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트럭

<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 - 소란 스러운 마음>

by 쌍둥이 아빠

춤추는 트럭


설 대목 역광장 장터 입구에는 남편을 잃은 가방장수가 혼자서 가방을 팔러 나오고, 그 곁엔 그릇 장수 장씨가 하늘 보고 욕을 한다. 날씨가 추워 장사 망했다고 욕을 한다. 더 안쪽에는 이불장수 문씨도 하늘만 본다. 학생회장에 떨어진 공부 잘하는 큰딸을 걱정한다. 저만치 바지 아저씨가 외친다. 어이, 바지요 바지, 쩔쩔 끓는 바지요. 외치는 입술 끝에 찬 입김이 퍼진다.


장작불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선다. 야채장수 임씨 아들이 대학에 붙었다고 한다. 신문지에 꼭꼭 싼 것을 쥐여주며 얘기한다. 집에 가서 펴보라고,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벌건 눈을 부릅뜬다. 사그라든 불씨에 입김을 불어 넣는다. 오뎅 할머니 국물통에 자욱한 김이 오른다.


어둠 속에 깜박이며 줄지어 선 트럭들

앞차부터 천천히

골목을 지나

굽은 벼랑을 지나


달린다

몸부림친다

춤을 춘다



소란스러운 마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늘 춤을 추듯 아름답고 슬프다. 매년 연초에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의지로 가득한 장면을 목격한다.


얼마 전 아침. 사무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다소 초라한 행색의 남성 민원인이 공공근로 참여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었다. 매년 연초 저소득, 노숙인, 위기 가정 세대원 등 근로 능력이 미약한 주민을 대상으로 공공근로 참여자 모집을 하고 있다.


최근에 선발을 마친 담당 직원은 큰 소리가 나자 황급히 민원인의 이름과 거주지, 제출된 신청서의 기재 내용 등을 확인하려 하였지만, 차분한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한동안 소란이 이어진 후, 커피와 음료, 다독임이 계속되자 간신히 언성이 조금 낮아졌다. 몇 가지 자료를 살펴보자, 공공근로 참여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이유가 쉽게 확인되었다. 이미 기초생활이 어려운 세대로 분류되어 생계급여가 지급되고 있기 때문에, 생계급여의 축소 또는 제외를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공공근로 선발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자세한 설명을 하였지만, 민원인은 수긍하지 않았다. 본인처럼 어려운 여건에 있는 사람이 공공근로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를 따져 물었다. 다시 목소리는 격앙되었고, 뒤에 기다리는 민원인들의 표정도 일그러지고 있었다.


다독임과 사과의 표현이 거듭되었고, 민원인에게 이미 지급되고 있는 지원 사항들도 재차 설명되었다. 그리고, 명절 이웃돕기 대상자로 고려해 보겠다는 약속까지 이어지자 민원인은 똑똑하지 못한 공무원들을 탓하며 돌아갔다. 그는 젊은 공직자가 차마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거칠었다. 쓸만한 자동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그는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영구임대 아파트에 거의 무료로 살고 있었다. 가족은 모두 4명이었다. 정부 지원금 외에 다른 세대원의 소득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를 상담한 직원은 재수 끝에 1년 전 임용된 30세 남성의 행정직 공무원이었다. 월 실수령 170만원 상당의 급여를 받고 있었다. 일정한 소득원은 없으나 용돈 벌이를 하고 계신 부모님, 그리고 역시 사회 초년생인 남동생도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민원인이 돌아간 후에 본인보다 소득도 많고, 차도 더 좋고, 결혼도 했고, 자녀도 있으며, 심지어 건강해 보이지만 일체의 근로활동을 하지 않는 민원인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소득도 적고, 차도 작고,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으며, 자녀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늘 바빴다.


사무실을 안을 둘러보자 소득도 적고, 차도 없으며, 결혼을 꿈꾸어 본적 없는 젊은이들이 가득차 있었다. 게다가 그늘은 바쁘고 불안해 보였다.


쓸만한 자동차를 타고 돌아간 민원인은 정말 공공근로 참여자로 선발되었다면 일할 생각이었을까? 그와 그의 가족들은 어째서 수년째 근로소득이 전혀 없는 것일까? 혹 오늘의 일이 그가 선택한 나름의 경제활동은 아니었을까? 일하지 않는 가정의 자녀와 가족들은, 종일 함께 무엇을 하고, 또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궁금한 것이 많아졌지만, 또다른 일을 해야 할 시간이 되자 이내 생각은 지워졌다.


다시, 춤추는 트럭을 생각해 본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도 새삼 오래 생각해 본다. 어쩐지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장터 사람들도, 이 사무실의 저 열심인 젊은이들도, 한편 마음이 편치 않았을 나이든 민원인도, 실은 함께 슬픈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또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걸까.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가득한, 소란스런 하루가 매일매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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