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 Jul 13. 2020

엄마사표를 쓸 수 있다면

 비루한 고백이지만, 나는 10개월 된 아기를 키우면서 엄마사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기가 이뻐서 물고 빨고 해도 모자랄 시기에 엄마사표라니. 나는 참 한심하고 몹쓸 엄마일지도 모르겠다.

 아기엄마인 내가 사표를 쓰겠다는 것이 아기를 버리겠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회사를 다니다가 그 회사와 내가 맞지 않을 경우 최후의 보루로 사표를 쓸 수 있는 것이 직장인의 삶 아닌가. 이직을 하던 휴식기를 갖던 재입사를 하던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선택이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엄마사표를 쓰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면서 다음을 도모하고 싶었달까. 뭐 구질구질하지만 대충 그렇다.

 10개월 아기의 엄마는 아침 7시쯤 ‘아기알람’과 함께 기상한다. 기고, 잡고 서고, 잡고 걷고, 앉기가 한창인 아기는 다양하게 몸을 풀고 엄마의 머리채를 향해 돌진한다. 작지만 매운맛이 일품인 아기손에 얼굴마사지를 당하면서도 조금 더 자겠다고 버티는 게으른 엄마는 결국 항복을 외친다. 밤새 축축히 젖어 찝찝했을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나면 거실로 나와 첫 이유식을 준비한다. (가끔 모닝 응까를 본 날은 씻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전 날 저녁 냉장고에 해동해둔 이유식을 전자렌지에 돌리는 동안 아기의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말랑말랑한 실리콘 턱받이를 채운다. 아기의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요즘엔 이런 행위조차 순조롭지 않다. 자신의 몸에 무언가를 두르는 것이 극혐인 아기는 손수건을 갖다 대면 고개를 ‘휙’ 돌리고 턱받이를 채울 때면 손으로 잡아채서 입에 가져가기 일쑤다. 삽시간에 후다닥 끝마쳐야 실랑이를 줄일 수 있다. 데워진 이유식이 식기전에 아기가 마실 물을 빨대컵에 담는다. 냉장고에 넣어뒀던 아기전용 보리차가 조금 미지근하도록 정수물을 섞어야 한다. 최근 들어 부쩍 이유식 먹는 걸 거부하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숟가락 두 개, 컵 하나 더, 실리콘 뚜껑 그리고 그림책 두 권까지 준비한다. 만반의 준비를 끝마치면 시간을 체크하고 이유식을 떠 먹인다. 밥 먹는 시간이 30분을 넘기면 중단하고 치우기 때문에 시간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30분이 넘어갈 경우 먹는 아기도 먹이는 엄마도 투쟁으로 돌변한다. 서로 못 볼 꼴을 보이지 않으려면 적당한 때 멈추는 것이 상책이다.  

 온갖 애교를 부리고 가끔 소리를 지르고 먹어 달라고 애걸복걸을 하는 이유식 시간이 하루에 세 번이다. 작은 숟가락에 뜨거운 이유식을 듬뿍 얹고 엄마가 호호 불어주면 아기새처럼 입을 ‘쩌억’ 벌리며 받아먹던 귀여운 아기는 요즘에 찾아보기 힘들다. 먹기 싫다고 입을 꾸욱 닫고, ‘도리도리’ 머리를 흔든다. 입 속에 겨우 한 입 넣어주면 손으로 빼내고, 그 손으로 눈을 비비고 귀를 파고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 아기만 하루에 세 번 만날 수 있다. 입에 넣고 삼키면 되던 묽은 죽에서 밥을 먹기 위해 씹어야 하는 진밥을 먹이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 하루에도 ‘참을 忍’을 수백번은 되뇌고 몸에 사리가 나올 정도로 화를 삭인다. 그러다가 한 번씩 이성의 끈이 놓아지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거나 아기를 닦이고 씻기면서 거칠게 다룰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자격 없는 내가 어쩌다 엄마가 되어 아기도 나도 이렇게 고생일까 자괴감이 든다. 다른 엄마들은 잘도 아기를 키우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고 내일의 육아가 두렵기만 하다.


 하루 세 번 먹이고 씻기고 치우는 것만 해도 24시간이 모자란데, 두 번의 분유수유와 한 두번의 간식도 줘야 한다. 짬이 날때마다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개고,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아기가 잘 때 나도 ‘씻거나 먹거나’를 한다. 저녁에는 통목욕을 씻기고 재우면 드디어 육퇴(육아퇴근)다. 아기를 눕혀 놓고 나오면 보통 밤 9시쯤 되는데 그 때 우리 부부의 저녁밥을 준비한다. 낮잠은 잘 안 자더라도 밤잠은 잘 자는 우리 아기였는데 윗니가 한꺼번에 4개나 나오면서 이앓이를 하는지 자다가 한 번씩 ‘빼앵’ 울며 엄마를 찾는다. 그래서 TV볼륨은 낮추고 엄마는 ‘소머즈’가 되어 귀를 바짝 열어놓고 밥을 먹는다. 언제든 튀어 들어갈 준비로. 먹고 살겠다고 저녁밥을 먹고 나면 아기가 먹을 이유식을 준비한다. 보통 2~3일에 한 두번씩 이유식 재료를 손질하고 3일치를 만들어 두는데, 그런 날은 새벽 2시쯤이 되어야 엄마는 아기 옆에 누울 수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육아 일상을 보낸 지 10개월이 지나고 있다. 출근도 퇴근도 없는 이곳에서 간혹 정신을 놓을 것 같은 극한의 스트레스가 부글부글 올라올 때면 엄마사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책감이 들고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배 아파 낳은 내 새끼라고 이쁘긴 또 왜 그렇게 이쁜지 모르겠다. 이런 모순덩어리 같으니라고.
 10.5kg의 건장한 남아인 우리 아기는 요즘 ‘안아병’에 걸렸다. 엄마만 보면 팔을 뻗고 안아 달라고 떼를 쓰고 엄마가 안보이면 세상 ‘찡찡’이가 된다. 앞으로 나란히 하 듯 팔을 쭈욱 뻗고 엄마한테 와락 안기면, 난 또 그녀석의 노예가 되어 기꺼이 내 하루를 바친다.

 아무래도 엄마사표는 글러먹은 것 같다. 사표는 집어치우고 연차, 아니 반차, 아니 외출이라도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된지 100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