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동안 쓴 시를 모아 보니 300편이 되더라고요
2020년 3월. 코로나가 시작되던 해였다. 교회 모임이 사라지고 예배가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갑자기 많은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코로나에 걸리면 요양병원에 피해를 줄 수도 있어서 외출이나 여행을 갈 수도 없었다. 집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던 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카카오스토리를 시작한 것이 13년 전이다. 순간마다 떠오르는 대로 적은 시들을 올리며 시작한 SNS였다. 댓글로 응원도 받고 칭찬도 받으며 신나게 시를 쓰기 시작했다. 꽃을 주제로 한 시들도 있었고, 인문학적 사색의 시도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기도'라는 제목으로 100편 정도의 시가 비공개로 담겨 있었다.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3년 정도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때 영감을 얻어 적은 시들이었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시들을 모아 보니 300편 정도가 되었다. 시집을 한 권 출간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제목은 '생각을 요리하다'로 정하고 소제목은 요리의 순서를 생각하며 하나씩 정해 나갔다. 하루 만에 기획을 한 것이다. 소제목에 맞게 시를 골라서 넣으며 편집을 했다.
신문사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출간을 의뢰하고 드디어 그 해 9월에 시집이 탄생했다. 생애 첫 종이책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정말 컸다. 신앙시가 실려 있어서 다니고 있는 교회의 가정마다 책을 한 권씩 나누었다. 근무하고 있는 요양병원 직원들에게도 한 권씩 선물했다. 양산시 약사회에 소속된 약사들에게도 한 권씩 나누었다. 대학 동기들과 친한 선후배들에게도 한 권씩 우편으로 보냈다. 1쇄로 500권을 만들었는데 20권이 채 남지 않았을 때 동기 중 한 친구가 선물을 하고 싶다고 50권을 주문했다. 2쇄를 만들게 된 부싯돌이 되었다. 결국 3쇄를 만들었고 그 책도 이제 50권 정도 남아 있다. 작년 여름부터는 교보문고에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시집을 출간하고 나서부터 담석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고, 가족이 아파서 신경을 쓰다 보니 마음도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다음 걸음을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서 헤매는 시간이었다. 혼자 정상에 올랐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잠시 주저앉아 있는 내 모습에 마음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