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걸스카우트 활동을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교에서 친구들과 잠을 잘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설렘을 갖게 한다. ‘학교괴담’이라는 영화가 괜히 만들어졌겠는가?
학교라는 공간이 만들어주는 경외감과 막연함은 스카우트 뒤뜰야영을 통해 고조되었다.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취사와 야영을 한다. 초등학교 5학년 풋내기 소녀에게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과 밥을 지어먹는 일조차 낯설고 즐거운 경험이다. 쌀은 누가 가져올 건지 반찬은 어찌할 건지 찌개는 엄두도 못 내고 겨우 군색하게 생각해 낸 음식은 국민 캠핑메뉴인 카레덮밥.
어찌어찌 삼층밥을 짓고 어설프게 만든 카레를 코펠 뚜껑에 받아먹는 그 맛은 여느 수라상 못지않았다. 서로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저녁시간은 끝이 나고 막내들이 설거지 담당. 적당히 배도 부른 우리들의 관심은 캠프파이어. 학교건물 꼭대기에서 불똥이 떨어져 내려와 점화되는 순간 우리들은 함성과 괴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신나게 스카우트 송을 부르며 일체감을 느꼈고, 땀에 흠뻑 젖도록 캠프파이어 주변을 빙빙 돌며 막춤을 추어댄다.
지금 초등 고학년들은 이미 사춘기 감성이 한창인 나이라고 하지만, 40 년 전 그때는 나름 순진한 아이들이었다. 잠자리에 들어 옆에 누운 언니들이 들려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오줌이 지려도 화장실을 찾지 못하고 결국은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덕분에 또 한참을 웃어대고 밤이 깊도록 아이들의 수다는 끊이질 않았다. 우리가 누워 잠든 교실은 학교 도서관이었는데 오래된 책에서 풍겨 나오는 특유의 종이 냄새는 지금도 잊히지 않고 코끝을 간지럽힌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달빛에 어스름한 교실 한쪽에 당당히 선 서가들과 그 안의 책들이 그리 좋아 보일 수 없었다. 손끝에 닿는 뭉뚝한 낡은 책의 모서리들도 정겨웠고 그 안에 자리를 깔고 누워 교감을 할 수 있음도 친구들만큼 이나 좋았다. 지금도 우리 집 거실 한쪽 면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학교도서관과 목마도서관에서 즐겁게 출납의 봉사를 하며, 아이들과 NIE 글쓰기 활동을 하면서 활자놀이를 할 수 있는 건, 그때부터 쌓아온 책에 대한 외사랑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잠든 옆 교실은 과학실이었는데, 만약 그곳에서 잠자리를 했다면 과학자의 꿈을 꾸게 되었을까? 가끔 우리 아파트 뒤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한여름 뒤뜰 야영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 시간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스카우트 활동을 했었던 내 여름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