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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27. 2022

[격리중讀] 나의 오랜 연인

아몬드 - 손원평

책을 일찍, 또 빠르게 읽었다.

독후감을 써보려 여러 날 여러 번 창을 켰지만, 두 줄을 넘기지 못하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왤까?


나는 윤재가. 좀 부럽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괴물'이라 표현되지만,

윤재의 생각과 말, 행동 그 어디에서, 그 어떤 오류도 없다고 여겨졌다.

윤재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윤재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았고, 윤재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지금의 나는 그것의 속성을 속속들이 알기에, 감정을 감정답게 대할 줄 아는 법을 배웠지만

한때는 사치로 치부되고

한때는 다스리고 통제해야 하는 무언가

한때는 우선순위로 놓고 싶어 발악을 하기도 했던

이리 쓰고 보니 오래된 연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낯선 연인은 내 속을 뒤집어 놓고 나를 태우다 못해 여기저기 불똥을 튀기게도 했다.

조금 친해진 연인은 가끔씩 나에게 등한시되었고 홀로 서운해하다 이따금씩 폭발을 하기도 했다.

권태로운 연인으로부터 나는 무감각해졌다. 무감각해진 권태로운 나의 연인은, 내 안의 가장 어둡고 깊숙한 곳에 갇혔다.

나는 두려움이라는 허상에 때때로 불안에 떨었고,

익숙함이라는 교만에 때때로 존중을 잊었고,

무감각이라는 무지로 때때로 자신을 죽였다.

그 모든 순간에 나는 무엇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

나는 끊임없이 판단하고 평가했으며, 그것은 그 어떤 진실과도 닮아있지 못했다.


감정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도라도,

감정이 무엇인지 모른 채 폭주하는 곤이도,

감정에 휩싸여 판단하지 않는 윤재도,

모두가 오래된 연애 속, 내 모습였다.


나는 이제 감정과는 돈독한 노부부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어느 날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몇십 년 전의 청춘처럼 싸우는 날도 오겠지.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오랜 연인 감정은, 그저 나에게 존중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는 무엇도 그를 통해 판단되고 왜곡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를 존중함으로써 충만해지고,

그가 흘러간 자리에 남아 그냥 바라본다. 그냥 바로 본다. 무엇도 판단하지 않으려 해 본다.


두려움은 두려움일 뿐 나쁜 것이 아니다.

아픔은 아픔일 뿐 잘못된 것이 아니다.

행복은 행복일 뿐 좋은 것이 아니다.

감정은 감정일 뿐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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