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Um Rio' by Márcio Faraco
예전에 네비게이션이 참 싫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이리로가라 저리로가라 하면서 몇미터 앞에서 좌회전, 무슨 구간에선 속도를 줄이라 어쩌구 저쩌구 참 말이 많다고 생각했다. 물론 바쁜 시간 속에서 빠르게 도착할 수 있게도, 그리고 모르는 길 헤메이는데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도와주기도 하는 참 똑똑한 여자라고는 느꼈지만, 나는 가끔은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읽어주는 지도를 보며 두리번 두리번 차 속도를 줄이는 아빠의 모습이 그리웠다. 가끔은 멈춰서서 낯선 동네의 사람과 말을 붙여보며 길을 묻다가 맛있는 집에 대한 소문을 듣기도 하고,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아이고 가족들이랑 놀러오셨구나, 좋은 시간 보내세요”, “여기 사시는거 정말 부러운 것 같아요” 하는 실없는 말들이 오가는 순간이 참 정감미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그리움에 대해 나누던 중에 네비게이션에 아날로그 모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이구간에서는 멈춰서서 동네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세요”, “차를 길가에 세우고 지도를 꺼내세요”, “여유롭게 길을 헤매여보세요” 라고 얘기를 해줄 줄 아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라는건 참 낯설다. 그 낯섬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접한 적이 없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모습을 한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구글맵을 켜고 시간을 단축시키지만 그렇게 한번 다녀온 곳은, 언젠가 내가 또 다시 방문하게 될 때에 다시금 인터넷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지도를 들고 목적지를 향해 걷고 또 걷다가 무언가 맘에 드는 곳을 발견해, 혹은 내 발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이리로 가고 싶어 그렇게 길을 잃어버린 곳에서 나는 여행의 참된 의미를 발견한다. 그 도시를 방문한 모든 관광객의 머릿 속에는 없을 것 같은 장소에 도착하고 나만의 기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낯선 이에게 무언가를 묻는게 너무도 수줍은 나에게 현지 사람들은 당신들의 말로 말을 건네온다. 어느 도시였건, 어느 언어였건 그것은 분명히, “너 괜찮니?길 찾는거 도와줄까?” 였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면 나는 짧은 영어로, “응 나 혼자 찾아갈 수 있어요”, 혹은 지도를 보여주며 “여기 가려고 해요” 라고 웃어보이면, 어떠한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던 없던 그 순간에 우리는 웃는다. 따뜻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언젠가 다시 같은 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좀 더 당당하게 같은 곳을 헤매이며 여유롭게 그때의 발자취를 그려보기도하겠지. 나는 분명 또 다시 그곳을 찾아갈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일 수 있는 시간, 그것은 아마 낯선 곳에서의 여행일 것이다. 지하철 티켓은 어떻게 끊어야하는지, 숙소로 가는 버스는 대관절 어디서 타야하는지, 이 요상하게 생긴 음식은 어떻게 먹어야하는지, 음식 주문은 어떻게 하는지, 너무 가고 싶은 장소는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도무지 인터넷의 힘을 빌려도 해결이 되지 않는 곳. 로밍 값이 저렴해 졌다지만 핸드폰을 손에 들고 다니며 소매치기를 걱정하기 보다는 지도를 들고 여행책을 펴들고 잠시 멈춰서서 서성거릴 수 있는 곳. 가장 불편하고, 불편함이 동반된 경험에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이 가장 큰 곳. 그러다 길을 잃어버리면 뜻밖의 행운을 만날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불편함이 주는 선물이지 않을까.
나는 여행은 곧 길을 잃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 길을 잃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나만의 장소, 나만의 순간이 만들어진다. 예상치 못했던 인연을 만나기도 하고, 멋드러진 흰 목도리를 한 고양이, 벽에 걸린 자전거, 읽을 수 없는 낙서들, 그들만의 흔적.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곳에서 존재했던 오랜 시간 동안의 삶들. 시간을 잃어버린 여행에서 나는 멈추고싶은 만큼 멈추어있고, 가고싶은 대로 가고, 지치고 싶은 만큼 지친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들어도상관이 없다. 헤메이다 해가 다 져버려도, 끼니를 건너뛰어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도, 그런대로 그곳은 나에게 셀 수 없는 가치들을 선물해 줄 테니까. 시간을 잃어버린 불편함 속에서 찾는 뜻밖의 행운,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워하는 아날로그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불편함은 또 다른 Serendipity요, 매순간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감사한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