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삶처럼, 결단코 퇴고하지 않겠습니다.
이틀을 내리 잤다.
이 집에 이사 온 이후로 아무런 도움 없이 이렇게 자는 건 처음이었다. 유일하게 잠이 쏟아져본 건 1차 코로나 백신을 맞았을 때뿐.
마음 한구석에 ‘지금 이렇게 잘 때가 아니야!’를 외쳐댔지만 외침을 들어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난 결코 외침을 외면한 것이 아니다.
밖이 어두워지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웬일인지 바깥 불빛이 평소와 다르게 소등되어 있었다.
밤 열 시가 넘어서 김치전을 주문했다. 수많은 가게들이 나의 배달콜를 거절했지만 기어코 성공해냈다.
이번에도 배가 아플까..? 역시나 배가 아프군. 먹을 수 있는 게 남들보단 적다지만 김치전이나 만두를 먹고 배가 아픈 이유는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배가 아프고서야 무언가를 시작할 힘이 생겼다.
엄마는 이번에도 한결같이 “나는 가족이 없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한결같기도 하지. 만나서 이 소리를 들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다행이다. 나는 또 한동안 그녀를 나 몰라라 할 것이다.
질리게 들었던 그 말이 또 내 발목을 잡는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없었는걸 엄마. 그토록 바랬을 때도, 그토록 그리워했을 때도 아무도 없었는걸. 그리고 이젠 바라지도 않아.’ 엄마의 말이 문득 나를 원망하는 것처럼 느껴져 기어코 엄마에 대한 원망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유독 SNS에는 하루 종일 전을 부치고, 시골집에 가서 북적거림을 만끽하는 소식이 많다. 언제부터 니들이 명절을 그렇게 즐겼다고. 나는 단연코 그런 명절을 보내고 싶은 게 아니다.
하지만 일과 나만 남은 명절을 보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어.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함을 주고받으며 바람과 달을 누리고 싶었다. 기름진 음식과 술을 홀짝이며 고요하게 또 따뜻하게.
심바는 울적해 보였다. 나는 그런 심바라도 곁에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