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평화자동차는 릉라다리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 대동강이 흐른다. 대동강이 굽어 흐르는 가운데 위치한 섬, 릉라도. 우리는 릉라도에 있는 놀이공원, 릉라인민유원지에 가는 길이다.
북에서 맞이 한 토요일 오후다. 북녘 동포의 다양한 삶의 모습, 삶의 표정을 보고 싶다.
재미와 즐거움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가는 곳, 놀이 공원. 그곳에 가면 평양시민들이 어떻게 여가를 즐기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평양의 놀이 공원,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호기심을 가득 담고 릉라유원지로 달린다. 다리를 건너자, 얼마 안 가서 릉라유원지에 도착했다
유원지 입구에는 나들이 나온 평양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고등학생들이 무리 지어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친구들끼리 놀러 나온 모양이다. 할아버지와 나들이 나온 손녀도 보인다. 손녀를 놓칠라, 할아버지가 손을 꼭 잡고 있다.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행락객들은 차례대로 줄을 서 입장 순서를 기다린다. 질서 정연한 모습이다.
오늘 하루 여러 가지 일정을 소화한 터라, 더운 날씨에 조금은 지치고 갈증도 난다. 더위와 갈증을 풀어줄 음료수를 사러 입구에 있는 매대(매점)를 찾았다. 다양한 청량음료가 보인다. 나는 그중 건강에 좋은 딸기 요구르트를 골랐다.
천연 딸기 과즙을 첨가한 ‘무방부제 딸기 요구르트’. 시원하고 새콤달콤하다. 출출한 배도 채워준다. 라벨을 읽는다. 두뇌발달 성장발달에 좋다고 되어 있다. 북녘 동포들도 건강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음료나 식료품 라벨에 언제나 그 음식이 건강에 어떻게 좋은지가 표기되어 있다.
릉라유원지에 입장했다. 각가지 놀이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회전반(문어다리), 회전대, 회전그네, 회전 비행기, 회전목마 등의 놀이기구가 보인다. 대규모의 놀이공원이 아니라 아담한 놀이공원이다. 남측이나 미국의 소도시에서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놀이공원이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온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이 보인다. 놀이기구 이곳저곳 사람들로 붐빈다.
놀이기구 공포증이 있는 나는 놀이기구 타는 것보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즐겁다. 놀이공원을 찾은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놀이동산은 보스턴이나 서울이나 평양이나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평양시민들. 그들의 모습에서 소소한 행복이 보인다.
릉라인민유원지-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평양시민들
실내 오락장에 왔다. 여러 가지 오락기기가 놓여 있다. 중고교 시절 유원지에 놀러 가서 즐기던 그런 오락기기다. 발 운동 오락, 사냥 경기, 시가전… 순우리말로 이름 붙여진 오락기기의 이름들. 북녘 동포의 우리말 사랑이 돋보인다.
오락에 열중하는 사람들과 오락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지켜보는 사람들로 오락장 안은 붐빈다. 그중 두 어린이가 하고 있는 발 운동 오락이 나의 시선을 잡는다. 발 운동 오락이라? 아, 20-30년 전 한창 유행하던 바로 Dance Dance Revolution ( DDR)이 아닌가. 음악에 맞춰 스크린에 나오는 대로 스텝을 맞춰 춤을 추는 오락이다.
나도 한번 해 볼까? 이 발 운동 오락은 두 명이 함께 해야 한다. 파트너가 필요하다. 오락장을 찾은 평양 여성 한 분에게 발 운동 오락을 함께 하자고 청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한다. 이제 평양 동포와 보스턴 동포가 함께 하는 환상의 발 운동 오락이 시작된다.
” 나무를 심자. 나무를 심자...” 경쾌한 곡에 맞춰 발을 바쁘게 움직인다. 오랫동안 해보지 않은 터라 몸이 생각처럼 따라 주지 않는다. 지나가던 평양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온 동포에게 따뜻한 시선을 준다. 종종 박자를 못 맞추고 실수가 이어졌지만, 내내 하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 웃음꽃이 피었다. 평양에서 북녘 동포와 함께 음악에 맞춰 발 운동 오락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의미가 있다. 내 청을 들어준 평양 시민이 정말 고맙다. 덕분에 평양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더 만들었다.
평양 시민과 함께 한 발 운동 오락
오락장에서 나와 다음 갈 곳을 찾고 있다. 웃음 집이라고 쓴 간판이 보인다. '웃음 집’이라? 무엇일까? 웃음 집에 들어가자 왜 웃음 집인지 알았다. 오목거울, 볼록거울, 여러 가지 재미있는 거울들이 나의 모습을 비춘다. 나를 길쭉하게도 짧고 몽땅하게도 만든다. 재미있게 일그러진 모양이 나를 웃게 만든다. 그래서 웃음 집이다. 웃음 집도 중고교 시절 인천 송도유원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옛 추억을 불러온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시절, 우리의 모습을 이곳에서 발견한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릉라유원지로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꽤 많았다. 전기차(범퍼카)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10여 미터는 되어 보인다. 평양시민과 전기차를 즐긴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운전을 한다. 쿵쿵 부딪힐 때마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른다. 즐거운 비명이다. 사람들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전기차에서 내리던 두 여성의 밝은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전기자동차(범퍼카)를 즐기는 평양 시민들
배가 출출하고 갈증도 나, 음식을 파는 매대로 갔다. 닭꼬치와 김밥을 파는 모습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옥외 식당 같은 곳이다. 둘러보니, 닭꼬치와 김밥 이외에도 핫도그, 찐빵, 만두 등의 간식을 판다.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길거리 음식이다. 막걸리라고 쓰인 디스펜서에 눈길이 갔다. 막걸리와 놀이공원.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것 같다. 유원지 내 간식을 파는 매대에서 막걸리와 같은 술을 판다는 것이 생소해 보였다.
한쪽에서는 닭꼬치를 숯불에 굽고 있다. 지글지글 닭꼬치 익는 소리가 들린다. 빨간 불꽃이 올라온다. 닭꼬치를 사러 온 손님과 봉사원 사이에 흥정을 하는 듯하다. 봉사원이 1500원을 부르는데 손님이 1000원에 달라고 한다. 손님이 가격을 깎는다. 가격 흥정이 가능하다? 재미있는 광경이다. 결국, 그 손님은 가격 흥정에 실패했다. 에누리가 안 통한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온 평양 시민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른 저녁시간 간식을 즐긴다. 우리는 닭꼬치와 막걸리를 주문했다. 닭꼬치는 양념이 적당히 베어 맛이 있다. 숯불구이 특유의 향긋한 냄새도 그만이다.
유리컵에 담긴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켰다. 시원한 막걸리가 입안과 목을 적신다. 달짝지근하고 고소하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 막걸리다 아니다. 무알코올이다. 남쪽에서와는 달리 북쪽에서 막걸리는 쌀음료다. 술이 아니다. 어린아이들도 마실 수 있는 음료다. 남쪽에서 마시는 쌀음료와 비슷한 맛이다. 여름철 더위와 갈증을 날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료일 듯하다.
유원지에서 여가를 즐기는 평양 시민의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와 함께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닭꼬치를 먹고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며 웃고 떠든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여기에서도 발견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린다.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휴전선 너머의 북녘 동포들의 삶. 우리의 동질성은 너무나 친숙한 삶의 부분에서 시작된다.
릉라인민유원지 간식 매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