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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Nov 28. 2019

가스라이팅 I

스물아홉의 연애

그저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삶처럼, 결단코 퇴고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연애와 사랑과 결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다. 이십 대의 어느 나이까지는,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했구나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어느 나이부터는 그 모든 연애가 다 사랑이었다고 인정해버린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저주를 퍼붓던 사람에게도 한 때 내 곁에 머물러주어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내게 못할 짓을 했기 때문이라며 침을 튀겨 가며 열분을 토했던 것이 모두 내 자존심이 다쳐서였음을 인정하기로 한다.


세상에는, 아니 '인생'에는 액체와 같은 부류의 것들이 존재한다. 이 것들을 어떻게 카테고라이징 할 수 있을까.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이 부류에 있는 것들은 갈등이나 사랑, 자아.. 뭐 이런 것들이다. 나는 이것을 액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것도 고유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이들은 어떤 형태로써 보여지고 인지된다. 


A라는 사람이 Y라는 사람을 만난다. A와 Y 사이의 관계라는 그릇이 형성된다, 그 안에 사랑이 담긴다. 이 그릇과 같은 그릇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A는 다소 애늙은이 같은 스타일이다, 모든 것을 다 겪어본 사람인 양 주변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한 말들을 많이 내뱉는다. 연애에 있어서도 다소 이상적이다. 제 마음 편하자고 모른척하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모른척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나 같은 실존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A는 따뜻하고 모성애가 많으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누군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A가 Y를 사랑할수록, 도저히 모른척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난다.

Y는 조금 독특하다. Y는 혼자일 때가 가장 편하다. 관계가 주는 쾌락과 안정감을 추구하지만, 절대 자신의 곁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Y는 A에게 관심이 아주 많지만 쉽게 티를 내지는 않는다. Y는 A가 자신에게 가져주는 관심이 너무 좋지만,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부분을 들키고 싶지 않다. 


그런 A와 Y사이의 그릇은 어떤 모양일까.

Y에게 다른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촉발한다. 그들의 그릇은 이 촉발로 인한 압력을 받는다. 어디가 어떻게 찌그러질지는 몰라도, 이 그릇은 엄청난 압력을 이겨내어야 한다. 그 안에 담긴 사랑이 출렁인다. 이 그릇과 같은 그릇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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