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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Aug 25. 2024

(하) 미술시장 호황의 서막_2005

호황은 모르는 사이에 다가왔다.

이번 시간에 이어 2005년 주요 키워드를 이야기해 보겠다. 지난 시간보다 더 미술시장에 가까운 이야기이니 함께 마무리해 보자. 돌이켜보면서 놀라운 점은 최근 들어서도 굉장히 유사한 행동과 결정들이 반복된다는 점인데, 정말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순간들이 많다. 같이 확인해 보자.


(SOURCE: 무한도전)


1. 케이옥션 설립

국내 최초의 경매사는 1998년 설립된 서울옥션이다. 서울옥션 설립 이후 국내 경매시장은 2005년까지 단독 경매사로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2005년 9월 15일 K옥션이 설립되며 국내 경매시장도 본격적으로 경쟁구도를 띄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중소 경매사까지 포함하여 총 12개 이상의 경매사가 운영되고 있으나 당시 국내에서 미술품 경매시장은 신생시장으로 지금과 같이 많은 매출이나 거래가 이뤄지는 곳은 아니었기에 과감한 결정이라 볼 수 있다. 이때 케이옥션 설립에 관여한 것은 갤러리현대와 학고재 갤러리, 그리고 하나은행이었다. 이로써 당대 경매사는 가나아트센터의 서울옥션, 갤러리현대의 케이옥션으로 양대 갤러리가 옥션사를 운영했다.(외형적으로는 갤러리현대는 지분이 없지만, 현 케이옥션의 대표인 도현순 대표가 최대주주로 참여해 세간에서는 별도로 구분하지 않았다)


(SOURCE: 뉴스핌)


이렇게 케이옥션의 설립으로 인해 국내 경매시장이 경쟁구도로 가며 공격적인 작품유치로 인해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작품들이 주로 거래되던 경매시장이 본격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고가의 작품들까지 다루게 되며 경매시장이 제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울러, 단독 경매시장 운영 당시 사람들이 의구심을 제기하던 낙찰가의 타당성이 해소되며 미술계에 만연하던 미술작품 가격의 불투명성이 다소 해소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까지 갤러리들은 경매시장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나, 필자는 경매사가 생겨남으로써 그간 미술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던 가격의 불투명성을 해소하고 고가의 작품 거래가격이 공개되며 그 자체로 마케팅이 되어 국내 미술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1차 시장의 역할을 2차 시장인 경매사가 가져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우려스러운 점들이 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이와 관련해서는 언젠가 논하기로 하자.


l  케이옥션과 별개지만 현재 국내 Top5 갤러리로 손꼽히는 PKM갤러리 역시 2005년 개관을 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0830094?sid=103


2.  박수근, 연이은 신고가 경신

(SOURCE: 강원일보, 박수근연구소)

2000년대를 넘어 2010년대 중반까지 국민작가로 자리 잡은 박수근 화백은 2005년 11월, 12월 국내 최고가 기록을 연달아 갱신했다. 12월 최고 낙찰가는 ‘시장의 여인’으로 9억 원을 기록했다. 물론 해외까지 포함한다면, 2004년 3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14.62억 원에 낙찰된 ‘앉아있는 아낙과 항아리’가 최고가를 가지고 있긴 하다. 당시를 생각해 보면, 대다수의 작품이 1억 원을 넘는 작품이 없는 상황에서 낙찰가가 10억 가까이 찍혔다는 것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도 남을 일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박수근 화백의 작품 가격을 이야기하는 기사가 늘어나면서 박수근 화백의 작품을 가진 소장자와 갤러리들이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0098232?sid=115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1899397?sid=115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1899397?sid=115


3.     박수근, 이중섭 위작사건

연초에 미술품감정협회에서 재기한 이중섭 화백의 위작시비는 점차 커져 200점 이상의 대규모 위작사건으로 번졌다. 이 사건이 더욱 언론에 주목을 받은 것은 애절 절한 가족과의 스토리를 가진 이중섭 화백의 유족이 연계된 위작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유족들의 주장과 달리 검찰에서는 해당 작품들을 위작으로 결론 내렸고, 비슷한 시기에 제기된 박수근 화백의 유족과 구매자 간의 위작시비 역시 위작으로 판별이 나며 일각에서는 이제 막 시작된 미술시장의 봄바람이 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SOURCE: 신동아)

다행히도 한국감정협회는 문제가 불거진 이중섭, 박수근 작품의 무료감정을 실시하며 소장자들의 혼란을 빠르게 해소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 사건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2006년부터 더욱 많은 위작시비가 나타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1127239?sid=103

