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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Oct 24. 2021

평양 거리 명물, 길거리 카페 ‘빙수’

우리의 평화 자동차는 평양의 거리를 달린다.  버스, 전차, 트럭, 택시, 승용차가 섞여 우리 옆을 달린다. 구간에 따라 지역에 따라 도로에 차가 붐비기도 하고 조금은 한산하기도 하다.


차창 너머로 흰색 상의와 검은색 치마를 입은 단발머리의 여학생들이 보인다. 8월의 태양 아래 종일 달구어진 보도블록 위를 걷고 있다. 흰색 챙모자를 살짝 얹어 쓴 여학생들의 얼굴이 여름의 열기에 발갛다. 챙모자로는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흰색 양말에 굽이 낮은 샌들과 운동화를 신고 있다. 앳된 모습이 고등학생으로 보인다. 백팩을 메고 하교하는 모양이다. 멋스러운 체크무늬의 원피스를 입은 20대 여성이 양산을 받쳐 들고 뒤를 따른다. 양산을 쓴 일군의 다른 여인들도 보인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평양시민의 거리 모습이다.




                                                    평양 도심의 전차-평양 거리



                                        인도를 걷고 있는 여고생-평양 거리



살아 숨 쉬는 평양의 모습을 거리 여기저기서 마주한다. 그중 새로운 발견은 ‘청량음료’, ‘빙수’라는 간판이다. 거리 이곳저곳에서, 거의 20m 간격으로 청량음료와 빙수 매대를 보았다. 오늘 아침 대동강 변에서도 여러 곳 보았는데... 흠... 저것이 무엇일까?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청량음료 매대-평양의 거리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아파트가 즐비한 동네를 지난다. 시민들이 옥외 테이블에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다. 그리고 ‘빙수’라는 간판과 매대가 보였다. 아, 여기도 빙수네! 마침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안내원이 근처 사무실에서 안경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리 선생님, 죄송하지만 5분만 차 안에서 기다려주시라요.” 더우니 나와 있지 말고 시원한 차 안에서 기다리라고 당부한다. 


이제 만 하루가 지나,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럽다. 안내원의 당부에 따라 얌전히 차 안에 앉아서 차창 밖 빙수 매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매대 안에 하얀 얼음이 수북이 쌓인 그릇이 보인다. 사람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에는 작은 숟가락이 유리그릇에서 입으로 빙수를 분주히 나른다.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 빙수를 먹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입이 즐겁다. 표정에는 시원함과 만족감이 역력하다. 빙수를 만드는 여성 봉사원의 모습이 보인다. 매대 앞에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시민들도 보인다. 이 모든 장면이 나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고 있다. 


그사이 나는 전 세계 평화운동가들이 들어와 있는 ‘평양 카톡 라이브방’에 접속해 나의 새로운 발견을 전했다. 평양 ‘빙수’ 매대! 평양시민의 거리 카페인 빙수 매대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전송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기필코 저 빙수를 먹어야겠다고.” 안내원이 돌아왔다.



평양 거리카페 – 빙수 매대




                                                    빙수를 만들고 있는 봉사원



안내원에게 청했다. “안내원 선생, 저기 평양시민들이 먹고 있는 저게 빙수 맞지요?” “네, 선생님 맞습네다.” 안내원이 대답한다. “제가 지금 더위에 갈증도 심하게 나고 배도 출출해서 빙수를 먹고 싶은데요. 같이 가서 함께 드실래요?” 최대한 정중히 안내원에게 먹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안 된다는 것이다. 한번 뭔가 하고 싶으면 꼭 해야만 하는 내 성격 상, 그냥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안내원 선생, 왜 안 된다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유가 대체 뭔가요?” “내가 지금까지 안내한 재외동포 선생님 중에 한 번도 빙수 매대에서 파는 빙수를 먹은 분이 없습네다. 게다가, 길거리 매대 빙수 시식은 일정에도 없지 않습네까.” 


이것이 이유라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안내원 선생, 그것이 이유라면, 제가 처음 길거리 빙수 매대에서 빙수를 먹은 재외동포가 되겠어요. 그리고, 꼭 일정대로만 움직여야 하나요? 여행을 하다 보면 새롭게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기 마련이고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일정은 달라질 수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빙수를 먹는 게 우리 일정에 차질을 주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꼭 빙수를 먹고 싶어요.”


안내원을 설득하기로 작정한 나는 끈질기게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내가 힘들게 북녘 땅에 온 이유를 환기시켰다. 북녘 동포의 일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빙수 매대 시식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평양시민들이 즐기는 여름철 먹거리를 나도 꼭 시도해 보고 싶다.  


