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기로 결심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꽤 오랜 기간 동안 허무주의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사실 아직도 허무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지만 노력하고 있다.) 그 때는 그것이 허무주의인 줄도 모르고, ‘아, 이제야 내가 인생에 달관하고 세상 이치를 깨달았구나’하며 지금 생각하면 무척 부끄럽지만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겼고, 뭐라도 된 것 마냥 생각했다.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사춘기 소녀처럼, 스스로에 대한 얄팍한 오만이었고, 자만이었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때 당시엔 ‘어차피 모든 것엔 끝이 있는데, 어차피 우리는 모두 다 죽을 건데 무엇을 위하여 아등바등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머리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같은 질문으로 고생 꽤나 했다. 그렇게 길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온 것 같다. 내가 태어난 이유, 삶의 의미,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책을 보고,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이렇다 할 명쾌한 해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결국 내가 얻은 답은 법륜 스님의 ‘그냥 살아지니까 사는 거’라는 말이었다. 강연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던 것 같다. (예전에 보고 들은 강연으로, 본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죽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에 당신이 목을 매달고 죽겠다고 다짐을 했다면, 목을 매달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고, 만약 그 장소가 방, 거실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목을 매달 수 있을지, 나의 체중을 지탱할 수 있는 튼튼한 끈이 필요하고, 그런 것이 집에 있는지 샅샅이 뒤지거나 그것을 사러 나가거나, 그것을 사기 위하여 인터넷 쇼핑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는 것은 그냥 살아진다. 숨은 그냥 알아서 쉬어진다. 죽으려면 숨을 참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숨을 참고자 해도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기껏 참고 있던 숨을 ‘팟-‘ 하고 쉬게 만들어버리는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약으로 목숨을 끊으려고 해도 그 약을 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 생각을 해도 죽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죽고자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산다. 어떻게든 살아진다.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나 해가 뜨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잠도 자게 되고, 영원히 눈이 떠지지 않길 바랐음에도 자연스럽게 눈이 떠져 ‘여기가 어디, 나는 누구?’하며 잠시 눈을 꿈뻑 거리며 멍 때리게 되듯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더위가 누그러지고, 바람이 선선해지고, 온 산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루는 것처럼. 결국 우리는 삶을 이어가고, 삶을 살아낸다.
이왕 이렇게 살게 된 거, 나는 재미있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60년 뒤에 죽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죽음을 생각하면, 초연해진다.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게 된다. 여기저기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이런 상황에서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내 삶의 나침반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나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