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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Dec 21. 2019

엄마가 된지 100일

오늘은 내가 ‘엄마’로 산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21시간 진통 끝에 아기를 만나 출산보다 더 힘들다는 육아 전쟁을 치른 날들이 이만큼 흐른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있을까’를 적어도 수백번쯤 고민하다 얄팍한 용기로 아기를 가졌다. 우리 부부가 지닌(그렇게 믿는) 건강한 가치관이라면 좋은 부모가 될 수도 있겠다고 내심 생각했었다. 조리원에서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온지 3일만에 그 생각엔 금이 갔지만.
호두알만한 위를 가진 작은 아기는 적게 먹고, 조금 자고, 많이 울었다. 2~3시간 간격의 수유와 깨어 있으면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나는 금새 지쳐갔다. 맘마를 먹다 잠이드는 아기를 억지로 깨워서 겨우겨우 배를 불려 놓고 트림을 시킨 후 소화가 될 때까지 안고 있다가 잠이 든 아기를 뉘여놓으면, 다시 수유타임이 온다. 짬이 날 땐 매일 쏟아지는 빨래를 하고 젖병 소독과 유축도 해야한다. 이 일을 무한반복 하는 것이 신생아를 돌보는 일상이었다. 밥 한끼는 커녕 물 한모금 못 마신 날도 허다했다. 젖몸살과 유선염으로 열이 40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고열과 오한, 가슴통증으로 제 몸조차 가누지 못했지만, 갓 태어난 신생아의 엄마는 홀로 병원 조차 갈 수가 없었다.
하루는, 달래도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아기의 양팔을 꽉 붙들고 큰소리를 쳤다.   
“결아! 결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 보고 어떡하라고!!!”
주먹보다 작은 얼굴의 아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곧 터질 것 같은 새빨간 풍선이 되어 악을 쓰고 울어댔다. 그런 아기를 안고 나도 울었다. 텅 빈 집 안에는 우리 둘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다음 날 새벽, 아기는 먹은 그대로를 전부 토해냈다. 입과 코로 끝없이 토사물이 게워져 나왔고, 나는 너무 놀라 소스라치며 아기를 안고 흐느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걸까, 이 작고 연약한 아기에게.
정신을 붙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너무나 작고 소중한 우리 아기. 오직 엄마 아빠만을 믿고 세상에 나온 우리 아기. 잊지 말자, 기억하자. 기다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조금 덜 아파하고, 조금 덜 울고, 조금 더 웃기 위해 아기 스스로 자라야하는 시간. 그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안아주는 것일 뿐. 팔이 으스러지고 허리가 짓눌려도 이 때 뿐일테니 마음껏 안아주자고 다짐했다.

한 생명을 품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우리 부부가 수 많은 날들을 고민하고 준비해왔던 시간들이 현실에서는 그닥 쓸모있지 않았다. 현실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아기는 자랐고 나도 자랐다. 이제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서로의 눈을 맞추며 방긋 웃기도 한다. 아기는 내 팔을 베고 스르르 잠들기도 하고 밤에 자는 시간도 꽤나 길어졌다.
아직도 짜장면을 시켜 먹지는 못한다. 군침을 흘리며 젓가락을 들었을 때 “으애애앵” 아기 사이렌이 울리면 채 비비지도 못하고 불어터진 맛 없는 짜장면을 먹어야 하니까. 숯불에 구워먹는 맛있는 고깃집도 얼마나 더 못갈지 알 수 없다. 7kg의 아기를 매일 안고 일어서느라 손가락, 손목, 무릎 등 내 몸 대부분의 관절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그래도 칭얼대는 아기 옆에서 얼레벌레 커피한 잔을 마시기도 하니 이 정도면 사람답게 산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임신, 출산, 육아는 결국 모두 내 몫이었다고 남편에게 한탄을 하는 일도 더는 없다. 그도 아빠가 되는 100일이 무척 고단했을테니.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의 아기.
태어나서 100일까지 몸을 두 배로 불리느라 얼마나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까. 스스로 커가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저 기특하고 대견할 뿐이다.
이제는 좀 컸다고 늦깎이 엄마가 재롱을 부리면 꺄르르 소리내 웃기도 하고, 버르장머리없이 마흔살 엄마의 머리카락을 콱 쥐어뜯기도 한다. 욕심쟁이는 손가락 네 개를 아기새 같은 그 작은 입에 욱여넣고 세상 맛있게 츕츕 빤다. 여전히 보채고 울 때도 많지만 내 생에 다시 없을 희노애락을 경험하게 하는 아기가 그저 고맙고 사랑스럽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그래도 한 고비 넘긴다는 100일 아닌가. 오늘은 그냥 ‘우리가족 참 고생많았다!’고 토닥이고 싶다.
잘해왔다고 쓰다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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