아무래도 미술품이 유명세를 얻게 되며 돈이 되기 시작하면 일어나는 어두운 면은 위작이다. 공산품과 달리 작품제작의 속도라던지 수량이 한정적인 미술품의 특성상 수요가 몰리게 되면 미술품의 가격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품을 구하지 못해 발생하는 잉여 수요로 인해 나쁜 마음을 먹은 양심을 팔아먹은 일부가 위작을 만들고 유통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위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유통하는 선의의 피해자까지 생기니, 미술품에 있어서 위작은 암적인 존재이다. 이런 위작시비는 시기마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블루칩 작가들을 중심으로 위작시비가 일어나는데 이후에는 김환기, 이우환 등의 작가들의 위작시비가 후에 벌어진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958781?sid=10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0168282?sid=10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1116877?sid=103


4.     젊은 작가 호황

2005년은 블루칩 작가들을 제외하고서도 중견작가 및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활발하게 거래되며 미술시장 전반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는 미술품을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구매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는 시각의 변화 역시 함께 시작되어 첫 컬렉팅을 하는 시장참여자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젊은 작가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중견작가의 경우 고영훈, 배병우와 같은 작가들이 해외에서 거래되기 시작했고, 아라리오갤러리를 시작으로 전속계약을 맺은 젊은 작가들이 나오며 그들 전시들이 속속들이 개최되었다. 이런 이유는 미술시장에 들어온 자금들로 인해 젊은 작가까지 거래가 되었다는 점도 있지만, 중국현대미술의 약진으로 인한 해외 컬렉터들의 관심증가와 위작시비로 인해 위작에 대한 걱정이 없는 젊은 작가들에게 투자하려는 움직임 역시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내외적인 이슈로 인해 블루칩을 넘어 중견작가를 시작으로 젊은 작가들로 점차 컬렉터들의 구매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시장의 호황기에 일어나는 일련의 순서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비추어 볼 때 어떠한 작가들이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는지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컬렉팅을 할 수 있으리라는 꿈만 같은 상상을 잠시나마 펼쳐본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0104728?sid=10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1/0000069606?sid=103


5. 기업 및 은행의 관심

이렇게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정부부터 국내외에서 높아지니 이를 활용하여 홍보하고 싶은 기업과 은행들이 하나 둘 생겨나며 콜라보 상품 및 관련 행사들이 생겨났다. 기업 입장에서는 젊은 작가들과 함께하는 작업과 후원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면서 마케팅을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에 호황과 불황을 넘어 지속해서 콜라보가 진행되어 왔다. 반면, 은행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은행은 미술품을 단순히 마케팅적인 요소라던지 이미지 메이킹 용도가 아니라 PB센터를 중심으로 VIP고객층을 확보 및 미술품 투자상품 제공을 위해 미술품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2005년에는 하나은행에서 경매사 설립에 투자했기에 타 은행사들도 미술품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보인다.


(SOURCE: 루이뷔통, 중앙일보)


기업과 은행들이 보이는 이러한 행보는 사실 불황이 온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술시장에 불황이 오더라도 기업은 기업이미지 제고를 위한 CSR활동이라던지 대내외 마케팅을 위해 미술을 콘텐츠로 소비한다. 은행 역시 미술품 구매 및 투자에 관심이 있는 PB센터 고객들을 유치 및 관리하기 위해 직접적인 투자상품이 아니더라도 ‘미술품 투자 세미나’라던지 PB센터 고객들을 위한 특별전 개최, 미술사 관련 인문학 강의 등을 운영하며 콘텐츠로 소비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미술품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기업과 은행이 잘 활용하는 것이다. 다만, 활황이 오게 되면 은행의 경우 미술품을 콘텐츠가 아니라 ‘투자상품’으로 인식해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게 되는데 이는 2006, 2007년을 돌아보며 이야기하도록 하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6/0000187473?sid=101

https://news.mt.co.kr/mtview.php?no=2005103109401631220&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


6.  청계천 그 ‘소라’

(SOURCE: 서울경제)

번외로 기사를 보다 보니 2005년 낯익은 작품이 생각나는 기사가 있어 추가해 본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계천에 세계적 조형물 세울 것”이라고 하며 미국의 팝아티스트인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을 설치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문화 사대주의’, ‘흉물스럽다’ 등 다양한 비판의 대상이 된 이 작품은 아직까지 청계천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국내 작가의 작품으로 해서 우리 미술의 위상을 높이면 좋았을지 모른다만, 2005년 당시 로버트 라우센버그라는 작가를 선택해 조형물을 세운다는 것 자체는 대중성과 상징성을 한 번에 획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이런 결정과 그에 따른 비판은 사실 미술작품 본연에 대한 평가보다는 정치적인 이슈가 더 커 보이기에 깊게 다루진 않겠다. 어찌 되든 2005년에는 지금은 익숙해진 청계천 그 ‘소라’가 만들어졌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0191689?sid=100


지난 2주간, 2005년을 함께 돌아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 그럼 다음 주 이 시간에 2006년으로 찾아뵐 수 있기를. 생각보다 작업이 지난해서 이 시리즈가 끝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 번 2006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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