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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모 Dec 15.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병원 에세이

  신경외과 병동 6인실 병상 한 구석을 차지하는 그의 자리는 항상 커튼이 둘러져 있었다. 그 너머로 이따금 들려오는 희미한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가 안쪽에 의식이 없는 그가 누워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굳게 닫힌 커튼이 살짝이나마 열리는 유일한 시간은 하루에 한 번, 오전 10시 30분경이었다. 나는 정갈하게 준비한 드레싱 세트를 들고 밖에서 그의 아내이자 유일한 보호자인 그녀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그녀가 커튼을 묶어둔 클립을 빼고 살짝 열어주면 그제야 병동 인턴은 틈새를 비집고 침대 옆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의 생명을 지탱하는 구멍은 세 개였다. 목에 있는 기관절개 구멍, 위로 통하는 영양관 구멍, 방광과 연결된 소변 구멍. 그녀는 매일 그 세 가지 구멍 부위의 소독을 부탁했다. 이 드레싱 과정은 그와 그녀의 일종의 의식이었다. 나는 그녀의 관찰 하에서 목, 상복부, 그리고 하복부 순서로 진행해야 했고, 한 군데를 세 번 이상 소독하여야만 했다. 그녀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마다 듣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그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여보, 이제 목 소독할게, 조금 기침 나올 수 있어. 조금만 일으켜 세울게. 불편하면 알려줘. 알았지?” 

  오래전 뚫은 기관 구멍은 이제 너무 헐렁해서 소독할 때마다 기관지 안으로 조금씩 자극적인 베타딘 소독액이 조금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그는 온몸을 뒤틀며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였다. 그때마다 그녀는 기침으로 들썩이는 그의 몸을 붙잡고 꼭 안아주었다. 

  “너무 따가웠지? 괜찮아. 나 여기 옆에 있어. 괜찮아.” 그녀는 그때마다 그의 귀에 속삭였다. 

  위와 방광으로 연결된 관을 소독할 때는 그녀는 비닐장갑을 끼고 골고루 소독액이 발라지도록 관을 가만히 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항상 관의 고정 방향은 매일 반대로 바뀌어야 했는데, 행여나 반복적인 마찰로 피부가 상할까 봐 걱정되어하는 그녀의 예방 조치였다. 드레싱을 마치면 다시 그녀는 클립을 풀어 커튼을 조금 열어주었고, 그 틈으로 빠져나와야 이 매일 거르지 않고 진행되는 의식이 끝나는 것이었다. 

  굳이 의무기록을 보지 않더라도 그는 의식은 사라진 채 자극에 대한 자동적인 반사 신경만 남아있는, 호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뇌손상을 지닌 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나는 퇴근하기 전 호기심에 당직실 컴퓨터로 그의 의무기록을 열어보았다. 2년 전 마지막으로 촬영한 MRI상 그의 대뇌 피질은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뇌종양 제거 수술 후 발생한 대규모 출혈과 이어진 수차례의 응급수술로 발생한 뇌손상은 그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수술 날짜는 2006년에 멈추어 있었다. 그의 뇌와 함께 그녀의 삶도 12년째 2006년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2주 정도가 지나자 그녀는 매월 병동 인턴이 바뀔 때마다 하곤 했던 통상적인 경계심을 풀었다. 나는 그녀의 헌신적인 태도를 매우 존중, 아니 존경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매일 아침 그의 드레싱에 각별히 신경을 썼고, 그녀는 이런 나의 태도를 고마워했다. 어느 날 우리의 드레싱 중 병자성사를 행하기 위해 원목 신부님이 방문하셨고, 그녀와 나는 같은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힘들지 않으시냐고.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가만히 남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와 그녀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그녀는 꿈에 부풀어 유학의 길을 떠난 어린 학생이었다. 고국에서 먼 그곳에서 그와 그녀는 서로 의지하며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못하지만 정말로 분에 넘치는 사랑을 했다고. 그리고 그 짧지만 행복한 한 때의 기억이 지금 그의 곁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했다. 그녀는 그 기억을 추억하는 듯 병상에서 백발이 되어간 그의 머리를 거듭 쓰다듬었다. 나의 착각이었을까.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그의 눈이 잠시 반짝이는 듯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창 밖에는 눈이 살포시 내리고 있다. 그녀는 아마도 도시 반대편에서 창 밖에 내리는 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금도 그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침묵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사랑의 기억이다. 그 기억을 통해 우리의 현재는 숨을 쉬고, 미래로 한걸음 더 내딛을 수 얻는 용기와 희망을 얻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사랑이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을, 주변 사람을, 좀 더 열심히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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