그러는 사이, 전 세계 한인 평화활동가로부터 “불굴의 의지로 빙수 먹방 투쟁!!”이라는 농담 섞인 응원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어쩌면 지금의 안내원과의 의견 충돌은 나의 자유주의가 북의 원칙주의와 만나 그 해결의 접점을 찾고 있는 상황은 아닌지. 그러나, 나의 굽힐 줄 모르는 설득에 드디어 안내원은 자기 뜻을 굽혔다. “리 선생님의 자유주의는 정말 못 당하겠습네다. 빙수 같이 가서 드시자요.” 우리는 이제 빙수 매대로 간다!



                            얼음, 팥, 과일, 견과류, 아이스크림이 어우러진 평양 거리카페 빙수




초록색 나뭇잎 문양의 귀여운 식탁보가 놓인 둥근 테이블 하나를 차지해 앉았다. 흰색 제복을 입은 봉사원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얼음을 갈고 있다. 어느새 하얀 눈꽃 송이가 피어오른다. 소복이 유리그릇에 담는다. 그 위에 과즙으로 보이는 액체를 붓는다. 그리고 다른 재료를 하나하나 담아낸다. 안내원은 빙수 세 그릇을 우리 테이블로 가져왔다. 흰색 스푼이 놓여 있는 먹음직스러운 빙수 그릇. 어느새 눈꽃은 과일 단물에 녹아 자취를 감추었다. 수북이 쌓인 다양한 재료 위에 큼직한 아이스크림이 두드러진다. 나는 그 많은 빙수를 게 눈 감추듯이 순식간에 비웠다. 아, 시원하다! 그리고 행복하다! 더위와 바쁜 일정에 지친 나의 몸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평양 길거리 카페 빙수에 반응했다. 빙수 먹방 투쟁은 이렇게 아름답게 막을 내렸다.


날 이후로 나와 안내원, 운전기사는 거의 매일 두 번씩 빙수를 먹었다. 그리고 빙수 값은 언제나 안내원이 지불했다. 내가 내려고 했는데, 한사코 안내원이 먼저 내는 바람에 번번이 그가 빙수 값을 치르게 되었다. 첫날 미래과학자 거리에서 먹은 빙수의 값은 3개에 미화로 1불 정도였다. 길거리 빙수 매대와 청량음료 매대는 평양시민들이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장소 중 하나인 듯하다. 거리 곳곳에 길모퉁이마다 어김없이 ‘청량음료’와 ‘빙수’ 매대가 있었다. 빙수 한 그릇에 10~30센트, 우리 돈 120~360원이면 한여름의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다.


길거리 카페의 ‘빙수’는 평양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아주 저렴한 가격이다. 하지만, 그 내용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충실하다. 첫날 먹은 빙수에는 눈꽃 같은 얼음 위에 귤 단물, 팥, 아이스크림, 수박, 토마토, 땅콩, 호두가 들어 있었다. 인심도 후하게 모든 재료를 풍성히 담아 주었다. 빙수는 매대마다 재료와 맛이 달랐다. 어떤 곳은 들쭉 단물과 수박 단물 등 다른 과즙을 넣기도 한다. 또한, 각각의 재료의 비율도 다르고 아이스크림이 들어가기도 하고 안 들어가기도 한다. 매대 봉사원의 조리법과 재료에 따라 빙수가 다른 듯하다.


특히, 처음 먹었던 빙수의 풍미는 정말 잊히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의 풍부한 맛, 귤 단물의 새콤달콤함, 그리고 견과류와 과일이 절묘하게 조화된 빙수의 맛은 진정 특별했다. 아직도 그 맛의 여운이 혀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북에서의 둘째 날부터 시작된 길거리 카페 즐기기는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다. 천연 과일로 만든 청량음료와 에스키모라고 불리는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여름철 길거리 카페 음료와 먹거리를 체험했다.


남이나 북이나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팥빙수는 남에서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여름철 음식이다. 남한의 거리 곳곳에서는 거의 10m 간격으로 카페가 즐비하고 시원한 여름 음료를 즐기며 더위를 잊는다. 30도를 웃도는 평양의 폭염 속에 시민들은 거리 카페 빙수 매대에서 부담 없는 가격의 빙수를 즐기며 더위를 식힌다. 남과 북의 동포는 이미 많은 삶의 영역에서 서로가 닮아있다. 70년을 헤어져 살아도 우리는 한 동포임을 일상생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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