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권장하는 사회

<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법과 제도의 한계>

by 쌍둥이 아빠

“우리팀도 안됩니다”. 주말 동안 팀장들 간의 합의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월요일 오전 예상대로 팀장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번 정기 인사에서 우리 부서로 오게 된 한 직원의 팀 배치와 관련된 사안이었다. 부서장까지 나서서 회의를 시작했지만,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사무실 한편에는 익숙한 듯 덤덤히 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직원이 있었다. 35세, 경력 7년 차 여직원이었다. 3년 전 결혼하였으며, 최근 어렵게 아이를 갖게 되었다. 맞벌이 부부였고, 몇 개월 후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들어가야 했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 젊고 당차고 싱그러웠던 그녀를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 맡은 일에 성실했으며, 미숙했으나 의욕 넘쳤던 모습도 기억하고 있었다.


7년 여의 시간 동안, 그녀의 싱그럽던 표정은 어느새 낡고 덤덤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에겐 사랑하고 결혼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결혼 후에는 아이를 갖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다. 더 복잡한 사정도 많았지만 아무도 그녀의 개인 사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각자가 다 복잡한 개인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도와봤자 결국 자기만 지치고 손해 보기 때문이었다. 조직은 주변을 돕고 업무 공백을 대신하는 직원들에게 그 무엇도 보상하지 않았다. 보상할 근거도, 그것을 인정할 관행도 없었다.


그녀 또한 사정이 있을 때마다 양해를 구하는 것보다는 낡고 무심한 표정으로 주변을 외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야 했다. 곧 휴직도 해야만 했다. 지금 어떤 업무를 맡게 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주변 사람들과의 우호적인 관계 따위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무심해져야만 했다.


잠시 후에 결론은 지어졌다. 가장 업무 비중이 낮은 팀에 배치되었다. 해당 팀장과 해당 팀의 구성원들도 낡고 익숙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어느 조직에서든 여성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조직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휴식과 휴가 등의 당연한 조치를 취해왔다.


그러나 인구문제를 비롯한,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한 주변의 고통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역은 소멸하고 있고, 우리 조직의 젊은이들은 사랑과 결혼, 출산과 육아를 부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도 흥미가 없어 보인다.


사실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에 대한 직무상 주변인들의 시선은 때로 그리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젊은 여성들은 직장내 주변인들에게 거리 두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로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곧 출산이 예상되는 여성의 경우가 그런 일을 겪는다.


삶과 직업 서사의 중요한 기점에서 여성들은 소외되기 일쑤다.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 업무 공백을 만든다는 이유로 단순 업무에 반복 배치되기도 한다.


사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의 문제는, 개인이 가진 삶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일이다. 개인마다 사랑의 이유도 다르고, 결혼의 이유도 다르며,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는 배경과 사정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법과 제도는 부부 중에서도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에 관한 지원을 집중하고 있는 경향이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오히려 법과 제도는 여성에게 독박육아를 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여진다.


애 하나를 온 마을이 키운다는 말이 있다. 아이 하나를 돌보자면 부부는 물론, 양가 조부모, 형제, 자매, 이웃의 손길까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정과 이웃 공동체에서는 다른 형제와 이웃의 아이를 돌보는 일에 참여할 방법이 없다. 직장 내에서도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기 위한 주변인들의 제도적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여성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서는 오히려 남성에게 시간을 주어야 하고, 한 여성이 육아휴직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주변인들에게도 여유의 시간과 재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조부모가 부모로부터 육아휴직을 양도받아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이미 시행 중이다. 프랑스와 핀란드 등의 일부 유럽 국가에서도 가족들의 직․간접적 육아 참여가 제도화되고 있다. 출산과 육아에 관한 법과 제도의 경계가 조금은 확장되어야 한다는 판단일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법과 제도에 기대어 아이를 낳게 한다는 인식도 내려놓아야 한다. 정부와 자치단체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결혼과 육아를 독촉하는 재정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몇 푼의 지원금에 기대어 출산과 육아를 결심하는 젊은이들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간 우리 사회의 내면이 자녀를 어떤 존재로 인식해 왔는지 투명한 마음으로 살펴볼 필요도 있다. 혹 우리 역시 여전히 자녀들을 가정 경제의 조력자이자 노후를 위한 안배로서 인식해 온 것은 아닌지. 실은 우리 또한 자녀 양육의 반대급부로 기대할 만한 경제적, 정서적 이득이 이제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결국, 한 인간의 탄생과 성장에 사회․경제적 목적을 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존엄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공동의 책임도 만나야 한다.


그리고 끝끝내, 왜 모두가 고통 받는지 알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외면하여 온 질문 또한 반드시 마주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에 잠든, 가장 진실한 말이 무엇인지, 끝없이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