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었다.
나에게는 아디다스 파란색 긴 패딩이 있다. 그 패딩은 유행템인데, 당시 여자 아이돌과 운동선수들이 주로 입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평소의 나라면 사지 않았을 패딩을 편하게 입을 목적으로 구매했다.
입으면 종아리 중간까지 오는 길이라 지금도 아주 따뜻하게 잘 입고 있는데, 우습게도 입으면서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누가 연예인이나 스태프로 착각하면 어떡하지?' 전에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촬영장을 어슬렁거리다가 스태프로 오해받았다는 글을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때 남자 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퇴근버스'라는 노래를 들으며 홀로 감성 충만한 상태로 버스에 탔다.
그렇게 버스에 타면서 카드를 찍는 나를 기사님이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지, 왜 그러지?'
긴장했다. '공항버스를 오래 타서 얼굴이 익숙해져서 인사를 하려고 하시나?'같은 생각도 했다. 그러고 몇 번이나 힐끔거리시기에 왜 그러실까 하며 나도 기사님을 힐끔 쳐다보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쳤고 기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아가씨 운동선수죠?ㅋ"
?
네?
대체 제 어디가...
당황했다.
"아닌데요....!"
"에이, 맞는구먼 뭘."
....???
너무나 확신에 차서 말씀하시는 기사님의 말투에 나는 할 말을 잃었지만 다시 한번 말했다.
"ㅎㅎ.... 아닌데....?!"
저질 체력인 내가 나도 모르게 운동선수일 리가 없다.
기사님은 밝히고 싶지 않으면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며 껄껄 웃으셨다. 소심했던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기사님과 나 사이의 짧은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오늘 다시 그 옷을 입고 나오니 다시 생각이 났다.
'기사님께서는 나를 누구로 착각하셨을까?" 마음 같아서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나 체조 선수 쪽으로 생각하셨으면 좋겠지만,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착각하셨을 것 같다. 지금의 나라면 "어머, 저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제 이름 아세요? 사인해 드릴까요?" 하며 너스레를 떨고 장난쳤을 수도 있을 텐데 아쉽다.
사람들은 마음 한 편으로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내가 바라는 행동과 다른 행동을 했을 때 오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머리가 마음을 이기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이러나저러나 기사님은 정말 날 누구로 생각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