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믐 May 20. 2022

28일 차

2022. 05. 20

Q. 가장 힘든 선택의 기로는 언제였나요?

가장 힘든 선택의 기로라.. 하면.. 익숙했던 관계와 이별하는 것이었겠지요. 이래도 저래도 아프긴 매한가지인. 선택을 하기 힘들다는 것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선택을 하고 나면, 악을 쓰든 악을 쓰지 않든 시간은 흐르고 그 선택을 한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죠. 사실 선택에는 잘잘못이 없는 것 같습니다.


Q. 당신이 정의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나는 행복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행복한 것보다는 충만한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죠. 그런 관점에서 행복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감정입니다. 아무리 불행하고 우울한 사람도 하루 중에 몇 차례는 행복을 느낄 겁니다. 다만 자신이 느끼는 게 행복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흘러가버릴지도요. 좋은 향을 맡아도, 햇살을 맞아도, 꽃을 보아도, 하늘이 맑아도, 바람결이 좋아도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 행복은 계속 거기 있을 겁니다. 우리가 알아봐 줄 때까지요. 행복이 오고 가는 것을 모두 알아봐 줄 수 있는 상태를 나는 충만하다고 부르고 싶은가 봅니다.


Q. 매일 10분씩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요즘 출근길 버스 안에서 쓰는 글이 재미있습니다. 이 얼마 만에 해보는 짓인지 어색하기도 하고요. 내가 글이라는 것을 쓸 때는 늘 내가 쓰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종류의 일들이 몇 가지가 더 있지요. 편집 디자인을 하거나, 어떤 그래픽 효과를 만들어내거나, 사진이 잘 찍히는 날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나는 오늘 버스 안에서 창문 손잡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지요. 

이십 대까지만 해도 나는 문 공포증이 있었다.
낯선 문일 수록 내가 열지 못할 것이라는.
버스의 창문도 내 힘으로는 열리지 않을 것 같았고
건물 입구의 무거운 유리문이나 철문도 나는 열 수 없을 것 같았다.

여행을 하며 에어비엔비나 오래된 숙소에 방을 얻으면
열쇠가 꽂히지 않거나 돌아가지 않아서 직원을 부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나는 문 하나 못 여는 모습을 들키는 것을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문들은 가장 열기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내가 못 여는 문이 거의 없어졌다.
나는 문을 정말로 열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문을 못 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문이 열리지 않게 했던 걸까. 
문 그까짓 거 못 열어도 그만인 것을 그런 일도 상처가 되었다.
나는 문 앞에서 늘 불안해하곤 했다.


Q. 살면서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인연이 있다면, 왜 그 사람이 떠오르나요?

그래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꼭 한 번쯤 연애를 해보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죠. 지금은 알죠. 그 사람이랑 연애를 했다면 지금의 그리움이 없었을 것이란 걸. 그리고 또 압니다.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나도 나는 더 이상 그를 선택하지 않으리란 것도. 

하지만 짧았던 찰나의 추억들이 꽤 강렬했어요. 나는 그가 말하는 방식이나 고르는 단어, 음정의 높낮이, 그 말을 전달하기 위해 움직여 만들어내는 표정들을 좋아했습니다. 다정하고 안전한 사람. 뭘 해봤어야 헤어지기라도 하는데, 홀로 생겨버린 감정은 이별할 건더기도 없더군요. 그렇게 오래 품고 있다가 아주 먼 길을 넘어 전해주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기억쯤 하나, 그런 사람쯤 하나 있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7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