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더운 피를 나누자

<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제3부 가족>

by 쌍둥이 아빠

다시 더운 피를 나누자


작고 어린 그녀는 1등이 적혀있는 성적표와 품행이 단정하고 모범적임을 증명하는 상장을 방바닥에 굴러다닐 정도로 많이 받아오기도 했다.


공부 못하는 동네 아이들과는 어쩐지 좀 다른 세계의 사람인 듯도 했다. 어른들은 저녁 늦게 돌아오는 부모님을 위해 장을 보러 나가는 어린 그녀를 기특해 하기도 했다. 기운집 한켠 그녀의 작은 공부방은 늘 밤늦도록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녀는 지역 제일의 인문계 여고를 가는 대신, 새로 생긴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학교가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여고생이 된 그녀는 토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엔 학교로 돌아갔다. 가끔은 장학금을 받았다며, 현금이 들어있는 하얀 봉투를 집에 가져오기도 했다.


한번은 더블데크 카세트를 가져와 가족들에게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선물하기도 했다. 또 어느 날엔가는 산울림, 정태춘 같은 가수들의 테이프를 가져오기도 했고, 또 어느 날엔 시집이나 에세이, 소설책을 집에 가져오기도 했다.


그녀는 언제나 열심히 살았다. 대학에 진학했고, 학보사에 다니며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다. 졸업 후엔 신생 인터넷 언론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의 그녀는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때로 조금 시간이 날 때는 영풍문고나 교보문고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있는 그녀를 늘 궁금해했다. 그녀도 사실 가족들을 늘 궁금해했다.


어느날 그녀는 직장을 옮겨 제주도로 훌쩍 떠났다. 인터넷 포털 싸이트 회사로 이직한 그녀는 가족들과 더 멀어진 듯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늘 가족들에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가끔 전화를 하기도 했고, 고향 집에 일이 있을 때는 잊지 않고 돌아왔다.


2004년 봄. 대통령이 탄핵된 어느날. 고향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온종일 잠을 잤다. 이불을 코 밑까지 끌어올리며 웅크려 잠을 잤다. 일어나봐 왜 자꾸 잠만 자는 거야. 가족들은 걱정했지만, 그녀는 도무지 깨어날 줄을 몰랐다. 무척 고단해 보였다.


그날 뉴스 화면은 거리로 몰려나온 사람들과 촛불로 가득 차 있었다. 뉴스 속의 사람들은 이제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 제안하면 함께 움직이는 일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그녀는 잠깐씩 눈을 뜨고 TV를 바라보았다.


2008년 봄. 대통령이 바뀐 어느날에도 그녀는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동안 광장을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하거나 무언가 제안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2004년에 모였던 사람들도 이 광장을 통해 다시 거리로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거리에 다시 가득한 촛불을 이야기하며, 그녀는 또 깊고 고단한 잠을 잤다.


그녀가 만들어온 광장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녀도, 그녀의 가족들도 광장을 자랑스러워했다.


광장은 참여와 공론의 장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 광장이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그녀는 광장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는 광장의 탄생과 소멸에 대해,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청춘을 태우고, 조금 늦게 결혼한 그녀. 그녀의 남편은 키가 크고 착한 남자였다. 그녀는 늘 햇반 반공기 정도의 밥을 먹었는데, 덩치가 크고 순한 그녀의 남편도 햇반 반공기의 밥을 함께 먹었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그녀는 덤덤하고 치열한 생을 묵묵히 살아냈다. 어느덧 그녀가 몸담아온 인터넷 포털은 국민메신져 회사로 바뀌었고, 그녀도 더 이상 옛날을 추억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이른 퇴직 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간혹 말없이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돌보고, 이런저런 정리를 한 후에 말없이 돌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덧 조금씩 늙어가고 있었다. 영민했던 아이,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성취를 타인에 대한 침범 없이 세워 올리던 청년, 사회와 생에 닥쳐오는 크고 작은 숙제들을 질기고 성숙하게 고민했던 어른.


그녀가. 큰누나가. 어느덧 늙어가고 있다.


나의 과장된 우울과 방황을 오래오래 지켜보던. 내 늦은 결혼과, 늦은 육아와, 고집스러운 밥벌이를 묵묵히 응원하던. 내가 나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도록, 다시 글을 쓰라 위로했던. 큰누나.


서로의 무사를 확인하던 몸 작은 가족. 각자 다른 모습으로 생을 도모하였으나 멀리 부르고 안으며 내내 함께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오랫동안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큰누나는 양팔을 허공에 휘어 저으며 나와 작은누나를 안고 울었다. 큰누나가 그렇게 오래 슬피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녀의 삶도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큰누나의 삶이 그저 잊혀지는 것이 어쩐지 나는 마음이 아프다. 그녀는 오래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큰누나의 삶을 짧게 이곳에 기록하고 그녀에 대한 마음의 빚을 아주 조금 갚으려 한다. 그녀 말대로 글도 다시 쓰고. 또 정직하고 진실한 삶의 자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려 한다.


그리고, 누나의 바쁘고 분주했던 생을 늘 유쾌하게 안아주는 나의 가장 큰 산, 큰매형에게도 이 세상 가장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함께 전한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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