 시절의 뜨거운 사랑을 추억하게 해서인가. 자꾸 눈이 가는 나의 머리를 억지로 돌려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젊은 연인을 뒤로하고 우리는 천천히 버드나무 늘어진 거리를 걸었다. 중간에 지하보도를 지났다. 지하보도 내부는 깨끗하고 잘 관리되는 듯 보였다. 벽이 흰색과 파란색 타일로 되어 있다. 지하보도를 걷는 사람이 우리 말고 두세명 더 있었다. 내부는 등이 적당히 밝아 무서운 느낌도 없었다. 밤에 다녀도 치안은 전혀 문제없어 보였다. 나는 안내원과 동행하니 두말할 나위도 없이 안전하다.
평양도 역시 세상 다른 곳처럼 사람 사는 곳이다. 밤늦게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보고 말이다. 그런데, 무슨 횡재라고 한 듯 나도 모르게 기분이 묘하게 좋아진다. 평양에 도착해서 단 몇 시간 만에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경험을 했다. 북에 대한 나의 이미지가 산산이 부서졌다. 뭔가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울 것 같은 삶의 모습들을 상상했었다. 첫날 도착해서 지금까지 내가 본 평양은 나의 선입견과 상상을 다 깨뜨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내 다리를 꼬집어 볼 정도로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신기했다. 평양에서의 첫 밤은 경이로움과 흥분 그리고 새로움으로 나를 채우며 이렇게 깊어갔다.
굿모닝 평양!- 대동강변에서 만난 평양의 아침
평양에서의 첫 아침. 아침 산책을 나갔다. 호텔 바로 뒤가 대동강이다. 대동강변을 따라 걷는다. 강변 주변에 아파트들이 쭉 늘어서 있다. 대동강변을 따라 줄지어 들어선 화사한 색감의 고층 아파트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강 주변의 아파트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어제 평양시내에 첫발을 들이면서 본 현대적이고 발전된 시가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오늘 아침 또다시 눈이 깜짝 놀란다. 연신 속으로 “여기가 서울인가? 평양인가? 한강인가? 대동강인가?”를 묻는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북에서는 살림집이라고 불리는 아파트들. 파스텔 톤의 밝은 색감이 대동강의 풍광과 잘 어울린다. 한 여름의 파란 하늘. 그 아래 연한 풀빛의 대동강. 하늘과 강에 접해 늘어선 쭉쭉 뻗은 고층 아파트. 대동강변의 모습도 이러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강변 보도를 따라 걷는다. 아파트 사이사이 공원과 체육시설이 보였다. 주민 편의시설인 듯하다. 운동기구를 갖춘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의 동네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와 비슷한 시설이다. 놀랍다. 주민 체육 편의 시설이 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 살면서 이런 류의 주민 편의를 위한 공공체육시설을 보지 못 했다. 거의 흡사한 시설들이 남과 북에는 있다. 남과 북의 동질성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인가!
강변을 따라 계속 걷는다. 이번에는 스케이트 파크인 듯한 구조물이 보인다. 평양에 스케이트 파크가? 설마? 빠른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내 동공이 커진다. 와우! 스케이트 파크다! 아들이 좋아하겠다. 엄마가 평양에 간다니까 덩달아 신이 난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구글 맵으로 평양에서 스케이트 파크를 찾아보았다. 10살 때부터 스케이트 보드를 타 온 아들은 수준급의 스케이트 보더다. 미국 정부의 대북여행 금지 행정명령이 해제되면 꼭 엄마랑 아빠랑 같이 북을 여행하고 싶다고 했던 아들이다. 더 나아가 한국 시민의 북한 방문이 가능해지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두 분 고향인 황해도 은율과 장연을 가고 싶다고 했던 아들이 생각났다. 평양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싶다고 했던 아이는 구글 맵에서 평양을 검색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 아이의 실망감이란… 그런 평양에 스케이트 파크가 있다니!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 신기하고 기뻤다.
“어머 저거 스케이트 파크네요! 평양 아이들도 스케이트 보드를 타나 봐요?” 안내원에게 스케이트 파크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저거 말입네까? 네 맞습네다. 저기서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도 타고 로라 스케이트도 탑네다.” 놀라운 발견이다. 8시가 조금 지난 이른 아침이었고 평일이었기에 스케이트 파크에서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모습은 보지 못 했다.
