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문득 임상실험에 참가하는 것이 인류 역사에 기여하는 매우 가치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에 앉아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는 일은 현실로 돌아오는 일종의 의식같은 것이었다
국밥집 아줌마는 아주 여우처럼 복잡한 계산에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타서 한사람의 카드로 모든 금액을 긁어버렸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다음에오면 잘해줄게. 알아보지도 못할거면서. 그러나 그 넉살스러움에 웃음이 나는 것이었다.
스포티파이의 추천 목록은 마치 선꿈만 같아서 그 날 들은 것 본 것 생각한 것이 다 짬뽕되어 그날 밤 꿈 속을 번쩍이다 홀연히 사라지듯이, 지난 주에 들은 7080과 아프리칸 음악과 재즈 일렉트로닉이 모조리 섞인 신개념의 음악들을 선곡해주었다.
몇몇가지의 하고픈 말들을 피곤이 삼켜먹었다.
아무도 한 줄로 걸어가라고 한 적이 없는데 출근길 같은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은 제각기의 보폭을 유지하며 굳이 앞지르지 않는데에 여념하고 있었다.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가 소음이 아닌 경우는 거의 없다. 한 곡의 노래가 끝나고 다음 노래가 시작하기까지의 공백을 어떻게 보내야하는게 좋을까에 대하여 고민한다.
수많은 좋은 말들을 잊어버렸다. 와중에 생각나는건 광고에서의 비주얼이란 대중을 그 앞으로 끌여다 앉혀두고 유심히 지켜보게만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생각할만큼의 시간을 줄 수 있는, 그들 스스로가 그만큼의 생각을 하길 원하게 만들 수 있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나는 광고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조지로이스와 뜻을 같이 한다. 그의 책을 모아야겠다. 그의 책을 몇번이고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최근에 깨달은 몇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내가 상당히 책을 읽지 않는, 독서의 습관이 아주 아예 들여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과 둘째는, 나는 전기장판 없이 자는 밤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살다가 문득 추운 어느날, 전기장판 말고는 의지할 것이 하나 없는 그 밤에 딱 마침 싸늘하게 식어버린 녀석의 시신 위로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며 누워 잠을 청해보는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심폐소생이라도 하듯 껐다 켰다, 코드를 다른 소켓에 꽂아도보고 온도 조절 휠을 미친듯이 돌려보고도 믿을 수 없어 그 다음날 아침도, 그 다음날 저녁도 새로살 생각은 못한채 계속해서 녀석을 살려보려는 인간의 몸부림을 여전히 쌀쌀한 봄날의 방안은 알아주지 않는다.
영에서 마이너스로.
자책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치만 그렇게 생각해야하나 정말 눈 부릅뜨고 똑바로 뜨고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거기에 일말의 내가 다할 수 있는 최선이 남아있었다. 라고 마주해봐야하나는 생각을 정말로 해봐야할까. 세인마틴을 들어갈 때의 나는 지금과 달랐나. 내가 그리도 독하게 이를 물었고 그리고 독하게 밤을 지새우며 그리도 독하게. 그랬을까. 딱히 실패한 적도 없지만 딱히 성공한 적도 없는 것 같은 내 인생. 행복하진 않았지만 내세울 거리가 있었던 내 학벌. 항상 원하는건 다 되지 않는다고 그걸 그냥 그렇게 나와 운명이 아닌거라고, 어쩔 수 없었다고 그게 최선이었다고 내 것이 아니라고 어자피 안될 일이라고 치부해버렸다.
한국에 있기엔 너무 크고 영국에 있기엔 너무 작은.
어쩌면 내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고해서 나한테 내 인생이 비관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내게 일말의 힘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치만 너무 절망하지 않을 이유가 되어줄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무인연의 세상에서 살고있다
2017.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