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by 연두

영양사, 국가에서 공인한 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내게는 유명무실한 인증서다. 학교 졸업 후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종이쪼가리. 시험 성적에 맞추어 어찌어찌 들어간 대학은 공부도 친구들도 관심 밖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쾌활한 내 성격은 주변인들을 즐겁게 하고 관심을 받는 위치가 되어 과대표를 맡게 되면서 또다시 학교생활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식영과.jpg

한 번 꽂히면 마무리를 짓는 내 성격상, 식품영양학과 과대표로서의 임무를 다 하기 위해 봄부터 시작하는 축제에 우리 학과만이 갖는 특성을 내포한 ‘나래제’를 만들었고, 여름 방학 중 후배들과의 교류를 갖는 LT/MT를 갖게 했으며 가을 학기가 되어선 학과만의 문집을 만들기 위해 학과 교지편집부를 만들어 우리만의 열매를 갖게 했었다.


‘나래제’는 학과 특성상 음식을 주제로 한 커플파티 형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브런치 정도의 일일 찻집이었는데 카나페등의 애피타이저를 소재로 한 음식과, 몸매에 관심 있는 칼로리를 매개로 영양 밸런스를 찾아주는 맞춤형 상담이 꽤 인기를 끌었던 코너였던 것 같다.


피드백을 겸비한 계획을 위한 시간인 대표회의 때는 그간의 행사를 둘러보며 미진한 점과 앞으로의 방향설정을 위한 자유토론을 하였고, 촛불의식을 통해 조금 더 서로를 들여다보는 시간도 가졌었다. 덕분에 후배들로부터 ‘김선배는 촛불을 너무 좋아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내게 있어 행사의 마무리는 늘 캔들 세리머니였으니까.

공중전화.jpg

학교생활을 마무리하는 우리들의 마지막 작품은 학과문집 만들기였다. 내용을 무엇으로 할지와 논문을 넣는다면 실험 주제는 무엇으로 할 건지 학과장님과 의논을 하였고, 우리들의 주제를 ‘냉면 육수’로 잡았다. 한창 더운 여름, 냉면 육수 속의 대장균은 늘 골치 덩어리였다. 발생하는 빈도와 장소, 영향 요인 등을 분석해 나름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고 학과생들의 자유로운 문학 작품도 다양하게 담을 수 있었다. 그때 시간을 공유한 녀석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하면서 지내는 걸 보면 서로가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건 어떤 특별한 소속감을 갖게 해 주는 것 같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들이었다. 내 곁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있었다. 부족한 소양을 메꾸어 주는 누군가가 항상 멘토가 되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고집을 가지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성격도 한몫을 하긴 했지만, 나는 늘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었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면 다시 토론을 했었고 결국은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적군을 만들지는 않았었다. 아무리 정당한 일을 하더라도,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그런 이야기를 지표로 삼았었다고 한다. 적군을 양산하지 않는 원만한 인간관계의 우월성.


사람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품성이 있다. 악한 것이 기본 성품인 사람은 없다. 왜곡되지 않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진심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그 진심이 전해진다고 믿는다. 다만 시대의 변화가 휙휙 너무 빠르게 변하여 차마 서로에게 다 하지를 못 할 뿐이다. 학교생활 내내 조급함을 달래 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걷는 걸음이 뒤 따라오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다던.

커트머리.jpg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금일 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눈 내린 들판을 밞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 서산대사의 禪詩 -

keyword
작가의 이전글4. 팔각성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