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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웅덩이 Nov 02. 2024

에피소드 2

'네 발에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 떠 올랐어요

찬송가 반주를 한창 배우고 있을 때 교회에서 주일 2부 예배 반주자로 제의를 받게 되었다. 원장님의 추천도 있어서 반주자를 하기로 결정 했다. 예배를 시작할 때 묵상기도와 대표 기도 후, 축도 후에 짧은 반주가 있고 찬송가 한 곡을 반주하는 일이었다. 대중 앞 울렁증이 있어서 무척 걱정이 되었다. 학원에서 연습할 때만 해도 완벽하게 연주를 하는데 막상 교회 피아노 앞에 앉으면 손이 굳어져서 실수를 하게 되니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원장님은 6개월 정도면 적응할 거라며 격려를 해주었다. 청심원을 마시고 연주하는 날에는 그나마 덜 떨리기는 했다. 


주일오후 찬양예배 반주를 두번째로 준비하던 수요일 저녁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아직 짧은 피아노 실력 탓에 미리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분이 물으셨다.

"집사님 피아노 소리는 왜끊기는 소리가 나요?" 

"패달이 미숙해서 그런 것 같아요."

대답은 했지만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계속 고민을 하다가 수요예배가 끝날 즈음 문득 내 머리 속에 '네 발에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 떠 올랐다.


그날 낮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쉬는 날이라 점심 때에도 피아노 연습을 하러 교회에 왔었다. 교회 피아노는 모두 신발을 신고 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곽OO 집사님이 강대상 청소를 하시느라 피아노 아래에도 걸레로 닦으시며 내 주위로 오셨다. 그런데 집사님은 신발을 벗은 발로 분주히 닦고 계신 것이었다. 신을 신고 앉은 내가 조금 무안했지만 당연한 거라고 넘어가 버렸었다. 

'아~~ 신발을 벗고 피아노를 쳐야겠구나"

다음날 아침이었다. 매일 오는 말씀 기도 카톡을 받았는데 깜짝 놀랐다. 

말씀기도 -225-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사도행전 7:33)


모세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나의 생각을 벗으라는 의미도 있고 세상적인 기준을 벗으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의식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신발을 벗고 맨발로 피아노 반주 연습을 했다. 학원에서는 천으로 된 슬리퍼를 신고 피아노 페달을 밟으며 연습을 했기에 운동화를 신었을 때 페달을 제대로 밟을 수 없었던 게다. 그것이 소리가 끊기는 이유였다. 두 번째 반주하는 날에는 맨발로 피아노 연주를 했다.  


울렁증을 다스리며 반주하기를 두 달이 지났을 때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주일 오후예배가 사라지고 주일 오전 예배도 영상으로 진행되었다. 몇 달만 지나면 다시 예배가 시작될 줄 알았는데 너무 긴 세월이 흘렀고 내 반주자의 꿈은 잠깐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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