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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웅덩이 May 26. 2024

아티스트 데이트 2

물에 비친 전봇대의 모습과 나지막한 담장  


나 만을 오롯이 만나는 두 시간의 데이트. 이즈원 카페로 향했다. 한 번 해 본 지라 이제는 가방을 가볍게 하고 집을 나섰다. 카페로 올라가는 길에는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었고 습관처럼 폰 카메라에 사진으로 담느라 발길을 멈추었다 다시 걸어가는 여정의 반복이다.


카페로 가는 길에는 하천 옆으로 난 산책길이 있는데 좁고 꼬불꼬불해서 보물을 찾아 나서는 길처럼 여겨진다. 앞이 막힌 듯하다가도 끝까지 가 보면 새로운 길이 연결되어 있다. 삶의 여정도 그렇다. 앞이 꽉 막힌 듯 보여도 가 보면 또 다른 길로 이어져 있음을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이 길이 늘 정겹다.


특별한 기대 없이 나를 쉬게 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올라간 카페에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무도 없었다. 입구에 서 있는 느낌표 간판과 멀리 보이는 환타지아의 관람차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딸기요거트를 주문하고 2층으로 가서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창 너머로 보이는 논에는 모내기를 위한 물이 대여져 있었고 바람에 물결이 뽁뽁이처럼 흐르고 있었다. 물끄러미 창밖을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전봇대와 나지막한 담장이다.


하늘을 찌르 듯 높이 솟은 전봇대가 그 길이만큼 물 댄 논에 깊숙이 박혀있었다. 땅 깊숙이 내리고 있는 전봇대의 뿌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긴 전봇대가 세워지기 위해 땅 속으로 얼마나 깊은 뿌리가 박혀 있을까? 최근 자기 계발 도서를 읽노라면 성공한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된다. 보이는 모습이 얼마나 높은지 환호와 응원을 보냈는데 그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쌓았을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을 묻고 반복된 실행들로 채웠을 깊은 뿌리가 떠 올랐다. 지금 나의 삶도 뿌리를 만드는 세월임을 생각하니 위로가 되었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전봇대와 물그림자 사이에 있는 나지막한 담장이 눈에 들어왔다. 돌로 쌓은 담장 부담스럽 않은 높이로 밭과 논 사이에 편안하게 놓여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런 나지막한 돌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나지막한 돌담은 있어야 하겠다. 조금 허용은 되어도 예의를 갖출 수 있는 그런 돌담이면 좋겠다.


두 시간이 지나고 카페 문을 나서니 들어올 때 지나쳤던 나무 한 그루가 나를 맞이한다. '복주머니 느티나무' 한 두 번 온 곳이 아닌데 이 나무의 이름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복주머니를 득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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