이 기쁜 정보를 아이에게 꼭 알려야겠다. 평양에 스케이트 파크가 있음을 알고 좋아할 아들, 그리고 우리 아이가 평양의 고등학생들과 같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본다. 다음 여행에는 꼭 함께 와야지. 평양 스케이트 보드 여행! 우리 아들의 로망이 실현되길!
대동강변 살림집 (아파트)
대동강변 스케이트 파크
대동강변에서 만난 노년의 삶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갔다. 60대 노인들이었다. 노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힘이 넘쳐 보인다. 2명이 짝을 지어 복식으로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여성이 파트너를 향해 콕을 높이 띄워 올린다. 같은 편 남성이 네트 넘어 상대편에게 세게 넘긴다. 콕을 서로 주고받아친다. 잘하라는 응원의 소리도 들린다.
열심히 배드민턴을 치는 노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5분여 정도 지켜만 보았다. 마침 4명의 복식팀과 함께 온 이웃주민들이 있었다. 내가 재미동포라고 소개하고 먼저 얘기를 건넸다.
“와우, 배드민턴 잘 치시네요. 매일 이렇게 나와서 치세요”
“예, 그렇습네다. 매일 아침 나와서 운동합네다. 퇴직하고 뭐 합네까. 운동이라도 해야 한다 말입네다.”
“이 근처에 사시나 봐요. 친구분들하고 나오셨나 봐요”
(옆의 아파트를 가리키며) “저 살림집에 삽네다. 이웃들하고 이렇게 아침마다 나옵네다”.
이 노인들과의 대화는 10여분 이어졌다. 이들은 퇴직하고 여가를 즐기는 대동강변에 살림집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다. 퇴직하고 나서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다고 했다. 남자는 60세 여자는 55세가 정년이다. 정년 후에는 생활비(연금)가 정부에서 나와서 생활한다고 한다. 기본 생활용품 중 무료로 나오는 것이 있어 노후생활에 크게 돈이 들지 않는다. 정년퇴직 후에는 이렇게 운동을 하거나 손주를 돌봐주며 소일거리를 한다.
대동강변 체육시설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퇴직한 노인들
배드민턴 치는 젊은 노인들과 헤어져 대동강변을 따라 더 걸었다. 이번에는 강가에서 낚시하는 좀 더 연로한 일군의 노인들이 보였다. 호기심에 다가갔다. 나를 재미동포라고 소개했다. “ 아, 미국에서 오셨습네까?” 약간의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눈빛이다. “낚시를 하시네요. 물고기 좀 잡으셨나요?’ “예, 붕어 한 마리 잡았습네다.” 양동이 안 찰랑거리는 물속에 은갈색의 붕어가 보였다. “이 붕어는 댁에 가서 매운탕 해서 드시나요?” 중절모를 쓴 노인이 씩 웃는다. 말렸다가 구워서 손주 곽밥(도시락)에 반찬으로 보낸다고 한다. 70대로 보이는 이 노인은 그동안 손주 도시락 반찬 대느라고 열심히 낚시했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나와서 고운 손주를 먹이려고 물고기를 잡고 있다. 갸륵한 할아버지의 마음이다. 강가에 다른 노인들도 여럿 보인다. 모두들 손주를 생각하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까? 남이나 북이나 할아버지는 언제나 손주가 눈에 밟힌다.
대동강변 아침 출근길 자전거 부대
대동강변 낚시하는 노인
대동강변의 아침, 손을 잡고 산책하는 할머니와 손녀
대동강변, 여름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들이 달린다. 대부분 출근길의 흰색 셔츠나 인민복을 입은 남성들이다. 손녀의 손을 잡고 아침 산책을 하는 할머니가 내 앞에 간다. 잔꽃무늬의 시원한 여름 티셔츠를 할머니와 손녀가 맞춰 입었다. 손녀와 할머니 둘 다 귀엽다. 꼭 잡은 손에서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진다. 그 옆에 짐을 실은 자전거도 보인다.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아침 대동강변은 바쁜 듯 여유로운 듯 사람 사는 모습을 드러낸다. 평양시민들은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나 보다. 버드나무 늘어진 대동강변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