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바다, 부레없는 우리-소멸>
스무살이 되자 친구들 대부분은 대학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인근 대학에 진학했거나, 진학을 포기한 이들은, 시내 가까운 자취방을 얻어 집을 나오기도 했다.
떠난 이들 중 몇몇은 주민등록 주소지를 잠시 고향집에 두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이런저런 불편이 생기자 주소 마저 아주 지우게 되었다.
나는 스물여덟이 되던 해에 다니던 대학원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년여의 수험생활 끝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드물게 고향에 남아 있던 친구들을 우연히 이런저런 자리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어떻게 살았니? 그냥 그럭저럭 일하고, 그렇게 살고 있지 뭐. 누구누구 소식은 혹시 들었니? 글쎄, 언제 술이나 한잔하자.
지역에서 살아온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거나, 군대, 아르바이트, 작은 직장 등을 오가다 조금이라도 더 큰 도시로 떠나갔다.
어느덧 마흔 후반에 이른 요즘은 그나마 멀리 듣던 소식들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간혹 장례식장 같은 곳에서 우연히 익숙한 얼굴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아는척하지 않았다.
도시는 마치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백발의 노인같은 모습이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해도 도저히 젊어질 방법이 없어 보인다. 어느덧 나 자신도 지역과 함께 고령화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또한 이 노쇠한 공간과 함께 소멸되는 것은 아닐까? 덜컥 무서움이 몰려온다.
좀 야무진 녀석들은 일찌감치 지역을 떠났다. 남은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소득과 커리어를 가질 만한 일자리가 없다. 몇몇의 기업에서 채용공고가 올라오긴 하지만 규모도 작고 대부분 생산직에 한정되기 마련이다.
기업도 인력 확보에 난항을 겪는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지역에 남은 인력의 경험과 의지가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함을 모두가 알고 있다.
순환이란 표현이 맞을까? 아니면 소멸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적으로 젊은이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역 전체를 개조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또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이다. 지방행정의 시각에서 보자면 임기 내 지역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정치인들의 이런저런 공약들은 대부분 헛소리에 가깝다.
멀고 먼 일이다. 오랜 시간 권력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고, 지방 이주에 따른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재정 대책 또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부득이한 희생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도저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 멀고 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늙지 않는다. 지금껏 무엇을 지켜온 것인지 알 수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희망은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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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대자연의 추위와 허기를 이겨내었듯 이 고난의 벽 또한 어느 때인가 희망의 계단으로 변모할 수 있으리라, 혹은 지방 소멸의 문제 또한 살아남은 자들이 제 삶의 과정으로 극복하고 증명할 수 있으리라. 그래도 무언가 하루하루 더 나아지고 있으리라. 그저 믿을 수밖에.
해맑은 아이의 모습을 한 저 부질없는 희망이. 저 빌어먹을 희망조차 별안간 늙어 사라지기 전에. 이곳에서도 살 수 있다고. 이곳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우리중 사라지지 않은 누군가가 반드시 증명할 것이라고. 믿는다.
사라진 별빛
돌아가는 길
그 선량했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육두문자
군대, 알바, 멸시, 자존심
그래도 내가 독한 놈이야, 남들이 그래
달리던 차가 가로막히고, 가슴도 자욱하게 막혀온다
친구여,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지
집도 길도 아닌 육두문자의 삶을 향해 가는 것일까
아무리 걸어도 늙지 않는 희망
이 질긴 청춘이 지고 나면
반찬 같은 꿈이라도 반짝이고 있을까
뒤돌아 흔드는 너 취한 손이
먼 별처럼
반짝이다, 반짝이다, 사라진다
※ 고등학교 동창이던 친구는, 고향과 조금 더 큰 도시를 오가며 생활했다. 부모님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간혹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던 친구는, 어느 많이 취한 날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선택한 것인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자취방에서 토한 채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