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하다.
나의 오감은 다시 한번 예민해졌다. 뭔가 싸하다. 앞으로 걸어 나간 그 사람이 앉은 곳을 쳐다보았다. 어떤 단발머리 여자분의 옆자리였다. 괜히 불안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 다음 역은 홍대입구, 홍대입구역입니다.
방송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여자분이 날카롭게 말했다.
“아저씨! 왜 만져요?!”
뭐지
순간 나는 내 온몸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여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만지냐고요!”
여자분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기며 크게 말했다. 그리고 또 연이어 말했다.
“왜 조용히 하라고 해요? 왜 만지냐고요 지금!”
버스는 홍대입구역에 도착했고, 버스 안의 공기는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아주 차가웠다.
“하, 진짜 짜증 나. 나와요. 나 내리니까.”
그 여자분의 진짜 목적지가 홍대입구였는지, 어디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엄청나게 용기 있었다는 것만 알겠다. 그분은 일어나서 남자에게 비키라고 손짓했지만, 남자는 비키지 않고 복도 자리에 꾸역꾸역 앉아있었다. 왜 저럴까. 그러다가 다행히 결국 일어나서 다른 자리에 앉았다. 그 여자분은 빠르게 내렸고, 가만히 쳐다보던 기사님도 다른 사람들의 짐 가방을 내려주기 위해서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청량리역에서 내리라고 신신당부를 들었던 남자가 내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일어나서 앞쪽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기사님이 돌아와 버스는 출발했고, 나를 비롯한 버스 안 사람들은 창 밖으로 그 여자분과 남자의 위치를 두 눈으로 빠르게 파악했다.
“어머, 어떡해. 남자가 쫓아가나 봐.”
나는 결국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덜덜거리는 손가락을 움직여서 112를 눌렀고, 상황을 설명했다. 2020번 버스가 방금 홍대입구역에 멈췄고, 내린 사람들 중 한 남자랑 여자가 있는데, 버스 안에서 남자가 여자를 성추행한 것 같다. 그리고 여자를 따라 내렸다. 여자분의 인상착의는 검정 단발머리, 검은 옷 밖에 기억이 안 난다. 남자는 허름한 옷을 입었고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불안하니 꼭 찾아봐주세요.
나는 이런 전화를 처음 해봤다. 어떻게 말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홍대입구역은 엄청난 번화가고, 사람들이 많으니까 쉽사리 나쁜 행동을 가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바란다. 그리고 그 여자분을 기다리던 일행이 있고, 그 일행 중 한 사람은 힘이 센 남자라서 버스에서 성추행을 한 그 남자를 응징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어떻게 되었을지는 정말 모르겠다.
두려움이 가시고 나자 분노가 치밀었다. 공항 경찰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사람을 태워 보낸 걸까? 아무런 제재 없이... 그 사람은 내 옆에 앉을 수도 있었고, 나를 만졌을 수도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 여자분이 그 날 무사히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날 버스에서 있었던 기분 더러운 일을 아예 까맣게 잊어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