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에세이
“선생님, 저 퇴원시켜주세요.”
그녀의 말 끝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간호사 근무 교대가 완료된 늦은 밤이었다. 당일 입원 환자들 의무기록을 입력하고 있던 나는 일어나 병동 간호사실로 걸어 나온 그녀를 쳐다보았다. 모두 약간 당황한 눈치였으나 나는 얼른 그녀의 불편한 몸을 부축해 병실로 데리고 갔다. 우리 둘은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고, 시선도 교환하지 않았지만, 나는 어둠 속에서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몇시간 전, 회진 때 과장님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녀가 사용해오던 첫 번째 표적항암제는 내성이 생겨버렸다. 작아지던 신장암이 크기 감소를 멈춘지는 오래되었고, 어제 찍은 CT 영상에서는 영상의학과의 정식 판독이 없어도 크기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체내 여러 군데 전이가 추가로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 선생님! 의학이 이렇게 발달했는데 다른 좋은 약은 없나요?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녀는 암이 진행되었다는 나쁜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겁에 질려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과장님은 다소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치료 부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현재 확실히 효과를 보장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단, 새로운 표적항암제 시도를 해 볼 수는 있는데 두 번째로 쓰시는 것이니 보험이 안되어요.” 과장님은 차근차근 설명을 해나갔다. 나는 애써 그녀를 외면하고 너무나도 시린 겨울 해 질 녘을 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행된 신장암에서 1차 표적항암제가 내성이 생기면 다른 2차 표적항암제로 바꿔야 하는데, 2차 표적 항암제는 당시 보험 급여가 되지 않아 환자가 비싼 약값을 모두 부담해야 했었다. 게다가 5년 생존율이 10% 미만인 진행성 신세포암에서 1차 표적항암제의 실패는 사실상 사망 선고와 같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보험이 안된다면 비싼 건가요? 얼마나 들어가나요?” 그녀는 애처로운 눈으로 과장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벌써 비용 걱정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보험으로 사용하는 것이니 한 달에 약 700만 원 정도…” 과장님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 그녀는 놀라 소리쳤다. “뭐라고요? 700만 원이라고요? 그것도 한 달? 전체 치료 과정이 아니고요? 저 그 돈 없어요!”
과장님께서는 환자의 격한 반응에 마음이 다소 불편하신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시도해보실 생각이 있으시면 알려주십시오.”라고 말하며 급히 병실을 나가셨다. 뒤따라가는 나에게 “우와…700만 원…700만 원…” 혼잣말로 되뇌는 환자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뒤에서 들렸다.
회진이 끝나고 그녀에게 저녁 약을 투여하러 갔던 간호사가 나를 찾았다. 그녀는 치료비가 없으며 돈을 지원받을 방법이 없는지, 자기는 좀 더 살고 싶다고 울었다고 했다. 그녀는 이전에 이미 사회 복지과에서 진료비 지원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한 상태였다. 간호사는 한번 그녀와 이야기를 부탁한다고 했다.
설령 새로운 약을 복용해서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상태는 완치될 수 없다는 것과 암이 진행하지 않더라도 보통 8개월 후에는 약에 대해 내성이 생겨 암이 진행하게 된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려주어야만 했다.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는 눈물을 조용히 흘릴 뿐이었다. 나는 죄책감과 우울감에 휩싸인 채 병실을 나왔다. 그녀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나는 감히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자격이 없었다.
다음날 쓸쓸하게 퇴원한 그녀를 나는 다시는 보지 못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라는 생각이 아직도 꼬리를 물며 나의 생각을 어지럽힐 때가 종종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저 창 너머 일몰을 그녀는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나의 한 달, 아니 하루의 가치는 얼마인가. 과연 나는 그 가격을 충분히 지불하며 살고 있는지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